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 노씨,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명문가문
교하 노씨(盧氏)는 당나라 한림학사 노수의 둘째 아들 노오가 877년 신라로 건너와 교하백에 봉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려 개국공신 노강필을 일세조로 하여 조선시대까지 문무양반의 명문가로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교하 노씨 기원과 특징
교하 노씨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동을 본관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씨로, 2015년 기준 61,747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조와 기원
교하 노씨의 시조는 노오(盧塢)입니다. 그는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의 둘째 아들로, 877년(신라 헌강왕 3년) 아버지와 함께 안록산의 난을 피해 신라로 건너왔으며, 교하백(交河伯)에 봉해졌습니다.
가문의 발전
노오의 후손인 노강필은 교하 노씨의 일세조로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이 되어 태자태사에 올랐고 선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주요 분파
교하 노씨는 노책의 네 아들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분파되었습니다. 아래에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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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군파 : 장남 노제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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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군파 : 차남 노진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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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군파 : 삼남 노은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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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군파 : 사남 노영의 후손
역사적 인물
가문의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지낸 노영순, 조선 초기의 명신 노사신 등이 있습니다. 특히 노사신은 『경국대전』의 시전 편찬, 『향약집성방』의 국역, 『여지승람』 편찬 등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대적 분포
교하 노씨는 파주 지역, 특히 교하읍 송촌리를 중심으로 세거해왔으며, 법조계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교하 盧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시대별로 교하 노씨의 주요 인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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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필 : 교하 노씨의 일세조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이 되어 태자태사에 올랐고 선성부원군에 봉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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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순 : 문하시중과 평장사를 지내며 『고려사』 열전에 등장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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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1427-1498) : 세종과 성종대의 명신으로 『경국대전』 시전 편찬, 『향약집성방』 국역, 『여지승람』 편찬 등 업적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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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한(1376-1443) : 우의정을 지냈으며, 태종의 국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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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문한 : 인조 때 능주목사 역임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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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 30여년간 일제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에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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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 제13대 대통령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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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환 : 국회부의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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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호 : 제1대 법원행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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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 제1대 주중국 대사
교하 盧氏 과거 급제자 현황
교하 盧氏는 조선시대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문과와 무과로 나누어 주요 급제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문과 급제자
교하 盧氏에서 배출한 문과 급제자는 총 12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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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盧思愼) : 1453년(단종 1년) 문과 병과 급제. 이후 1466년(세조 12년) 등준시 이등으로 재차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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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공필(盧公弼) : 1466년(세조 12년) 춘시 이등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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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盧稙) : 1569년(선조 2년) 알성시 갑과 장원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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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문한(盧文漢) : 1635년(인조 13년) 증광시 병과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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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중(盧允中) : 1766년(영조 42년) 정시 병과 급제
이 외에도 노경린, 노종, 노종원 등이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무과 급제자
교하 노씨의 무과 급제자는 정확한 수치에 차이가 있으나, 14명에서 36명 사이로 추정됩니다. 구
기타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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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시(司馬試) 급제자 : 46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인물
노대령(盧大齡)은 문과에 급제하여 원종공신에 오르고 통훈대부로 찰방과 함경도사를 역임하였습니다.
교하 노씨는 조선시대 동안 꾸준히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가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특히 문과를 통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이들은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교하 盧氏 주요 분파
주요 분파
교하 노씨는 노책의 네 아들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주요 분파가 형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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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군파(瑞原君派) : 장남 노제(盧濟)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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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군파(昌城君派) : 차남 노진(盧稹)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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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군파(慶原君派) : 삼남 노은(盧訔)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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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군파(新陽君派) : 사남 노영(盧渶)의 후손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분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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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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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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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일경파
분파의 특징
창성군파의 노진은 딸이 고려 공양왕의 왕비(순비)가 되어 국구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 노한은 태종대왕의 국구인 민제의 딸과 혼인하여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교하 盧氏 집성촌 및 족보관리 상황
주요 집성촌
파주 지역
- 교하읍 송촌리 새터골 : 과거 80여 호가 거주했으나 현재는 15호 정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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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리 약산굴 : 20여 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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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 :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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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현면 대동리 :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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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리 : 3호
창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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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동과 봉림동 : 여전히 집성촌 형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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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상남면 명곡리 일대에서 서곡, 지귀, 봉림 등으로 확산
서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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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면 : 약 210여 호가 거주하여 전체 인구의 90% 차지
족보 관리 현황
종중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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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노씨대종회가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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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군파, 창성군파, 경원군파, 신양군파 등 주요 분파별 종중 조직 운영
전자족보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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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노씨대종회에서 전자족보 DB 구축 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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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파별로 독자적인 족보 편찬 사업 추진
인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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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전국적으로 61,747명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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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에는 176가구 555명이 거주(2000년 기준)
교하 盧氏 문화재 및 유적지
교하 노씨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파주 백석리 묘역
노한과 노사신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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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파주읍 백석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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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한(1376-1443), 노사신(1427-1498), 노공필의 묘가 함께 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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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과 문인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노사신 신도비는 부마 임사홍이 작성
특징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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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 2단 석축으로 조성된 봉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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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까지 금표 기능을 했던 난간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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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교하노씨 묘역과 연천 홍길민묘에만 남아있는 희귀한 사례
원주 동하리 노회신 벽화묘
벽화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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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조선 초기 무덤으로 방형 봉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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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 내부에 사신도, 인물도, 성좌도 벽화가 양호하게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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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벽화묘 중 두 번째 발견 사례
청주 체화당사
건축 구조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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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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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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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노씨 4형제(노계원, 노준원, 노종원, 노일원)를 배향하는 사당
서울 효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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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한의 별서로 한강변 언덕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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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흑석동 한강변에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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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의 상징으로 유명하며,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 경관이 가장 뛰어남
당진 교하 盧氏 효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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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송악읍 가학리 쇠학골 입구 도로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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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
교하 盧氏 종친회 및 미래 지향적 활동
교하 노씨의 종친회 활동과 미래 지향적 활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종친회 조직 및 운영
대종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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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노씨대종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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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족보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여 종친 간의 유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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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팩스 등 현대적 소통 체계 구축 운영
세계화 활동
세계 盧氏 종친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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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8일 중국 장청현에서 세계노씨원류연구회 창립총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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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국 등 각국 대표를 임원으로 선출하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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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명예고문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추대
해외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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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 3,100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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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23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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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 1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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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 등에도 분포
문화교류 활동
한중 문화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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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문화센터 설립을 통한 양국 간 문화교류 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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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콘텐츠 전파 및 융합 문화상품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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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한 상호 이해 증진
현대적 성과
각계 인재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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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 노태우(전 대통령), 노승환(전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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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 노영하(프로바둑기사 9단), 노영심(작곡가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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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 노현희(탤런트)
교하 노씨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세계화와 문화교류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결론
교하 盧氏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인재를 배출하며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문과 12명, 무과 14~36명, 사마시 4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여 학문과 무예 모두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에는 전자족보 구축과 세계노씨종친회 활동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교하 노씨는 앞으로도 가문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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