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1 법정 진술의 신빙성 문제와 증거 수집 절차 적법성 논란 법정 진술의 신빙성 문제와 증거 수집 절차 적법성 논란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1] 변호인이 법정에 제출한 의견서에 모든 내용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을 한낱 내게 감정이 있었던 추형오와 방호석 이장이 '거짓으로 꾸민 음모'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수차례 이 사건은 정치적인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지만, 변호인은 '유리할 게 없다'는 이유만 내세웠다. 만일 처음부터 이 사건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한 지인으로부터 꽃 선물을 받았다. 화분 한가운데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말로 읽혔다. 지인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방 이장이 내게 갖고 있던 사적 감정..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9. 더보기 ›› 충과 효의 상징 영양 천씨(潁陽 千氏) 가문을 말하다 이번 포스팅은 한국의 명문가 중 하나인 영양 천씨(千氏) 가문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충과 효를 중시하며 나라와 가문을 위해 헌신해 온 영양 천씨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시조와 본관의 유래영양 천씨의 시조인 천암(千巖)은 중국 서촉 종북산(현재의 사천성 성도 남부) 아래 천고봉 만인암에서 태어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선조의 이름이 출생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인데, 천고봉의 '천(千)'을 성으로, 만인암의 '암(巖)'을 이름으로 하여 '천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본관인 영양(潁陽)은 중국 하남성 등봉현의 영양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곳은 고대 중국의 왕도였던 낙양과 정주 사이의 쑹산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곳으로, 가문의 역사적 정통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9. 더보기 ›› 나주 정씨 나주압해정씨족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완전한 족보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주 정씨(羅州丁氏)는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두각을 나타내며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오늘은 이 명문가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나주 정씨 시조와 본관의 역사나주 정씨의 시조는 고려 중기의 무신 정윤종(丁允宗) 검교대장군입니다.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며 송덕비를 세울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본래 이들의 본관이 압해(押海)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조 시대에 이르러 압해현이 폐현되면서 나주로 본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구역의 변화를 넘어, 가문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대동항렬표로 보는 가문의 체계나주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8. 더보기 ›› 대한민국의 명문가 의령 남씨(宜寧南氏)와 남이 장군 탐구 의령 남씨와 남이 장군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755년 일본으로 향하던 한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 경북 영덕 해안가에 정착했습니다. 당나라 여남 출신의 김충(金忠)은 그렇게 신라 땅을 밟게 되었고, 경덕왕은 그의 출신지를 따라 '남(南)'이라는 성을 하사했습니다. 이것이 의령 남씨의 시작입니다.가문의 형성과 발전삼형제와 세 개의 본관남씨 가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남진용의 세 아들 때였습니다. 세 형제는 각자 다른 지역에 정착하며 세 개의 본관을 이루게 됩니다. 장남 남홍보는 영양을, 차남 남군보는 의령을, 삼남 남광보는 고성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중 차남 남군보의 후손들이 바로 오늘날의 의령 南氏입니다.의령 남씨의 시대별 주요인물고려시대남민(南敏) : 원시조로, 당나라 출신으로 신라에 귀화..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7. 더보기 ›› 달성 배씨 그들이 걸어온 길과 유산 달성 배씨(裵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2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가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달성 배씨의 역사와 주요 종파, 이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업적과 문화유산을 탐구해 보겠습니다.달성 배씨 기원과 역사달성 배씨의 원류는 신라 6부촌장 중 한 사람인 지타공(祗陀公)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타공은 금산가리촌(현재의 경주)의 촌장으로서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왕으로 추대하는데 참여했습니다.시조인 배운룡(裵雲龍)은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의 6세손으로, 고려 중엽에 벼슬을 지내고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후손들이 달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시대별 주요 인물고려시대배정지(1259-1322) : 충렬왕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6. 더보기 ›› 천년의 역사 나주 주씨(羅州 朱氏)의 발자취 오늘은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한국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온 나주 주씨(羅州 朱氏) 가문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나주 주씨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명문 가문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시조와 가문의 연원나주 주씨의 시조는 고려 목종 2년(999년)에 활동한 주중소(朱仲紹)입니다. 그는 이부시랑(吏部侍郞)과 봉명(奉命)이라는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며 명성을 쌓았고, 이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고려 시대 초기부터 명문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 주덕명(朱德明)은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오르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까지 승진하여, 가문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나주..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5. 더보기 ›› 검사의견, 판사는 어떻게 판단할까! 검사의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네 번째 이야기] 1심 판결에 앞서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경찰과 다르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위법에 대해 합리화로 일관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비통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도서출판에 이어 블로그에 내용 전문을 게시하는 이유다. 검찰 의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판결일이 4월 26일로 결정됐다. 이때부터 검찰과 변호인(피고 측)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의견서나 증거자료 등을 공판일이 임박해 제출하는 이유다. 검찰에서 어떤 결정적 증거를 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먼저 패를 보일 리도 없다. 그럴 때 이쪽에서 대응에 나선다는 건 천치라도 안다. 상대방도 마찬..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4. 더보기 ›› 명문가 장수 황씨에 대한 탐구, 여성종친회에 주목 장수 황씨(黃氏)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문 성씨로, 전라북도 장수가 본관입니다. 9세손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장수 황씨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4대 임금을 섬기며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황희를 배출, 명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장수 황씨의 뿌리를 찾아서장수 황씨의 시조는 신라 말 경순왕의 부마이자 시중을 지낸 황경입니다. 9세손인 황공유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 벼슬을 지냈으나 무신의 난을 피해 장수로 돌아온 후 남원 광한루터에 정착했습니다.이후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18세손 황석부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습니다. 황석부의 증손인 황희는 조선 세종대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90년 생애 중 70여 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조선의..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4. 더보기 ›› 최후 변론서 작성, 징역 8월 구형 최후 변론서 작성 그리고 징역 8월 구형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서른세 번째 이야기] 최후 변론서를 가식으로 작성했다. '그래야 한다'는 변호인의 의견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D당 모략이다. 현 군수를 잡기 위해 나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 이장이나 추형오(가명)의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썼다가 변호인의 만류로 대폭 수정해야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검찰의 주장 2019년 3월 22일, 검찰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변호인이 주장했던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고 밴드에 접근'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의견보다 항변에 가까웠다."피고인은 이 사건 밴드 게시글에 대하여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되어 취득한 것이므로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연재) 2024. 10. 23. 더보기 ›› 여흥 민씨, 조선시대 왕비 배출의 명가 이야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가문은 여흥 민씨(驪興閔氏)입니다.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이 가문은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오늘은 이 대표적인 명문가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시조와 가문의 시작여흥 민씨의 시조는 민칭도(閔稱道)입니다. 고려시대 상의봉어라는 관직을 지낸 그는 가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본관인 여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과거에는 황려 민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는 지역의 역사적 변천과 함께한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고려시대의 발전초기 성장기민영모 : 고려 인종 시대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며 가문의 번영을 이끈 주역민식 : 1167년 과거 급제 후 .. 본관 성씨 이야기 2024. 10. 23. 더보기 ››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