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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견, 판사는 어떻게 판단할까! 검사의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네 번째 이야기] 1심 판결에 앞서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경찰과 다르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위법에 대해 합리화로 일관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비통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도서출판에 이어 블로그에 내용 전문을 게시하는 이유다. 검찰 의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판결일이 4월 26일로 결정됐다. 이때부터 검찰과 변호인(피고 측)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의견서나 증거자료 등을 공판일이 임박해 제출하는 이유다. 검찰에서 어떤 결정적 증거를 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먼저 패를 보일 리도 없다. 그럴 때 이쪽에서 대응에 나선다는 건 천치라도 안다. 상대방도 마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4.
명문가 장수 황씨에 대한 탐구, 여성종친회에 주목 장수 황씨(黃氏)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문 성씨로, 전라북도 장수가 본관입니다. 9세손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장수 황씨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4대 임금을 섬기며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황희를 배출, 명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장수 황씨의 뿌리를 찾아서장수 황씨의 시조는 신라 말 경순왕의 부마이자 시중을 지낸 황경입니다. 9세손인 황공유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 벼슬을 지냈으나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남원 광한루터에 정착했습니다.이후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18세손 황석부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습니다. 황석부의 증손인 황희는 조선 세종대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90년 생애 중 70여 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조선의..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4.
최후 변론서 작성, 징역 8월 구형 최후 변론서 작성 그리고 징역 8월 구형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세 번째 이야기] 최후 변론서를 가식으로 작성했다. '그래야 한다'는 변호인의 의견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D당 모략이다. 현 군수를 잡기 위해 나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 이장이나 추형오(가명)의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썼다가 변호인의 만류로 대폭 수정해야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검찰의 주장 2019년 3월 22일,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변호인이 주장했던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밴드에 접근'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의견보다 항변에 가까웠다."피고인은 이 사건 밴드 게시글에 대하여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되어 취득한 것이므로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3.
여흥 민씨, 조선시대 왕비 배출의 명가 이야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가문은 여흥 민씨(驪興閔氏)입니다.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이 가문은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이 대표적인 명문가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시조와 가문의 시작여흥 민씨의 시조는 민칭도(閔稱道)입니다. 고려시대 상의봉어라는 관직을 지낸 그는 가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본관인 여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과거에는 황려 민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는 지역의 역사적 변천과 함께한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고려시대의 발전초기 성장기민영모 : 고려 인종 시대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며 가문의 번영을 이끈 주역민식 : 1167년 과거 급제 후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3.
광주 노씨, 유서 깊은 문화재에서 알 수 있는 천년의 명문가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광주 노씨(盧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광주 노씨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로,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광주 노씨, 의 기원과 역사광주 노씨의 역사는 신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유주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가 877년, 당나라 희종 5년에 황소의 난을 피해 아들 9형제와 함께 신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했다가, 후에 신라 효공왕 때 평안도 룡강(龍岡)으로 옮겨 뿌리를 내렸습니다.노수의 아들 중 한 명이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졌고, 이로 인해 후손들은 그를 득관조로 삼아 광산(현재의 광주광역시)을 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2.
남양 홍씨, 고구려부터 현재까지 명문가의 역사와 유적 남양 홍씨(洪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그 역사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글에서는 남양 洪氏의 역사, 주요 인물, 분파,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남양 홍씨의 기원과 계보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계(唐洪系)와 토홍계(土洪系)로 나뉩니다. 두 계보는 같은 본관을 사용하지만 시조가 다르며,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당홍계(唐洪系)당홍계의 시조는 홍천하(洪天河)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홍천하는 고구려 27대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일원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습니다.당홍계의 중시조는..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1.
효심의 대명사 경주 손씨 명문가의 이야기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경주 손씨(孫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경주 손씨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문으로, 그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족보와 문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경주 손씨의 기원과 역사신라 시대의 기원경주 손씨의 역사는 신라의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한(辰韓) 6촌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가 경주 孫氏의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동국통감》에는 신라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에 6부의 명칭을 개편하면서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바꾸고, 촌장 구례마에게 손씨(孫氏)라는 성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시조 손순(孫順)의 일화경주 孫氏의 시조로 알려진 손순은 신..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0.
