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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사실상 재판은 끝났다고 봐야한다

aulir 2024. 10. 16.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한 번째 이야기]

오일수는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증언을 했다. 그는 추형오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보니 추를 보호하겠다는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추잡한 거짓을 밝히는 것을 떠나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다. 그는 스스로 구렁텅이 속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예상했던 오일수의 발뺌

다음은 오일수 차례다. 그는 지난 12월31일 나와의 전화통화가 녹취된 줄 모른다. 그가 법정에서 거짓을 말하면 녹취록을 공개하고, 필요할 때 녹음 파일을 들을 작정이었다.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녹취록을 통한 진실 공방

법정에 들어오기 전, 그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방청객이 내게 귀띔한 말이 생각났다. '난 절대로 면장에게 이로운 증언하지 않을 거야'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오일수는 추형오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오일수가 후배다. 시골에선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는 형제애보다 끈끈할 때가 많다.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는 또 다른 후배를 끌어주다 보니 학연이란 말도 생겼다. 그가 결코 내게 이로운 증언을 해 줄 리 없다는 뜻이다.

변호인은 먼저 오일수에게 '면장과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 추형오와는 언제부터 친분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면장은 부임 이후 3년 정도, 추형오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15년 정도 아는 사이'라고 했다.

오일수와 나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가 아니다. 그가 남성면 어느 사회단체 임원으로 있을 때 만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추형오와 오일수 관계는 다르다. '선배'와 '후배'로 공고화된 사이다. 그 선배라는 사람(추형오)이 공무원으로 있으니, 실내 장식업을 하는 오일수 입장에선 날개를 단 격이었을 것이다. 그가 증인신문에서 내게 유리한 발언을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증인은 추형오랑 피고인 중 누구와 더 친분이 깊었었나요?"
"친한 것은 추 선배하고 친했죠."


변호인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앞으로 당신이 증언하는 것은 추형오에게 유리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아니면 정면에 있는 판사에게 '그렇게 봐 달라'는 일종의 당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변호인은 작정한 듯 핵심을 파고들었다.

"추형오가 증인한테 '면장에 대해 수사기관에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이렇게 말한 적 있나요?"
"아닙니다."
"추형오가 증인한테 피고인이 '무고로 고소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하겠다.' 이런 말한 적이 있나요?"
"번복한다는 얘긴 안 하고 좋게 갈 수는 있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오일수도 변호인 질문을 예상했던 듯했다. 변호인으로선 그가 모두 부정해야 녹취록을 제시하는데, 그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이 사람들 공통점, 입만 열면 거짓이다

2018년 12월 31일 저녁, 오일수가 내게 전화했을 때, '좋게 갈 수 있겠다'란 말은 없었다. 변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녹취록을 보였다.

"이게 증인과 피고인이 통화한 내용입니다. 그걸 그대로 녹취한 건데, 증인은 그날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결판을 제가 해냈잖아요. 제가 지금 담판을 지었어요 오늘.'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억나시죠?"
"기억 없습니다. 술을 그날 꽤 많이 먹어서."

 

기억이 안 날 수 없다.

좋다! 그날 술을 많이 마셔서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치자. 그러면 이튿날 (술이 깬 멀쩡한 정신으로) 마을 선배인 내 동창을 찾아가 똑같은 말을 한 건 뭔가? 변호인은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결판, 담판이란 게 뭔가요?"
"그러니까 면장님하고 법적인 문제를 좋은 쪽으로 가겠다, 그 얘기를 한 겁니다."

이해되지 않는다. 오일수는 지역 내에서 각급 사회단체 임원을 맡는 등 어느 정도는 식자(識者)로 통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법원에 기소된 사건을 '전화나 만남으로 풀 수 있다'고 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즉흥적 거짓으로 봐야 한다. 변호인과 오일수 신문을 좀 더 지켜보자.

"그렇다면 추형오는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건가요?"
"면장이 전화를 주면 만나겠다. 그 얘길 한 거죠. 그리고 전화를 달라고 얘기를 좀 해 달라. 그 얘길 했습니다."
"여기 있는 녹취록을 좀 읽어보겠습니다. 증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면장님이 추형오한테 한 번 딱 찾아가서 뭔 얘기가 되면 자기는 번복하겠대요. 자기가 실수로 잘못했다는 그 말을 지키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고인이 묻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다는 얘기는 안 하더냐?'라고 묻자 증인은 '그건 저쪽 편이 있잖아'란 말을 했고, 여기서 추형오가 번복이란 표현을 했는데, 그가 말한 번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좋게 해결하겠다는 말을 제가 번복하겠다는 뜻으로 얘기를 한 거 같습니다."
"증인이 추형오 말을 듣고 번복이란 표현을 썼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여기 녹취록을 보면 '자기는 번복을 하겠대요'라고 표현하거든요."
"제가 그 뜻으로 얘기는 했지만, 그렇게 얘기한 거 같진 않습니다."
"자 그럼 증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면장님이 무고죄를 안 건다는 거를', 여기서 '먼저 무고죄를 안 건다는 거'란 표현은 왜 등장한 말인가요?"
"……………………………….."


