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반야심경인가, 260자에 담긴 지혜

경전 이야기 ·

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의 제1장을 운세쉼터 독자 여러분께 전해 드립니다. 반야심경을 처음 만나는 분도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도록, 이 경이 어떤 경전이고 왜 지금 읽으면 좋은지를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이 장의 경문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으니, 참되어 헛되지 않습니다.

귀에 익었지만 뜻은 몰랐던 소리

문상을 가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빈소 한쪽에서 스님이나 신도들이 목탁에 맞추어 경을 읽습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하고 시작하는 바로 그 소리입니다. 절에 다니지 않는 분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산사에 들렀다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혹은 집안 어른의 사십구재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의 뜻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절에 다닌 분들 가운데에도 외우기는 다 외우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소리는 귀에 익었는데 뜻은 낯선 것입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골목인데,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 번도 끝까지 걸어 보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이 책은 그 골목을 끝까지 걸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평생 귀로만 들어 온 경전을 이제는 마음으로 읽어 보자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가. 앞으로 남은 날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놀랍게도 반야심경은 그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아주 짧은 글 안에 담고 있습니다.

260자, 원고지 한 장 반에 담긴 경전

반야심경의 정식 이름은 『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우리나라 절에서 주로 읽는 것은 당나라의 현장(玄奘) 스님이 한문으로 옮긴 판본입니다. 본문을 한 글자씩 세어 보면 260자가 됩니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한 장 반이 채 되지 않는 분량입니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도 몇 분이면 끝납니다.

경전이라고 하면 흔히 두꺼운 책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반야 계통의 경전 가운데에는 엄청난 분량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같은 현장 스님이 옮긴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무려 600권에 이릅니다. 예부터 불교에서는 반야심경을 이 방대한 반야 경전들의 알맹이만 추려 담은 경전으로 여겨 왔습니다. 600권의 바다를 260자의 물방울 하나에 담은 셈입니다.

짧다고 해서 얕은 것은 아닙니다. 시조 한 수가 긴 소설보다 오래 가슴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무심코 하신 한마디가 평생을 붙들어 주기도 합니다. 말은 줄일수록 단단해집니다. 반야심경의 260자도 그렇습니다. 한 글자도 허투루 놓이지 않았기에, 한 구절을 붙들고 며칠을 곱씹어도 새로운 뜻이 우러나옵니다.

이 경이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지는 3장에서, 제목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은 4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반야심경은 가장 짧은 경전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아침저녁 예불과 법회, 재(齋)를 지낼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이 경을 읽습니다. 짧기에 오히려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모든 괴로움을 없앤다는 약속

이 장의 첫머리에 놓은 구절은 반야심경의 끝 무렵에 나옵니다.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한 자씩 풀어 보겠습니다. ‘능(能)’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除)’는 ‘덜어 내다, 없애다’입니다. ‘일체고(一切苦)’는 ‘모든 괴로움’입니다. ‘진실(眞實)’은 참되다는 것이고, ‘불허(不虛)’는 헛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어 붙이면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으니, 참되어 헛되지 않다”가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괴로움’은 몸이 아픈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인생의 기본 괴로움으로 봅니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미운 사람과 마주쳐야 하는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을 더합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겪어 온 마음고생 가운데 이 목록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괴로움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기는지는 9장에서 다시 깊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참 대담한 말입니다. 몇 가지 괴로움이 아니라 ‘모든’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참되어 헛되지 않다’고 다짐까지 해 둡니다. 260자의 경전이 스스로 내건 약속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어떻게 지켜질까요? 반야심경은 신비한 힘으로 괴로움을 걷어 가 주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괴로움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그 눈이 바로 ‘반야’, 곧 지혜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냐(prajñā)’라고 합니다. 반야는 책을 많이 읽어서 생기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밝은 눈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이 그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을 한 글자로 줄이면 ‘공(空)’입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홀로 생겨나지 않고 서로 기대어 생겨나며, 그래서 늘 변한다는 뜻입니다. 이 한 글자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쓰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만 정리해 두겠습니다. 괴로움은 대개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붙잡으려 할 때 생깁니다. 반야심경은 꽉 쥔 그 손을 펴는 법을 일러 주는 경전입니다.

책상 위의 차 한 잔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안에는 찻잎을 키운 햇볕과 비, 찻잎을 딴 사람의 손길, 물을 끓인 불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이 한 잔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차는 금세 식고, 마시면 사라집니다. 차 한 잔이 ‘따로 떨어진 실체’가 아니라 여러 인연이 잠시 모인 모습이라는 것, 이것이 공을 바라보는 첫걸음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놓지 못하는 지위, 재산, 젊음,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 반야심경일까요? 세 가지 까닭을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이 가졌지만 마음은 더 분주합니다. 살림은 예전보다 넉넉해졌고, 손안의 전화기로 세상 소식을 다 봅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뭅니다. 남과 견주는 일은 더 쉬워졌고, 걱정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화면을 타고 들어옵니다. 바깥을 채우는 방법은 넘쳐 나는데 안을 비우는 방법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반야심경은 바로 그 ‘비우는 법’을 다룹니다.