반남 박씨, 한국 역사를 빛낸 명문가의 진솔한 이야기 반남 박씨(朴氏)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반남 박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반남 박씨의 역사와 유래반남 박씨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가문의 본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이곳은 반남 朴氏의 뿌리가 되는 지역입니다.시조 박응주반남 朴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입니다. 호장은 고려 시대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중요한 직책으로, 박응주가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중시조 박은박응주의 6세손인 박은(朴訔)은 반남 박씨가 명문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9.
아내의 호소문, 눈물이났다 아내의 호소문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두 번째 이야기] 공직사회는 보기와는 다르게 인정으로 다져진 집단이다. 시골일수록 그 정도가 강하다. 감사를 받을 때, 상급자의 잘못도 본인의 불찰이라고 우긴다. 그게 전통이고 의리였다. 그런데 여기, 온갖 거짓과 모함으로 자신의 수하에 있던 직원의 밥줄을 끊어 놓은 자가 있다. 세상에 이런 공직자는 없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최종 변론서 작성해야 하니까, 서울에 다녀가시죠." 변호인을 만나러 가는 길, 그날처럼 홀가분한 날도 없었다. 수없이 변호인 미팅을 위해 서울에 오르내리는 동안 별 상상을 다 했었다. '만에 하나 패소한다면 어쩔 것인가!'란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의식 저변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튀어나온 몹쓸 상상은 나를 암울하..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18.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 천년의 역사를 품은 안동 김씨 가문 이야기 이번 글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안동 김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안동 김씨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뉘는데, 각 가문의 역사와 특징,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안동 김씨의 개요안동 金氏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가문으로, 많은 정치인과 학자, 장군들을 배출했습니다. 특이점으로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뉜다는 것이며, 두 계열 모두 조선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구안동김씨구안동김씨는 더 오래된 계보를 가진 가문입니다.시조 : 김숙승(金叔承), 신라 경순왕의 손자중시조 : 김방경(金方慶), 고려 시대의 명장인구 : 2015년 기준 약 789,790명으로 우리나라에서 18번째로 큰 성씨주요 특징 -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큰 세력을 떨침- 조선..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8.
여산 송씨의 역사와 주요 분파 항렬표 여산 송씨는 우리나라의 주요 성씨 중 하나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입니다. 이 가문의 역사, 특징, 주요 인물들, 그리고 분파와 항렬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여산 송씨의 유래와 시조여산 송씨의 시조는 송유익(宋惟翊)입니다. 그는 고려 시대에 진사(進士)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습니다. 여산 송씨의 본관인 여산은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해당합니다.여산 宋氏의 원시조는 중국 춘추시대의 왕세손 3자인 송주은(宋柱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 송유익은 송주은의 11세손이라고 전해지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러한 유래는 많은 우리나라 성씨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연관성을 보여..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7.
순흥 안씨, 정축지변,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시련을 극복한 명문가의 역사 순흥 안씨(安氏)는 천년이 넘는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성씨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순흥 안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유산, 그리고 항렬표 등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순흥 안씨의 기원과 역사순흥 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입니다. 고려 신종(1197-1204) 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사후에 신호위상호군에 추봉된 인물입니다. 본관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순흥 安氏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크게 번창했습니다. 특히 시조의 증손인 안향(安珦) 이후 11대에 걸쳐 과거에 급제하고, 20명이 봉군되었으며, 17명의 대제학을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6.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사실상 재판은 끝났다고 봐야한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한 번째 이야기] 오일수는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증언을 했다. 그는 추형오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보니 추를 보호하겠다는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추잡한 거짓을 밝히는 것을 떠나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다. 그는 스스로 구렁텅이 속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예상했던 오일수의 발뺌 다음은 오일수 차례다. 그는 지난 12월31일 나와의 전화통화가 녹취된 줄 모른다. 그가 법정에서 거짓을 말하면 녹취록을 공개하고, 필요할 때 녹음 파일을 들을 작정이었다. 법정에 들어오기 전, 그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방청객이 내게 귀띔한 말이 생각났다. '난 절대로 면장에게 이로운 증언하지 않을 거야'란 말을 들었다고..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16.
나주 임씨의 역사 그리고 역사적 문화유산 나주 임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시조 임비(林庇)부터 현대의 저명 인사들까지, 나주 임씨는 한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주 임씨의 역사, 주요 인물, 문화유산, 그리고 현대적 의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나주 임씨의 시작나주 임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을 지낸 임비(林庇)입니다. 임비는 1282년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공로로 보좌2등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이는 나주 林氏가 고려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입니다.나주 林氏의 본관인 나주는 전라남도 나주시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나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부의 중요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6.
