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의 제2장을 전해 드립니다. 반야심경 260자 전체를 한문 원문, 우리말 독음, 쉬운 풀이로 나란히 실어, 처음 읽는 분도 경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장입니다.
이 장의 경문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크고 깊은 지혜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그 핵심을 담은 경
길을 떠나기 전에 지도를 펼치듯
낯선 산에 오를 때 우리는 먼저 등산 안내도 앞에 섭니다. 어디서 출발해 어느 고개를 넘고, 정상은 어디쯤인지 한번 훑어봅니다. 길을 다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 모양을 알고 걸으면 중간에 길을 잃어도 크게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 장은 반야심경이라는 산의 안내도입니다. 다음 장부터는 경을 한 구절씩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그 전에 260자 전체를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려 합니다.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뜻을 다 붙잡으려 애쓰지 마시고, 경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가는지만 느껴 보시면 됩니다.
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맨 위에 한문 원문을, 그 아래에 우리말 소리인 독음을, 맨 아래에 쉬운 우리말 풀이를 실었습니다. 독음은 우리나라 절에서 실제로 소리 내어 읽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풀이는 이 책을 위해 최대한 쉬운 말로 새로 옮긴 것입니다. 원문은 당나라 현장(玄奘) 스님의 한역본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독송할 때 흔히 붙이는 대로 ‘마하’를 넣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 적었습니다. 제목의 뜻은 4장에서 따로 풀어 보겠습니다.
일곱 마디로 나누어 읽는 260자
원래 경전에는 단락 구분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읽기 편하도록 내용의 흐름에 따라 일곱 마디로 나누었습니다. 마디마다 짧은 길잡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첫째 마디 — 깊이 보고, 괴로움을 건너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지혜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 몸과 마음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무더기가 모두 공함을 환히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셨습니다.
경은 결론부터 말하며 시작합니다. 한 보살이 깊이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괴로움을 건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230여 자는 사실 이 첫 문장을 풀어 주는 이야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둘째 마디 — 물질과 공은 둘이 아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입니다.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앎도 또한 그러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사리자’가 불립니다. 사리자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지혜가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어진 분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바로 이 마디에 있습니다.
셋째 마디 — 여섯 가지 ‘아니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것의 공한 모습은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생겨남과 사라짐, 더러움과 깨끗함, 늘어남과 줄어듦. 우리는 평생 이 세 쌍의 잣대로 세상을 재며 살아갑니다. 경은 그 잣대를 하나씩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짧은 열두 글자가 우리의 오랜 습관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셈입니다.
넷째 마디 — 공 가운데는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앎도 없습니다. 눈·귀·코·혀·몸·뜻도 없고, 빛깔·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도 없습니다. 눈으로 보는 세계도 없고, 마음으로 아는 세계까지도 없습니다.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다하는 것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하는 것까지도 없습니다.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의 사라짐과 그 길도 없습니다.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습니다.
이 마디는 ‘없을 무(無)’ 자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그것마저 ‘없다’고 말합니다. 처음 읽는 분들이 가장 어리둥절해하는 대목입니다. 이 ‘없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13장부터 15장까지에서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다섯째 마디 —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얻을 것이 없으므로, 보살은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습니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꿈 같은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완전한 평안에 이릅니다.
맨 앞의 ‘이무소득고(얻을 것이 없으므로)’는 앞 문장 끝에 붙여 읽기도 하고, 이 책처럼 뒤 문장의 첫머리로 읽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큰 뜻은 같습니다. 경의 분위기가 이 마디에서 확 바뀝니다. ‘없다’가 이어지던 차가운 흐름이 ‘두려움이 없다’는 따뜻한 위로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섯째 마디 — 부처님들도 이 길로 깨달았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합니다. 지혜의 완성은 크게 신령한 주문이요, 크게 밝은 주문이요, 더 위가 없는 주문이요, 견줄 것이 없는 주문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으니, 참되어 헛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없다’를 그토록 되풀이하던 경이, 이 마디에서는 거꾸로 힘주어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완성이 견줄 것 없는 주문이라고, 그 힘은 참되어 헛되지 않다고 거듭 다짐합니다. 붙잡을 것은 없지만 의지할 길은 분명히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마디 — 주문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그러므로 지혜의 완성의 주문을 일러 줍니다. 주문은 이러합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마지막 주문은 예부터 뜻으로 옮기지 않고 소리 그대로 읽어 왔습니다. 대강의 뜻을 새기면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모두 함께 저 언덕으로 가자,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이다’ 정도가 됩니다. 이 주문에 담긴 뜻은 21장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한 편의 이야기로 보는 경의 흐름
일곱 마디를 다 읽으셨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아마 머릿속이 조금 어지러우실 겁니다. 그럴 때는 경을 한 편의 짧은 이야기로 다시 떠올려 보시면 좋습니다.
