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서씨(達城徐氏),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는 명문가
달성 서씨(徐氏)는 신라시대 도시조 서신일(徐神逸)부터 이어져 온 천년 명문입니다.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는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향파(鄕派)로서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습니다.
달성 서씨의 기원
시조와 도시조
달성 서씨의 도시조는 신라 헌덕왕 9년에 태어난 서신일(徐神逸)입니다. 그는 효공왕 때 아간(阿干)의 벼슬에 올랐으며, 신라가 쇠퇴하자 경기도 이천의 효양산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중시조는 고려 시대의 서진(徐晉)으로, 1260-1280년경에 태어났으며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초계 주씨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며, 대구 일대에 식읍을 받아 정착했습니다.
분파 과정
달성 徐氏와 대구 서씨는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 달성 서씨는 향파(鄕派)로서 시골에서 생활하며 벼슬을 멀리했습니다.
- 대구 서씨는 경파(京派)로서 서울에서 살며 관직에 많이 진출했습니다.
두 집안은 1702년에 처음으로 족보를 함께 만들었으나, 이후 의견 충돌로 경파가 독립하여 대구 서씨로 분리되었습니다.
세계(世系)
달성 서씨의 대표적인 계보는,
- 도시조 서신일
- 서필
- 서희
- 서주행
- 서한
- 서신
- 서무질
- 중시조 서진으로 이어집니다.
달성 徐氏의 주요 분파와 항렬표
주요 분파
달성 서씨는 크게 8개의 주요 분파로 나뉩니다.
- 현감공파(縣監公派)
- 학유공파(學諭公派)
- 판서공파(判書公派)
- 감찰공파(監察公派)
- 진사공파(進士公派)
- 생원공파(生員公派)
- 참판공파(參判公派)
- 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항렬표
달성 서씨의 세대별 항렬은 다음과 같습니다.
19세대~24세대
- 19세: 간(幹)/상(相)
- 20세: 병(炳)/광(光)/열(烈)/병(丙)
- 21세: 기(基)/정(廷)/재(載)/곤(坤)/규(奎)
- 22세: 석(錫)/진(鎭)
- 23세: 수(洙)/원(源)/호(浩)
- 24세: 동(東)/정(正)
25세대~31세대
- 25세: 교(敎)
- 26세: 보(輔)/규(逵)
- 27세: 덕(德)
- 28세: 영(永)
- 29세: 걸(杰)
- 30세: 현(炫)
- 31세: 준(埈)
특이사항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달성 서씨와 대구 서씨는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달성 서씨는 향파(鄕派), 대구 서씨는 경파(京派)로 구분됩니다. 1702년에 처음으로 족보를 함께 만들었으나, 이후 의견 충돌로 경파가 독립하여 대구 서씨로 분리되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달성 徐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고려시대
시조와 직계
- 서진(徐晋) :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에 봉해짐.
- 서기준 : 문하시중찬성사를 지낸 2세손.
- 서영 : 문하시중찬성사를 지낸 3세손, 문장과 업적으로 명망이 높았음.
조선전기
- 서침(徐沈/徐沉) : 5세손, 전의소감과 전라도처치사를 지냈으며, 달성을 나라에 헌납하고 대구 부민들의 환곡 이자 감면을 청원하여 받아들여짐.
조선후기
- 서응시(徐應時) : 임진왜란 때 조헌을 따라 금산전투에서 순절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됨.
- 서인충(徐仁忠) :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수전, 육전에서 큰 공을 세워 부산진 첨절제사에 올랐고, 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됨.
근현대 주요 인물
- 서병오(徐丙五) : 시서화에 능해 '팔능'으로 불림.
- 서상일(徐相日) : 대동청년당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끔.
- 서상한(徐相漢) : 서상일의 아우로, 영친왕 결혼식 전에 총독부 요인 암살을 기도.