파주 염씨의 고려 개국공신에서 현대 지식인까지 이어진 천년 가문의 역사 파주 염씨( 廉氏)는 대한민국의 주요 성씨 중 하나로,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주요 시기마다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해온 파주 염씨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조와 본관의 유래 파주 염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 시대의 염형명(廉邢明)입니다. 염형명은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되었고, 대사도(大司徒)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본관인 파주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시조의 세거지인 봉성(峰城, 현재의 파주)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중시조 염제신이 곡성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곡성(曲城)으로 바꾸었고, 다시 서원(瑞原)으로 개칭되었다가 최종적으로 파주..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5.
수원 백씨의 발자취와 명문가로서의 위상 수원 백씨(白氏)는 우리나라에서 28번째 큰 성씨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문입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약 38만 1천여 명의 수원 백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수원 백씨 역사, 주요 인물, 문화유산, 현대적 의의 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수원 백씨의 시조와 연원수원 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우경은 중국 소주 출신으로, 780년(신라 선덕왕 1년)에 신라에 귀화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불분명하여 신라 경덕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받들어 1세조로 삼고 있습니다.본관의 유래수원을 본관으로 삼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중시조 백창직의 증손 백휘가 고려 목종 때 수원군에 봉해졌기 때문...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4.
이천 서씨 시조와 업적 등 이천 서씨 항렬표 알아보기 이번 글은 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이천 서씨(徐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천 서씨는 경기도 이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그 역사와 전통이 매우 깊고 풍부합니다. 이천 서씨의 시조와 유래 이천 서씨의 시조는 신라 52대 효공왕 때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 서신일(徐神逸)입니다. 서신일은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벼슬에서 물러나 이천 효양산에 들어가 처사로 살며 후진 교육에 힘썼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이천 徐氏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천이라는 지명의 유래입니다. 고려 태조 18년(935년)에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이곳에 살던 서신통(徐神通)의 아들 서목(徐穆)이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섭대천(..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3.
정선 전씨, 백제시대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역사 대한민국의 유서 깊은 성씨 중 하나인 정선 전씨(全氏)는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명문가문입니다. 백제 건국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선 全氏는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정선 전씨의 역사, 주요 인물,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위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선 전씨의 기원과 역사 정선 전씨의 역사는 백제의 건국과 함께 시작됩니다.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 당시 십제공신(十濟功臣) 중 한 명이었던 전섭(全聶)이 정선 전씨의 시조입니다. 전섭은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습니다. 이는 정선 全氏가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정선 全氏가 현재의 본관을 갖게..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2.
지용석의 법정증언, "누군가 시켰다!" 지용석의 법정증언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 번째 이야기] 운전을 했던 지용석의 증언 중 핵심이 될 만한 말이 있다. '이렇게 말해라, 저렇게 말해라'라고 누군가 시켰다는 증언이다. 누가 그런 지시를 했을까. 그 부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당황했다 다음 증인은 지용석이었다. 그는 증인 출석을 명한 당일 14시까지 등원하지 않았었다. 잠시였지만, 변호인과 나는 그가 기피를 도모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다.그에게 관심을 집중한 건 번복 진술 때문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줄곧 2018년 4월 16일 차 안에서 '면장이 추형오 에게 군수 지지를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었으나, 검찰 전화통화 조사에서 느닷없이 '4월 16일 차 안에서 면장이 추형오 에게 군수 지지 발언하는..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12.
연안 차씨, 대한민국의 명문가, 깊이 들여다보기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주요 성씨 중 하나인 연안 차씨(延安車氏)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역사적 뿌리부터 현대까지, 연안 차씨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안 차씨의 기원과 역사 연안 차씨는 황해남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씨족입니다. 이 가문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득성시조(得姓始祖)로 알려진 차무일(車無一)은 신라 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할 때 큰 공을 세워 시중 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하사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연안 車氏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일화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시조는 고려 시대의 인물인 차효전(車孝全)입니다. 차효전은 고려 개국 당시 큰 공을 세워 대광백(大匡伯)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자(字)는 양운(良運..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