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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울분이 일었다

aulir 2024. 11. 3.
판결문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판사의 판결은 정확해야 한다. 객관성은 당연히 필수다. 검사의 공소장이나 변호인 변론서에 담긴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주관대로, 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판사의 권한이 아니다. 당신들 스스로 좌파 판사니 뭐니 하는 말을 듣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시리즈를 마치면 로스쿨 학생들에게 이 사건 내용 전문을 전달할 계획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교훈과 과연 수사기관의 수사과정 그리고 판결이 옳은지 어린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자 함이다.

판사는 무엇을 근거로 그 따위 판단을 했을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제 판결만 남았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아쉬운 건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결과에 따라 무고를 비롯해 위증을 걸어 '그들이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 밝힌다면 이 사건 실마리는 풀릴 것으로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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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낮 12시. 법원으로 향했다. 판결은 2시에 열린다. 미리 법원 휴게소에 들러 심호흡이라도 크게 해 볼 참이었다.

변호인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인들은 보통 판결엔 참여하지 않는다. 재판에 졌을 경우,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기 때문으로 보였다.

법원 앞엔 수십 명의 기자가 모여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도 몇 대 보였다. 나를 취재하기 위해? 아니다. 같은 날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몇몇 시장 군수들 판결이 있었다. 낯익은 기자도 보였다. 시선을 피하는 그에게 먼저 아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판사는 나를 법정 한가운데 세웠다. 판결하기 위함이다. 방청객들 모두 숨을 죽였다. 먼지가 바람에 날면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피고인에 대한 형을 징역 8개월로 정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그 형 집행을 유예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교도소에 갇히지 않았을 뿐이지, 징역형이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너무 커다란 충격 탓일까,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판사는 간략하게 판결 이유문을 읽었으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판사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묻고 싶었다. 아니 그 자리에서 따지려 했다.

판사는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법정 뒤로 사라졌다.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장이 떨려 법정에 같이 갈 수 없다는 아내에게 '정의가 없다면 세상은 벌써 무너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라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변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같은 날 오후 4시경이었다. "이게 뭐냐! 대체 어떻게 된 거냐!"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냉정해지자….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지 않나. 항소심도 있다.

'얼마간 시간이 있으니 패소 원인을 차분하게 짚어보자'는 변호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건 오직 변호인이었다.

경찰의 밴드 접근에 대한 판단, 과연 정당한가!

"2심에선 변호인을 바꾸셔도 됩니다. 항소절차는 저희가 다 이행해 드리겠습니다."

3일 후, 변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변호인은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는 걸 안다. 법무법인에 따라 변호인 수임료는 천차만별이다. 상상을 넘어설 만큼 비쌀 수도 있다.

1심을 준비하면서 변호사 비용만 6천여만 원이 지출됐다. 공직 30년 퇴직금을 1심에서 날린 셈이다. 지금까지 같이했던 변호인에게 2심을 의뢰한다면 3천만 원을 더 내야 한다. 2심까지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해 지금 상황에 대처하느니 돈이 더 들더라도 기존 변호인이 낫지 않겠느냐는 아내 말에 동의했다.

옛말에 '재판 몇 번이면 집안 망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지난 3월 29일, 검사는 징역 8개월을 구형했었다. 검사가 집행유예를 구형하는 경우는 드물다. 판사는 구형보다 낮은 판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재판에선 판사가 검사 구형대로 판결했다. 검찰 공소사실이 맞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변호인이 밝혀낸 숱한 증거들, 증인들이 쏟아냈던 (명백하게 거짓으로 밝혀진) 위증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며칠 뒤, 변호인으로부터 판결문을 건네받았다. 정말이지, 읽고 싶지 않았다. 판결일 충격 탓인지 잠재의식은 내게 내키지 않다는 신호를 보냈다.

14페이지의 판결문. 그중 검사 공소사실을 빼면 9장에 불과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따위 판단을 했는지 판사에 대한 적개심마저 일었다. 주요 내용을 나열해 보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이유는 이렇다.