등장인물은 둘입니다. 깊은 지혜를 지닌 관자재보살과, 그 지혜를 배우려는 사리자입니다. 이야기는 관자재보살이 괴로움을 건넜다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비결을 사리자에게 들려줍니다. 비결의 핵심은 ‘공’입니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믿는 몸도, 마음도, 심지어 거룩한 가르침까지도 붙잡을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붙잡을 것이 없음을 알면 마음에 걸림이 사라지고, 걸림이 사라지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도 모두 이 길로 깨달았다고 경은 보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가르침을 한 줄의 주문에 담아 건네줍니다.
이렇게 보면 반야심경은 ‘괴로움을 건넌 사람이, 건너는 법을 일러 주는 이야기’입니다. 출발은 괴로움이고, 도착은 두려움 없는 마음입니다.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지혜, 곧 반야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괴로움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남은 날만큼은 조금 덜 두려워하며 살고 싶어 합니다. 260자의 짧은 이야기가 그 먼 길의 처음과 끝을 이미 다 그려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로, 뜻으로, 삶으로 읽기
경전을 읽는 데에는 세 겹의 읽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소리로 읽는 것입니다. 뜻을 몰라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오랫동안 절에서 이 경을 외워 온 분들이 하는 읽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리로 읽기를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닙니다.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동안 흩어졌던 생각이 한곳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뜻으로 읽는 것입니다. 한 글자, 한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 가는 읽기입니다. 이 책의 제2부가 주로 이 일을 합니다. 뜻을 알고 나면 같은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불생불멸’이라는 네 글자가 그저 소리가 아니라, 내 삶을 향한 말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삶으로 읽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 걱정에 잠 못 들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이 경의 한 구절을 꺼내어 내 마음에 비추어 보는 읽기입니다. 이 책의 제3부가 이 읽기를 함께 연습합니다. 260자에 인생이 담겨 있다는 말은, 결국 이 세 번째 읽기에서 비로소 참말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읽기에 서 계십니까? 소리만 익숙한 분도 있고, 뜻을 조금 아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 서 있든 괜찮습니다. 세 겹의 읽기는 순서대로 가야 하는 계단이 아닙니다. 소리로 읽다가 문득 뜻이 들어오고, 뜻을 알게 된 구절이 어느 날 삶의 한 장면과 겹쳐집니다. 오늘 처음 펼친 이 전문이, 몇 달 뒤에는 전혀 다른 글처럼 읽히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마음공부
1. 전문을 소리 내어 세 번 읽기
이 장의 독음을 보며 천천히 세 번 읽어 보십시오. 첫 번째는 소리에, 두 번째는 우리말 풀이에, 세 번째는 마음에 걸리는 낱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2. 마음에 남는 한 구절 고르기
일곱 마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 하나에 연필로 표시해 두십시오. 왜 그 구절이 남았는지 한 줄로 적어 두면 더 좋습니다.
3. 가장 낯선 구절 고르기
반대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구절에도 표시해 두십시오. 책을 읽어 가며 그 구절이 언제 풀리는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공부입니다.
한 줄 새김
먼저 소리로 만나고, 뜻으로 알고, 삶으로 읽을 때 260자는 내 이야기가 됩니다.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2장입니다. 오늘 읽은 일곱 마디를 책에서는 한 구절씩 천천히 풀어 갑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슨 뜻인지, ‘없을 무(無)’가 이어지는 대목이 무엇을 말하는지(13~15장), 마지막 주문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21장)를 우리 삶에 비추어 쉽게 이야기합니다. 제3부에서는 화, 걱정, 이별, 늙음, 죽음 앞에서 260자를 어떻게 꺼내 쓸 수 있는지 함께 연습합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앞 장인 왜 지금 반야심경인가와 책을 쓰게 된 인연을 담은 260자에 담긴 인생, 반야심경과 한 스님과의 오랜 인연도 함께 읽어 보세요. 반야심경을 읽거나 사경하며 느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