오일수는 할 말을 잃었다. 5초, 10초, 15초….

그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재판장이 나섰다.

"답변 안 하시는 건가요?"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뜻은 번복해서 좋게 해결하면 면장님 측에서 무고죄로 고소를 안 한다, 예, 그 뜻으로 얘기한 겁니다."


사실 여기서 오일수에 대한 신문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확증을 받자는 심산인지 변호인은 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 만나서 피고인과 추형오가 해결하는 일은, 그는 진술을 번복하고, 피고인은 무고죄로 추형오를 걸지 않고 협상? 이걸 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아닌가요?"
"예, 제가 그런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추형오가 증인에게 위와 같은 통화내용을 법정에서 사실대로 증언하지 말아 달라, 뭐 이런 부탁을 한 적은 없나요?"
"없었습니다."
"자, 두 번째는 그다음 날 증인이 면장 초등학교 동창(이하 '동창')이란 사람을 찾아가서 같은 이야기를 하신 겁니다. 그래서 동창이란 사람이 피고인한테 전화해서 '증인이 찾아와서 추형오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 전달을 한 통화내용입니다. 증인은 '동창'을 만나서 '추형오가 취하하고 이런 거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러면 피고인이 그를 무고죄로 고소할까 그것을 두려워한다.'란 취지로 얘기한 사실이 있지요?"
"그건 기억에 없습니다."
"어쨌든 12월 31일에 증인이 추형오를 만나서, 그에게서 부탁받은 증인이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해서 피고인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고, 피고인뿐만 아니라 '동창'에게도 찾아가서 '추형오가 이렇게 얘기하더라'란 말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맞는가요?"
"예, 맞습니다."
"그러면 그 이튿날인 1월 1일 아침, '동창'을 찾아갔을 때는 술 취한 상태는 아니었던 거죠?"
"그건 아닙니다."

변호인 질문은 끝났다. 오일수도 고충이 있어 보였다. 솔직히 얘기하자니 선배를 파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면 지역 사회나 동문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위증을 하자니 상대방이 녹취록을 들고 있다. 자칫 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오일수는 알았을 것이다.

이젠 검사 차례다. 검사는 오일수 증언을 뒤집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런데 질문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다.

"증인은 이 사건을 어떤 사건으로 알고 있나요?",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 잘 모르시죠?", "증인은 피고인과 자주 만나는 사이인가요?", "피고인과 어떤 사이세요, 정확히?", "평소에도 증인은 피고인하고 개인적인 연락을 한 적은 없나요?".


대체로 이런 질문들이었다.

오일수는 사실대로 말했다. "단순히 면장과 주민 사이다, 개인적인 연락은 없었다." 등.

검사는 판사에게 '증인과 피고인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그래서 이 녹취록을 조작했을 수도 있다'고 어필할 의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내 추측이 맞았다. 검사가 오일수에게 물었다.

"'동창'과 피고인은 어떤 사이인가요? 1월 1일 증인이 '동창'을 찾아간 이유가 뭡니까?"
"'동창'과 면장은 그냥 주민과 면장 사이고, 저와 '동창'은 같이 일을 하는 동네 형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입니다."

 

탄로 난 추의 또 다른 거짓

이어 증인으로 등장한 사람은 H이장이었다. 그를 증인으로 채택한 건 딱 한 가지 사실 확인을 위해서였다.

2018년 9월 4일 경찰서를 찾아간 추형오는 진술 도중 "면장이 H이장에게도 군수 지지를 부탁했다"라고 했었다. '그랬다고 들었다'가 아니고 '했다'란 표현을 썼었다.

걱정되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이장들은 정확히 두 갈래로 나뉘었었다. 한쪽은 D당 후보 지지자들. 나머지 한쪽은 현 군수 쪽 사람들이었다. H이장은 D당 쪽이다. 그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을 경우 상황은 급 반전될 수 있다.

"추형오는 경찰서에서 '피고인이 H이장인 귀하에게도 현 군수를 지지해 달라고 했다'고 진술한 바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증인은 피고인으로부터 특정 후보자를 지지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으시지요?"
"예, 없습니다."