둘째, 나이가 들면 잃는 것이 늘어납니다. 일터에서 물러나고,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하나둘 떠나보냅니다. 젊은 날이 얻는 법을 배우는 시기였다면, 인생의 후반은 잃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반야심경에는 ‘늙고 죽음도 없다’, ‘얻을 것도 없다’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처음 들으면 엉뚱한 말 같지만, 찬찬히 따라가 보면 잃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자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셋째, 짧기 때문입니다. 두꺼운 책은 큰마음을 먹어야 펼칩니다. 그러나 260자는 아침에 차 한 잔 마시는 동안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외워 두면 산책길에도, 잠 못 드는 밤에도 되뇔 수 있습니다. 지혜가 아무리 깊어도 곁에 두지 못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반야심경은 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지혜입니다.

그래서인지 반야심경은 절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붓글씨를 쓰는 분들은 사경의 글감으로 이 경을 즐겨 고릅니다. 260자를 한 장에 정성껏 옮겨 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진다고들 합니다. 읽고, 외우고, 쓰는 일이 모두 한자리에서 가능한 경전은 흔하지 않습니다.

260자 안에 한평생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을 ‘260자에 담긴 인생’이라고 지은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반야심경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 안에 우리 삶의 굽이굽이가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경은 한 수행자가 자기 몸과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한 번쯤 멈춰 서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됩니다. 이어서 경은 눈과 귀 같은 감각, 늙음과 죽음, 괴로움과 그 사라짐을 차례로 짚어 나갑니다. 태어나 보고 듣고, 무언가를 원하고, 잃고, 늙고, 마침내 죽음을 생각하는 우리 인생의 길과 닮았습니다. 그리고 경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함께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는 외침으로 끝을 맺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건너가자는 말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경전을 삶에 비추어 읽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경의 순서를 꼭 인생의 순서로 짜 맞추어 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읽으면 낯선 한자들이 한결 가깝게 느껴집니다. 경전 속의 ‘색(色)’과 ‘공(空)’이 오늘 아침 내가 느낀 서운함, 어젯밤 잠을 설치게 한 걱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일 수도 있고, 자식 걱정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이거나, 이름 붙이기 어려운 허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짐을 마음 한쪽에 올려 둔 채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짐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을 넘길 때마다 그 짐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짐의 무게는 그대로여도, 짐을 든 손의 힘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 걸음으로 그 길을 안내합니다. 제1부에서는 반야심경의 전문과 내력, 제목의 뜻을 살피며 경과 처음 인사를 나눕니다. 제2부에서는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구절씩 천천히 읽어 나갑니다. 제3부에서는 화, 걱정, 상처, 이별, 늙음, 죽음, 욕심처럼 우리가 날마다 부딪히는 문제에 반야심경을 비추어 봅니다. 각 장의 끝에는 바로 해 볼 수 있는 작은 마음공부와, 하루 동안 품고 지낼 한 줄을 실어 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셔도 좋고, 지금 마음이 가장 쓰이는 장을 먼저 펼치셔도 좋습니다.

반야심경은 무엇을 믿으라고 다그치는 경전이 아닙니다. 스스로 ‘비추어 보라’고 권하는 경전입니다. 그러니 불자가 아니어도 괜찮고, 불교를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려는 작은 용기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용기를 품고 이제 260자의 길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의 마음공부

1. 소리 내어 한 번 읽기

2장에 실린 반야심경 전문을 뜻을 몰라도 좋으니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읽는 데 몇 분이 걸리는지 재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260자가 얼마나 짧은지 몸으로 느껴 보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2. 마음의 짐 한 줄 적기

종이 한 장에 지금 나를 가장 무겁게 하는 일을 한 줄로 적어 접어 두십시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다시 꺼내 보겠습니다.

3. 한 구절 품고 지내기

“능제일체고 진실불허”를 오늘 하루 마음속으로 세 번 되뇌어 보십시오. 뜻을 다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한 줄 새김

짧은 260자, 그 안에 한평생을 건너갈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첫 장입니다. 책에서는 이어서 반야심경 전문과 그 내력(2·3장), 제목 한 글자 한 글자의 뜻(4장)을 살핀 뒤,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어 나갑니다. 화, 걱정, 이별, 늙음, 죽음 앞에서 260자를 어떻게 꺼내 쓸 수 있는지도 장마다 ‘오늘의 마음공부’와 ‘한 줄 새김’으로 함께 담았습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쓰게 된 인연은 260자에 담긴 인생, 반야심경과 한 스님과의 오랜 인연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을 읽거나 사경하며 느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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