판사는 먼저 경찰의 '남성면 사람들' 밴드의 캡처화면 증거능력을 언급했다. 경찰에서 별도 수색영장 발부 없이 가명으로 비공개 밴드에 접근한 것에 관한 판단이다.

「변호인은 네이버 밴드 '남성면 사람들'에 피고인 및 여러 사람이 작성한 게시글 및 댓글이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압수 및 수색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수집된 증거들은 위법수집 증거라고 주장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는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가리킨다. 문제 되는 캡처화면에는 게시글 및 댓글 작성자 성명 등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증거로서 문제 되는 부분은 피고인이 밴드에 게시한 글인데, 이는 피고인이 군수 관련 정보 또는 본인 생각을 1,700여 명 밴드 회원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와 같은 게시글은 개인정보 보호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개인정보'에 해당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이 사건 밴드는 가입 단계에서 남성면 거주를 묻고, 실명 기재를 요구하여 최종적으로 운영진이 회원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밴드 부운영자 법정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밴드에는 회원자격 및 자격 없는 회원에 대한 조치에 관하여 문서화되거나 확립된 규약이 없다.
남성면 비거주자가 가입하거나 비실명으로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수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성면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비실명으로 가입하여 글을 게시하였던 사례도 있었다. 피고인 휴대전화에서 업적 홍보행위를 시사하는 증거가 발견되자, 경찰은 이 사건 밴드에 거주지를 남성면으로 기재하고 가명으로 가입한 뒤 관련 증거를 수집하였는데, 이와 같은 증거수집행위가 사회상규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고, 반드시 압수수색 절차를 거쳐서 게시물을 열람ㆍ복사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다.」


나는 이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 경찰에선 압수ㆍ수색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런 무리수를 띄웠을까! 법원에서 압수ㆍ수색을 허용하지 않거나,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018년 11월 1일 경찰 압수수색 신청 시(검찰 청구) 판사는 압수범위를 최소한으로 규정했었다.

밴드에 처음 접근하면 '남성면 사람들만 가입이 허용된다'는 문구가 있고, 가입 신청 시 '남성면 어디에 사는지' 묻는 화면이 뜬다. 일반인들이야 신분을 속이고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면 그에 따라야 한다. 공무원 신분인 경찰이 그래선 안 된다는 말이다.

밴드 접근이 이루어지면 수사관이 목표한 용의자 외에 일반회원들 정보도 가감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행위를 사찰로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경찰은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비공개 밴드에 접근했을 때, 이를 수사해야 하는 집단이지, 그들 스스로 신분을 속여가며 비공개 SNS에 접근하는 조직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찰 수사기법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간에 이런 말도 있다. '과학의 발달로 경찰수사 환경은 향상됐으나, 그들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

법원은 이에 대해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법원 판결은 판례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 가타부타 논란이 나올 소지를 남겼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문

판사는 밴드 게시글이 업적 홍보에 해당하는지도 판단했다. 사실 보나 마나다. 밴드 게시글을 유죄로 판단하기 위해 '경찰 밴드 접근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변호인은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 각 행위가 모두 공직선거법상 업적 홍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공직선거법 제86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 중 업적이란, 선거에서 긍정적 평가자료가 될 수 있는 일체의 사회적 행위이다(대법원 1997.4.25. 선고).

구체적 사안에서 이에 해당하는지는 후보자의 구체적 기여 행위, 기술 여부, 기술된 행위의 구체적 실천ㆍ달성 여부, 후보자의 성명, 사진, 발언 등 직접 인용 또는 포함 여부, 기술된 행위가 자치단체장으로서 의례적 행위를 넘어선 후보자의 적극적 기여 및 활동인지 여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별지 범죄목록 기재 각 행위를 분석해 보면 11건의 각 행위는 표현의 구체적인 방법과 수준,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군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반면 9건의 각 행위는 군수에 대한 업적 홍보 행위로 평가하여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이 부분 변호인 주장은 일부 타당하다.」


내가 밴드에 게시했던 700여 개 게시물 중 경찰에선 50건을 혐의가 있다고 봤고, 이를 넘겨받은 검찰은 다시 20건으로 추려 유죄 근거로 기소했으나 판사는 11건만 유죄로 판단했다.

