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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노씨, 유서 깊은 문화재에서 알 수 있는 천년의 명문가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광주 노씨(盧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광주 노씨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로,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광주 노씨, 의 기원과 역사광주 노씨의 역사는 신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유주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가 877년, 당나라 희종 5년에 황소의 난을 피해 아들 9형제와 함께 신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했다가, 후에 신라 효공왕 때 평안도 룡강(龍岡)으로 옮겨 뿌리를 내렸습니다.노수의 아들 중 한 명이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졌고, 이로 인해 후손들은 그를 득관조로 삼아 광산(현재의 광주광역시)을 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2.
남양 홍씨, 고구려부터 현재까지 명문가의 역사와 유적 남양 홍씨(洪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그 역사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글에서는 남양 洪氏의 역사, 주요 인물, 분파,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남양 홍씨의 기원과 계보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계(唐洪系)와 토홍계(土洪系)로 나뉩니다. 두 계보는 같은 본관을 사용하지만 시조가 다르며,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당홍계(唐洪系)당홍계의 시조는 홍천하(洪天河)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홍천하는 고구려 27대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일원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습니다.당홍계의 중시조는..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1.
효심의 대명사 경주 손씨 명문가의 이야기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경주 손씨(孫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경주 손씨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문으로, 그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족보와 문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경주 손씨의 기원과 역사신라 시대의 기원경주 손씨의 역사는 신라의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한(辰韓) 6촌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가 경주 孫氏의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동국통감》에는 신라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에 6부의 명칭을 개편하면서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바꾸고, 촌장 구례마에게 손씨(孫氏)라는 성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시조 손순(孫順)의 일화경주 孫氏의 시조로 알려진 손순은 신..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0.
반남 박씨, 한국 역사를 빛낸 명문가의 진솔한 이야기 반남 박씨(朴氏)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반남 박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반남 박씨의 역사와 유래반남 박씨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가문의 본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이곳은 반남 朴氏의 뿌리가 되는 지역입니다.시조 박응주반남 朴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입니다. 호장은 고려 시대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중요한 직책으로, 박응주가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중시조 박은박응주의 6세손인 박은(朴訔)은 반남 박씨가 명문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9.
아내의 호소문, 눈물이났다 아내의 호소문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두 번째 이야기] 공직사회는 보기와는 다르게 인정으로 다져진 집단이다. 시골일수록 그 정도가 강하다. 감사를 받을 때, 상급자의 잘못도 본인의 불찰이라고 우긴다. 그게 전통이고 의리였다. 그런데 여기, 온갖 거짓과 모함으로 자신의 수하에 있던 직원의 밥줄을 끊어 놓은 자가 있다. 세상에 이런 공직자는 없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최종 변론서 작성해야 하니까, 서울에 다녀가시죠." 변호인을 만나러 가는 길, 그날처럼 홀가분한 날도 없었다. 수없이 변호인 미팅을 위해 서울에 오르내리는 동안 별 상상을 다 했었다. '만에 하나 패소한다면 어쩔 것인가!'란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의식 저변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튀어나온 몹쓸 상상은 나를 암울하..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18.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 천년의 역사를 품은 안동 김씨 가문 이야기 이번 글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안동 김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안동 김씨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뉘는데, 각 가문의 역사와 특징,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안동 김씨의 개요안동 金氏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가문으로, 많은 정치인과 학자, 장군들을 배출했습니다. 특이점으로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뉜다는 것이며, 두 계열 모두 조선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구안동김씨구안동김씨는 더 오래된 계보를 가진 가문입니다.시조 : 김숙승(金叔承), 신라 경순왕의 손자중시조 : 김방경(金方慶), 고려 시대의 명장인구 : 2015년 기준 약 789,790명으로 우리나라에서 18번째로 큰 성씨주요 특징 -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큰 세력을 떨침- 조선..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8.
여산 송씨의 역사와 주요 분파 항렬표 여산 송씨는 우리나라의 주요 성씨 중 하나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입니다. 이 가문의 역사, 특징, 주요 인물들, 그리고 분파와 항렬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여산 송씨의 유래와 시조여산 송씨의 시조는 송유익(宋惟翊)입니다. 그는 고려 시대에 진사(進士)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습니다. 여산 송씨의 본관인 여산은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해당합니다.여산 宋氏의 원시조는 중국 춘추시대의 왕세손 3자인 송주은(宋柱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 송유익은 송주은의 11세손이라고 전해지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러한 유래는 많은 우리나라 성씨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연관성을 보여..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7.
순흥 안씨, 정축지변,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시련을 극복한 명문가의 역사 순흥 안씨(安氏)는 천년이 넘는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성씨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순흥 안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유산, 그리고 항렬표 등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순흥 안씨의 기원과 역사순흥 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입니다. 고려 신종(1197-1204) 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사후에 신호위상호군에 추봉된 인물입니다. 본관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순흥 安氏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크게 번창했습니다. 특히 시조의 증손인 안향(安珦) 이후 11대에 걸쳐 과거에 급제하고, 20명이 봉군되었으며, 17명의 대제학을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6.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사실상 재판은 끝났다고 봐야한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한 번째 이야기] 오일수는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증언을 했다. 그는 추형오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보니 추를 보호하겠다는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추잡한 거짓을 밝히는 것을 떠나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다. 그는 스스로 구렁텅이 속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예상했던 오일수의 발뺌 다음은 오일수 차례다. 그는 지난 12월31일 나와의 전화통화가 녹취된 줄 모른다. 그가 법정에서 거짓을 말하면 녹취록을 공개하고, 필요할 때 녹음 파일을 들을 작정이었다. 법정에 들어오기 전, 그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방청객이 내게 귀띔한 말이 생각났다. '난 절대로 면장에게 이로운 증언하지 않을 거야'란 말을 들었다고..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16.
나주 임씨의 역사 그리고 역사적 문화유산 나주 임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시조 임비(林庇)부터 현대의 저명 인사들까지, 나주 임씨는 한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주 임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유산, 그리고 현대적 의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나주 임씨의 시작나주 임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을 지낸 임비(林庇)입니다. 임비는 1282년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공로로 보좌2등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이는 나주 林氏가 고려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입니다.나주 林氏의 본관인 나주는 전라남도 나주시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나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부의 중요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