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제목 안에 모든 것이 있다

경전 이야기 ·

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의 제4장을 전해 드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열 글자 제목을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 경 다섯 마디로 나누어 하나씩 풀어 보는 장입니다.

이 장의 경문

摩訶 般若 波羅蜜多 心 經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 경
크고 깊은 지혜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길, 그 알맹이를 꿰어 놓은 가르침

이름 하나에 담긴 바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이름을 짓느라 며칠을 고민합니다. 옥편을 뒤적이고, 어른께 여쭙고, 몇 번이고 소리 내어 불러 봅니다. 그렇게 지은 이름에는 부모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어질게 자라라, 밝게 살아라, 큰 사람이 되어라. 이름 두세 글자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향한 기도인 셈입니다.

경전의 제목도 그렇습니다. 옛 스님들은 경을 공부할 때 제목부터 오래 붙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목에 그 경이 말하려는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많은 주석서들이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제목 풀이에 적지 않은 지면을 들입니다.

우리나라 절에서 읽는 반야심경의 제목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모두 열 글자입니다. 이 장에서는 이 열 글자를 다섯 마디로 나누어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 경. 다 풀고 나면, 260자 본문을 읽기도 전에 이 경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벌써 절반은 알게 되실 것입니다.

크고 깊은 지혜 — 마하와 반야

먼저 ‘마하(摩訶)’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마하(mahā)’의 소리를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를 사람들이 ‘마하트마’, 곧 ‘위대한 영혼’이라 불렀던 것을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그 ‘마하’가 이 ‘마하’입니다. 예부터 불교에서는 이 말을 ‘크다, 많다, 뛰어나다’의 세 가지 뜻으로 풀어 왔습니다.

여기서 ‘크다’는 다른 것과 견주어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견줄 것이 없을 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큰 산은 작은 산보다 크지만, 하늘은 무엇과 견주어 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야의 지혜가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장 스님의 번역 원본 제목에는 ‘마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독송할 때 이 지혜의 크기를 기려 덧붙여 부르는 것입니다.

다음은 ‘반야(般若)’입니다. 1장에서 반야는 책에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밝은 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반야는 ‘보는 것’입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래도 끊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받아 든 사람은 그날로 담배를 끊기도 합니다. 머리로 알던 것을 비로소 온몸으로 ‘본’ 것입니다. 반야는 이렇게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틈을 메우는 지혜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지혜를 지닌 분들이 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사람을 보는 눈이 깊은 어른, 큰일 앞에서도 담담하게 ‘지나가리라’ 하시던 할머니 같은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가진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세월 속에서 얻은 ‘보는 눈’이었습니다. 반야는 학자나 스님만의 것이 아닙니다.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금씩 길러 갈 수 있는 눈입니다.

그런데 왜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고 ‘반야’라는 소리를 그대로 썼을까요? 현장 스님은 다섯 가지 경우에는 뜻으로 옮기지 않고 소리를 살린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반야는 그 가운데 하나로, 흔한 말인 ‘지혜’로 옮기면 그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어 원래 소리를 그대로 두어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냥 ‘여성 보호자’라고 부르면 뜻은 통해도 그 말에 담긴 마음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다 — 바라밀다

세 번째 마디는 ‘바라밀다(波羅蜜多)’입니다.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āramitā)’의 소리를 옮긴 말인데, 이 말을 풀이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 언덕에 이르렀다’는 풀이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풀이가 널리 받아들여져, 바라밀다를 한자로 ‘도피안(到彼岸)’이라고 옮기곤 했습니다. 괴로움과 번뇌가 출렁이는 이쪽 언덕을 차안(此岸), 괴로움이 사라진 평안의 저쪽 언덕을 피안(彼岸)이라 합니다. 그 사이에는 강이 흐릅니다. 바라밀다는 그 강을 건너가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다리가 없는 강마다 나루터가 있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편 언덕에 닿기까지 사람들은 출렁이는 물 위에서 잠시 마음을 졸였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와 비슷합니다. 걱정과 미움과 아쉬움이 물결처럼 출렁입니다. 바라밀다라는 말은, 그 물결 위에 떠 있는 우리에게 건너편 언덕이 분명히 있다고 일러 줍니다. 그리고 그곳에 닿는 배가 바로 지혜라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완성’, ‘가장 높은 경지’라는 풀이입니다. 말의 뿌리를 ‘가장 뛰어난’이라는 뜻의 말에서 찾는 견해로, 근래의 학자들 가운데 이렇게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책의 2장에서 ‘지혜의 완성’이라고 풀이한 것은 이 견해를 따른 것입니다.