방 이장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은 2018년 4월 말 10:00 무렵 남성면사무소 뒤편 공터에서 용정리마을 이장 겸 면 이장협의회장인 방호석 이장에게 '회장님 이번에 현 군수를 같이 밀어줍시다. 만약에 군수님이 당선되지 않으면 나는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합니다.'라는 취지로 말을 하여 현 군수 지지를 호소하였다. 검사는 의견서를 통해 범죄일시와 관련 10:00 부분을 삭제하고, '2018년 4월 말'로 공소사실을 정정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판단한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얼마나 억지성 꿰맞추기 식으로 일관했는지 알 수 있다. 검사는 조사과정에서 방 이장으로부터 경찰 조사와 다른 4월 10일 며칠쯤이란 진술을 들었다. 그런데도 공소장에는 경찰에서 송치한 내용대로 4월 말 10시경으로 특정했다. 

이후 방 이장은 법정 진술에서 4월 16일과 4월 말, 두 차례란 엉뚱한 진술을 했었다. 이런 상황에 몰리자 검사는 갑자기 '4월 말 10시' 부분을 빼고 '4월 말'로 공소사실을 정정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그렇게 되면 변론이 무척 어려워진다. 알리바이 범위가 '특정 시간대'에서 '하루 중'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판사는 방 이장에 대한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방 이장 법정진술, 경찰서 진술, 본인 진술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2018년 4월 16일에서 4월 말 사이 방 이장을 상대로 현 군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의심이 들기는 하나, 방 이장 각 진술이 다소 부정확한 점, 방 이장이 주장했던 4월 말, 즉 4월 26일에서 4월 30일까지 피고인이 면사무소에 있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방 이장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판결문, 히브리어 한 구절을 읽는 듯했다

판사는 추형오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설명이 참 모호하다.

「상상적 경합과 법조경합 구분은 구성요건적 평가와 보호법익 측면에서 고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상 문제 되는 각 처벌 규정 구성요건과 법정형, 보호법익, 입법 취지, 연혁 등을 종합해 보면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는 공무원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 구성요건과 보호 법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한 경우 외관상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와 공무원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 구성 요건에 각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만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 사실 중 공무원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의 점은 죄가 되지 않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법조경합 관계에 있는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아니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가? 마치 어려운 히브리어를 읽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중요한 건 추형오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 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는 추형오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있다. 그의 진술은 매번 번복되거나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곤 했다.

"세상에 어떤 미친 공무원이 거짓으로 상급자를 고발한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추형오의 얼토당토 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유죄로 판결한 게 아닐까?"


지인의 말이 판결문보다 훨씬 훌륭하다. 미치지 않은 이상 공직사회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직원이 면장을 고발하는 경우란 없을 테니 말이다.

정황상 추형오 뒤에 어떤 세력이 있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 추형오에게 '이번 일이 잘돼 현 군수가 물러나고 보궐선거로 D당 후보인 유서현이 군수가 되면, 너를 과장까지 보장해 준다'란 제안을 했다면, 그는 선뜻 응했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행실이 말해 준다.

실제 추형오가 양심선언을 한다며 경찰서를 찾았을 당시인 2018년 9월 4일, 지역사회는 뒤숭숭했었다. 당선된 현 군수가 구속되고 보궐선거가 곧 치러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소문 근거지는 D당 쪽이었다. 그 사람들은 당선된 현 군수 일거수일투족을 고발 대상으로 삼았다. 아무거나 걸려라.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어느 공무원은 '군수가 곧 바뀔 텐데 그때까지 나는 일 안 한다.'란 말을 서슴없이 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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