단 몇 초 만에 H이장 증인신문이 끝났다. 그렇게 추형오 거짓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후일 그의 거짓말 기록을 정리해 변호인에게 전달한 것만 20페이지 분량 정도 됐다.

증인신문이 끝난 10개월 뒤, H이장은 내게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한 그는 내게 "법정에서 사실대로 말한 것 때문에 (D당으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됐다"라고 하소연했다.

무슨 말일까? '추형오를 옹호하는 증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D당원들로부터 소외됐다'는 뜻이다. 이 사건에 D당 손길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대세는 기울어졌다

마지막 증인으로 나선 사람은 공무원이었다. 그는 내가 면장으로 있을 당시, 총무계장을 역임했었다. 추형오는 회계 담당자였다. 그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증인으로 나선 계장은 내 사건에 대해 가장 안타까워했었다. 추형오가 저지른 비리와 근무행태 증언을 위해 나선 경우였다.

"증인은 면사무소에서 추형오와 함께 근무하면서 평소 그의 근무 태도를 지켜봤을 텐데, 어땠나요?"
"평상시엔 괜찮았는데, 술을 마시면 민원인과 마찰이 많이 있었고, 이장들이나 직원들과 마찰, 갈등이 많이 있었습니다."
"근무시간에도 술을 마셨다는 말씀인가요?"
"예, 마신 적도 많았습니다."
"피고인이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6월 선거를 앞두고 공직 선거법 관련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나요?"
"면장님은 직원 조회 시 누누이 강조했죠. 선거 중립, 언행 조심, 선거 개입금지…. 이런 교육을 수시로, 군청회의 이후 전달 교육도 하셨습니다."


변호인은 추형오가 경찰에서 주장했던 '면장이 사무실에서도 군수 지지 발언을 했으나 직원들이 나서지 못하는 거다'란 진술에 관한 확인이 필요했다. 증인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면장과 방 이장 단둘이 흡연하는 것을 본 적 있나요? 피고인과 방 이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할 정도 관계인가요?"
"같이 담배 피우는 거 본 적도 없고, 이장회의 때마다 면장이 이장들에게 선거운동 하려면 이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변호인 마지막 질문은 뜻 밖이었다. "오일수를 아느냐?"란 질문에 이어 "혹시 2018년 12월 31일 저녁에 오일수가 증인에게 전화를 한 사실이 있나요?"란 질문에 그는 ""라고 했다.

좀 전, 증인신문에서 오일수는 '본인이 추형오 말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란 취지로 증언했었지만, 그는 2018년 12월 31일 추형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동창'과 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증인에게도 했다는 것이다. 오일수 말대로 자신의 추측이었다면 여러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변호인은 질문을 이었다.

"오일수가 증인에게 전화해서 어떠한 얘기를 하던가요?"
"추형오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했는데, '내가 면장을 위해 큰 건했다. 앞으로 잘될 것이다….' 이런 얘길 들었습니다."


이어진 검사 신문은 '증인으로 나선 경위', '증인으로 나오기 전 피고인과 만나거나 연락은 한 사실이 없는지', 등이었다. 말 그대로 사전에 어떤 모의가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듯했다.

그렇게 길고 긴 증인신문은 끝났다. 변호인도 나름 성과를 거뒀다는 표정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방청객들이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축하한다.', '고생했다.', '속이 시원하다.', '저놈들 이제 큰일 났다.', '아무리 선거(당선)도 좋지만, 그렇게 몹쓸 짓을….', '빌어먹을 놈들!'

나를 위로하려는 말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생각한 듯했다. 증인으로 나섰던 사람들은 조리 있게 증언하지 못했다. 추형오나 오일수, 방호석 이장은 드러내 놓고 위증을 하기도 했다. 방청객들은 마치 판사라도 된 양 '끝났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변호인도 '여러모로 고생 많으셨다'는 말로 기대감을 한껏 부추겼다.

읍내로 돌아와 10여 명의 지인과 어느 식당에 모였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가자 모두 판사가 됐다.

'아까 그 상황에서 판사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판사가 그렇게 질문했던 건 위증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발 쭉 펴고 저놈들 무고죄로 엮을 생각이나 해라' 등, 마치 무죄판결이라도 난 것처럼 한 마디씩 했다.

지금까지 증인들의 증언을 보태거나 빠짐없이 기록했다. 여기서 장래 변호사나 검사, 판사를 희망하는 로스쿨 학생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이 판사라면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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