두 풀이는 서로 다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지를 두 방향에서 본 것입니다. 강을 다 건넜다는 것은 곧 그 길을 완성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여섯 가지 길을 꼽습니다. 베풂, 바른 몸가짐, 참음, 꾸준한 노력, 고요한 집중, 그리고 지혜입니다. 이를 육바라밀이라 합니다. 그 가운데 지혜, 곧 반야바라밀은 나머지 다섯을 이끄는 눈으로 여겨집니다. 눈 없이 걷는 걸음은 아무리 부지런해도 엉뚱한 곳에 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맹이를 꿰어 놓은 가르침 — 심과 경

네 번째 마디는 ‘심(心)’입니다. 1장에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흐리다야’를 옮긴 것입니다. 본래 뜻은 ‘심장’이고, 여기서 ‘한가운데’, ‘핵심’이라는 뜻이 나왔습니다. 몸에서 심장이 멎으면 생명이 끝나듯, 반야의 가르침에서 이 경이 빠지면 숨이 끊어진다는 정도의 무게가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한자 ‘심’은 우리에게 ‘마음’으로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이 경을 ‘마음에 관한 경’으로 읽는 전통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 뜻은 ‘핵심’이지만, 마음공부의 길에서 이 경을 ‘마음을 비추는 경’으로 새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부제를 ‘반야심경으로 내 마음 들여다보기’라고 붙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핵심이라는 뜻과 마음이라는 뜻이 여기서 만납니다. 가장 깊은 핵심은 결국 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마디는 ‘경(經)’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수트라(sūtra)’라고 하는데, 본래 ‘실’, ‘끈’이라는 뜻입니다. 흩어진 꽃을 실로 꿰어 꽃목걸이를 만들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흩어지지 않게 꿰어 놓은 것이 경이라는 것입니다. 한자 ‘경(經)’도 본래 베틀의 날실을 가리킵니다. 날실은 옷감을 짤 때 세로로 팽팽하게 걸어 두는 실로, 이것이 흔들리지 않아야 씨실이 오가며 천이 짜입니다. 경전이란 시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날실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옛 주석가들은 여기에 또 하나의 뜻을 보태어 ‘경은 늘 그러한 것’이라고 풀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이치를 담았다는 뜻입니다. 천 년 전의 사람도, 오늘의 우리도 똑같이 늙음을 두려워하고 이별을 슬퍼합니다. 그 늘 그러한 괴로움에 늘 그러한 답을 주기에 경은 오래 읽힙니다.

이제 다섯 마디를 이어 붙여 보겠습니다. 마하, 크고. 반야, 깊은 지혜로. 바라밀다, 저 언덕에 건너가는. 심, 그 핵심을. 경, 꿰어 놓은 가르침. 이 장의 첫머리에 실은 풀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260자 본문은 결국 이 열 글자 제목을 풀어 놓은 이야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 삶의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제목을 풀고 나니 한 가지 물음이 떠오릅니다. 내 삶에 제목을 붙인다면 무엇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요?

돌아보면 우리는 저마다 어떤 제목을 달고 살아왔습니다. ‘성실한 가장’, ‘희생한 어머니’, ‘누구네 집 맏이’, ‘어느 직장의 무슨 과장’ 같은 제목들입니다. 그 제목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떠나고, 직장에서 물러나고,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되면 그 제목들이 하나둘 빛을 잃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허전함을 느낍니다. 제목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명함 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색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려는데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나를 대신해 주던 이름표가 떨어지고 나서야, 그 이름표 아래의 ‘나’를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반야심경의 제목은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제목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로 붙는 제목이 아니라, 어디를 향해 건너가고 있는지로 붙는 제목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 크고 깊은 지혜로 저 언덕을 향해 가는 삶. 이런 제목은 나이가 든다고 빛이 바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깊어질수록 더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옛 제목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제목들도 소중한 내 삶의 한 장이었습니다. 다만 그 위에 새 제목 하나를 더 얹어 보자는 것입니다. 남은 날들을 무엇을 향해 건너갈 것인지, 그 방향을 담은 제목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어떤 제목으로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새 제목을 짓는 일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제보다 한 뼘이라도 더 건너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연습을 흔히 ‘마음공부’라고 부릅니다. 마음공부란 무엇이고 반야심경을 어떤 자세로 읽으면 좋은지는 다음 장에서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1부의 마지막 장이자,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마음공부

1. 제목 열 글자 천천히 부르기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 경’을 한 마디씩 끊어 부르면서, 마디마다 이 장에서 읽은 뜻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2. 지금까지의 내 삶의 제목 적기

지금까지 나를 설명해 온 제목 세 가지를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각 제목 옆에 ‘고마웠다’라고 한 줄 덧붙여 봅니다.

3. 앞으로의 제목 하나 짓기

남은 날들을 향한 새 제목을 한 줄로 지어 보십시오. ‘조금 덜 걱정하며 건너가는 삶’처럼 소박해도 좋습니다.

한 줄 새김

열 글자 제목 하나에 건너가야 할 삶의 방향이 다 들어 있습니다.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4장입니다. 책에서는 이어서 5장에서 마음공부란 무엇이고 반야심경을 어떤 자세로 읽으면 좋은지 이야기하며 제1부를 마무리한 뒤,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어 나갑니다. 화, 걱정, 이별, 늙음, 죽음처럼 저마다 앞에 놓인 삶의 강을 건너는 지혜를 장마다 ‘오늘의 마음공부’와 ‘한 줄 새김’으로 함께 담았습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앞 장인 반야심경은 어떻게 우리에게 왔나, 인도에서 한국까지와 반야심경 전문 읽기, 왜 지금 반야심경인가도 함께 읽어 보세요. 반야심경을 읽거나 사경하며 느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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