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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임씨(平澤 林氏)의 역사와 현황 평택 임씨는 중국 은나라의 충신 비간의 후손으로, 그의 아들이 장림산에서 은거하며 임(林)씨 성을 사용하게 된 것이 시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 한림학사 임팔급이 870년경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에 정착한 이후, 전객령계와 충정공계의 두 계파로 나뉘어 발전해 왔습니다.평택 임씨 기원과 발전 과정시조와 유래평택 임씨의 태시조는 중국 은나라의 충신 비간(比干)입니다. 비간의 아들 견(堅)이 아버지가 주왕에게 살해당한 후 장림산(長林山)에 은거하면서 수풀 임(林)자를 성씨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 평택 林氏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입니다. 그는 당나라에서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냈으나, 870년경 정치적 박해를 피해 7명의 학사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현재의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정착했습니다...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14.
풍양 조씨(豊壤趙氏), 천년의 역사와 미래를 잇다 고려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풍양 조씨(趙氏)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현 풍양현)를 관향으로 합니다.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7대에 걸쳐 이조판서를 배출하고 고구마를 도입하는 등 한국의 정치, 문화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풍양 조씨 기원풍양 조씨는 경기도 남양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로, 그 역사와 기원이 매우 깊습니다.시조와 유래풍양 조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조맹(趙孟)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바우(岩)였으며,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해당하는 풍양현에서 태어났습니다.바우는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서 은둔하며 살던 도인이었는데, 70세의 나이에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영..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13.
능성 구씨(綾城具氏)의 역사와 현황 능성 구씨(具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온 명문가입니다. 2024년 현재 17만여 명의 종친이 전국 각지에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능성 구씨의 기원능성 구씨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토착 성씨입니다.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습니다.토착성씨 근거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것은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확인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능성현 토성조에서 구씨를 능성현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중국 도래설 반박일부에서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했다고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12.
단양 우씨(丹陽禹氏)의 역사적 맥락과 가문의 발전 단양 우씨는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족적을 남긴 가문으로서, 특히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걸쳐 11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학문과 충절의 전통을 이어온 명문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본 문서는 단양 우씨의 역사적 발자취와 현대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고찰해 보겠습니다.단양 우씨 가문의 기원과 발전과정시조와 가문의 형성시조 우현(禹玄)은 고려 시대에 정조호장(正朝戶長)이라는 지방 행정직을 수행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 하나라 우왕의 혈통이라는 설이 전해지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신라 말 고려 초 단양 지역의 토착 세력이 독자적 성씨로 발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가문의 도약기단양 우씨가 중앙 정계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한 시기는 6세손 우중대(禹仲大) 대에 이르러서입니다. 문하시중이라는 고위직에 오른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11.
달성 서씨(達城徐氏),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는 명문가 달성 서씨(徐氏)는 신라시대 도시조 서신일(徐神逸)부터 이어져 온 천년 명문입니다.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는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향파(鄕派)로서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습니다.달성 서씨의 기원시조와 도시조달성 서씨의 도시조는 신라 헌덕왕 9년에 태어난 서신일(徐神逸)입니다. 그는 효공왕 때 아간(阿干)의 벼슬에 올랐으며, 신라가 쇠퇴하자 경기도 이천의 효양산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했습니다.중시조는 고려 시대의 서진(徐晉)으로, 1260-1280년경에 태어났으며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초계 주씨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며, 대구 일대에 식읍을 받아 정착했습니다.분파 과정달성 徐氏와 대구 서씨는 원래 같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9.
인동 장씨(仁同張氏)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종합적 고찰 인동 장씨(張氏)는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명문가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동 장씨의 역사적 계보와 인물, 문화유산, 그리고 현대적 계승 노력을 종합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전통 종중의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인동 장씨의 시조와 계통인동 장씨는 크게 두 개의 다른 계통으로 나뉩니다.1. 상장군계시조는 고려 초의 장금용(張金用)으로,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을 지낸 인물입니다.그의 아들 장선(張善)이 1072년 금오위 상장군에 올라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2. 직제학계시조는 장계(張桂)로, 1305년 국자진사에 등과하여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습니다.조선 초에 5개 파로 나뉘어 영주, 예천, 문경, 단양 등지로 퍼져나갔습니다.본관의 유래와 변천인동 장씨..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8.
목격자, 증인도 없다, 일관되지 않은 고소인 거짓 진술만 있을 뿐 목격자, 증인도 없다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추형오가 언급하지도 않았던 말이 경찰 송치장에 쓰이고, 버젓이 공소장에 기록되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경찰은 그런 식으로 해 왔을 것이다. '누가 감히 경찰 수사기록을 들여다보겠나'라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당신들의 추잡한 행위가 과거처럼 묻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용석 확인서, 추 주사가 시켰다 "면장님, 필요하다면 제가 확인서 써 드릴 수 있습니다." 2019년 5월 어느 날, 지용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놈아, 일이 이렇게 된 게 네놈의 엉뚱한 말 때문인데 이제 와서 뭔 소리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난 일을 되짚어 따져봐야 해결될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헤쳐..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1. 7.
충주 지씨(忠州池氏) 대동보, 1470년 편찬된 족보 고려 초부터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충주 지씨는 송나라 홍농 출신의 지경(池鏡)을 시조로 하는 명문가문입니다. 960년 고려에 정착한 이래, 문무양반의 전통을 이어오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고려 말 지문사걸(池門四傑)로 불리는 걸출한 인물들을 통해 그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시조와 유래충주 지씨의 시조는 지경(池鏡, 903-1003)으로, 중국 송나라 홍농 출신입니다. 그는 960년(고려 광종 11년)에 송나라의 태학사이자 봉사관으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했으며, 후에 금자광록대부 태보평장사의 벼슬에 올랐습니다.본관의 유래충주가 본관이 된 것은 시조 지경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종해가 고려 시대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충원백(忠原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7.
성주 이씨,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충절의 가문 신라의 마지막 숨결을 함께했던 충절의 가문,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성주 이씨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8세대 이내에 문형 18명, 상신 15명, 문과급제자 75명을 배출한 기록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성주 이씨의 시조와 연원성주 이씨의 시조는 이순유(李純由)로, 신라 말기 경순왕(927~935) 시대에 이부상서와 재상을 지낸 인물입니다. 이순유는 원래 경주 이씨의 시조인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의 양부에서 이(李)씨 성을 하사받은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본관 유래성주 이씨가 본관을 성주로 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신라 멸망 후 이순유는 이름을 극신(克臣)으로 바꾸고 경상북도 성주읍 경산리로 은거했습니다.마의태자와 함께 신라 부흥을 도모했으나..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6.
함안 조씨(咸安趙氏),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명문가 이야기 고려 개국기부터 현재까지, 충절과 학문의 정신으로 빛나는 함안 조씨(趙氏)의 역사는 대한민국 성씨 문중의 자랑스러운 표상이 되어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찬란한 시작, 시조의 유래함안 조씨의 시조 조정(趙鼎) 대장군은 후당 출신의 명문가 자제였습니다. 자는 우보(禹寶), 호는 모당(慕唐), 시호는 충장(忠壯)으로, 뛰어난 무략과 지략을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신라 말 혼란기에 두 아우 조부(趙釜)와 조당(趙鐺)과 함께 한반도에 정착하여,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의 대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특히 931년 고창성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워 개국벽상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이는 함안 조씨가 고려 개국공신 집안으로서의 위상을 확..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