특기사항
달성 서씨의 5세손 서침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달성공원의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는 '서침나무'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달성 徐氏 관련 주요 문화재와 유적
구암서원(龜巖書院)
- 위치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17길 20(산격동)
- 관리자 : 달성서씨대종회
- 지정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
- 특징
- 1675년(숙종 1년) 창건
- 1718년 대구 동산동으로 이건 되며 사가정 서거정이 추향 됨
- 1995년 현재의 연암산 부지로 이전
달성공원 관련 유적
서침나무
- 세종대왕이 서침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심은 회화나무
- 현재 달성공원 내에 위치
달성서씨유허비
- 1971년 건립
- 달성서씨대종회에서 달성을 조정에 바친 것을 기리기 위해 설립
시조 묘역
- 위치 : 대구광역시 달성군 문양리 봉계산
- 특징
- 시조부터 4세 선조까지 함께 묘단으로 조성
- 인근에 영모재(永慕齋) 위치
- 매년 한식날 종원들이 모여 시조부터 4세 선조까지 묘제를 봉행
첨모재(瞻慕齋)
- 위치: 대구 수성구 황금동
- 소유 : 달성서씨판서공파
- 달성서씨의 주요 재실 중 하나로 문중의 제사와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달성토성
- 달성 서씨의 세거지였던 곳으로, 세종대왕 때 문중에서 국가에 헌납
- 현재는 달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사적 제62호로 지정
달성 徐氏 집성촌, 종친회, 족보 정보
주요 집성촌
경상도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북구, 수성구, 달성군
- 경북 달성군 가창면, 영일군, 고령군 일원
- 경북 안동군 남후면, 상주군 사벌면, 공성면
- 경남 고성군 삼산면, 영오면
- 경남 양산군 상북면, 밀양읍, 창녕읍
기타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전라북도 익산, 무주 일원
- 울산광역시 중구, 울주군
종친회 현황
중앙종친회
- 달성서씨대종회는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 경내에 위치
- 2019년 구암서원 옛터(동산동)를 대구시에 기부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
주요 종파회
- 판서공파종회
- 감찰공파종회
- 현감공파종회 등 9개 주요 종파회 운영
족보 관리
족보 발행 현황
- 1702년 첫 족보 발간(임오보)
- 1755년 을해보 발간
- 현재는 대동보 형태로 관리
족보 관리 특징
- 달성서씨대종회에서 중앙 관리
- 각 종파별로 파보 별도 관리
- 정기적인 족보 편찬위원회 운영
문중 재산 관리
- 구암서원, 영모재, 첨모재 등 주요 문중 건물 보유
- 시조 묘역 및 재실 관리
- 매년 시조 제향 봉행(한식날)
달성 徐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문화재 보존 및 기부 활동
달성 서씨 대종회는 2019년 동산동에 위치한 옛 구암서원(약 2,549㎡ 규모)을 대구시에 기부했습니다. 이는 문중의 사유재산을 공공의 문화유산으로 전환하여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진취적 결정이었습니다. 기부된 구암서원은 문화·역사 보존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고택체험과 전통 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종친회 현대화 사업
대종회는 다음과 같은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전자족보 시스템 구축 및 디지털화
- 종중 소유 문화재의 체계적 관리와 보존
- 젊은 세대의 종친회 참여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 문중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교육 및 장학 사업
달성 서씨 대종회는 후손들의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해:
- 정기적인 장학금 지원 제도 운영
- 청소년 대상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 실시
- 종친회관에서 역사문화 강좌 개최
- 젊은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 운영
문화유산의 현대적 계승
- 구암서원과 달성토성 등 문화유산의 현대적 활용방안 모색
- 서침 선생의 선비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문화 프로그램 개발
- 달성서씨유허비 주변 환경 정비와 역사문화 공간으로의 활용
이러한 활동들은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창출하여, 문중의 역사와 전통을 미래 세대에게 의미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결론
달성 徐氏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전통을 지켜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구암서원 부지의 공공 기부, 전자족보 시스템 구축, 청년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융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문중의 私有財産을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하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미래 지향적인 활동들은 전통 문중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달성 서씨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적 소명을 다하며 전통과 현대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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