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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배씨 그들이 걸어온 길과 유산 달성 배씨(裵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2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가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달성 배씨의 역사와 주요 종파, 이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업적과 문화유산을 탐구해 보겠습니다.달성 배씨 기원과 역사달성 배씨의 원류는 신라 6부촌장 중 한 사람인 지타공(祗陀公)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타공은 금산가리촌(현재의 경주)의 촌장으로서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왕으로 추대하는데 참여했습니다.시조인 배운룡(裵雲龍)은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의 6세손으로, 고려 중엽에 벼슬을 지내고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후손들이 달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시대별 주요 인물고려시대배정지(1259-1322) : 충렬왕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6.
천년의 역사 나주 주씨(羅州 朱氏)의 발자취 오늘은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한국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온 나주 주씨(羅州 朱氏) 가문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나주 주씨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명문 가문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시조와 가문의 연원나주 주씨의 시조는 고려 목종 2년(999년)에 활동한 주중소(朱仲紹)입니다. 그는 이부시랑(吏部侍郞)과 봉명(奉命)이라는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며 명성을 쌓았고, 이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고려 시대 초기부터 명문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 주덕명(朱德明)은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오르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까지 승진하여, 가문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나주..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5.
검사의견, 판사는 어떻게 판단할까! 검사의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네 번째 이야기] 1심 판결에 앞서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경찰과 다르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위법에 대해 합리화로 일관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비통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도서출판에 이어 블로그에 내용 전문을 게시하는 이유다. 검찰 의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판결일이 4월 26일로 결정됐다. 이때부터 검찰과 변호인(피고 측)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의견서나 증거자료 등을 공판일이 임박해 제출하는 이유다. 검찰에서 어떤 결정적 증거를 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먼저 패를 보일 리도 없다. 그럴 때 이쪽에서 대응에 나선다는 건 천치라도 안다. 상대방도 마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4.
명문가 장수 황씨에 대한 탐구, 여성종친회에 주목 장수 황씨(黃氏)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문 성씨로, 전라북도 장수가 본관입니다. 9세손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장수 황씨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4대 임금을 섬기며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황희를 배출, 명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장수 황씨의 뿌리를 찾아서장수 황씨의 시조는 신라 말 경순왕의 부마이자 시중을 지낸 황경입니다. 9세손인 황공유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 벼슬을 지냈으나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남원 광한루터에 정착했습니다.이후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18세손 황석부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습니다. 황석부의 증손인 황희는 조선 세종대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90년 생애 중 70여 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조선의..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4.
최후 변론서 작성, 징역 8월 구형 최후 변론서 작성 그리고 징역 8월 구형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세 번째 이야기] 최후 변론서를 가식으로 작성했다. '그래야 한다'는 변호인의 의견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D당 모략이다. 현 군수를 잡기 위해 나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 이장이나 추형오(가명)의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썼다가 변호인의 만류로 대폭 수정해야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검찰의 주장 2019년 3월 22일,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변호인이 주장했던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밴드에 접근'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의견보다 항변에 가까웠다."피고인은 이 사건 밴드 게시글에 대하여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되어 취득한 것이므로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3.
여흥 민씨, 조선시대 왕비 배출의 명가 이야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가문은 여흥 민씨(驪興閔氏)입니다.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이 가문은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이 대표적인 명문가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시조와 가문의 시작여흥 민씨의 시조는 민칭도(閔稱道)입니다. 고려시대 상의봉어라는 관직을 지낸 그는 가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본관인 여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과거에는 황려 민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는 지역의 역사적 변천과 함께한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고려시대의 발전초기 성장기민영모 : 고려 인종 시대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며 가문의 번영을 이끈 주역민식 : 1167년 과거 급제 후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3.
광주 노씨, 유서 깊은 문화재에서 알 수 있는 천년의 명문가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광주 노씨(盧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광주 노씨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로,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광주 노씨, 의 기원과 역사광주 노씨의 역사는 신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유주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가 877년, 당나라 희종 5년에 황소의 난을 피해 아들 9형제와 함께 신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했다가, 후에 신라 효공왕 때 평안도 룡강(龍岡)으로 옮겨 뿌리를 내렸습니다.노수의 아들 중 한 명이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졌고, 이로 인해 후손들은 그를 득관조로 삼아 광산(현재의 광주광역시)을 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2.
남양 홍씨, 고구려부터 현재까지 명문가의 역사와 유적 남양 홍씨(洪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그 역사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글에서는 남양 洪氏의 역사, 주요 인물, 분파,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남양 홍씨의 기원과 계보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계(唐洪系)와 토홍계(土洪系)로 나뉩니다. 두 계보는 같은 본관을 사용하지만 시조가 다르며,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당홍계(唐洪系)당홍계의 시조는 홍천하(洪天河)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홍천하는 고구려 27대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일원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습니다.당홍계의 중시조는..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1.
효심의 대명사 경주 손씨 명문가의 이야기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경주 손씨(孫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경주 손씨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문으로, 그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족보와 문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경주 손씨의 기원과 역사신라 시대의 기원경주 손씨의 역사는 신라의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한(辰韓) 6촌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가 경주 孫氏의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동국통감》에는 신라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에 6부의 명칭을 개편하면서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바꾸고, 촌장 구례마에게 손씨(孫氏)라는 성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시조 손순(孫順)의 일화경주 孫氏의 시조로 알려진 손순은 신..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0.
반남 박씨, 한국 역사를 빛낸 명문가의 진솔한 이야기 반남 박씨(朴氏)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반남 박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반남 박씨의 역사와 유래반남 박씨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가문의 본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이곳은 반남 朴氏의 뿌리가 되는 지역입니다.시조 박응주반남 朴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입니다. 호장은 고려 시대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중요한 직책으로, 박응주가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중시조 박은박응주의 6세손인 박은(朴訔)은 반남 박씨가 명문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