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의 제3장을 전해 드립니다. 반야심경이 인도에서 생겨나 사막을 건너 중국에 닿고, 다시 이 땅에 이르러 오늘 우리 절에서 읽히기까지 걸어온 먼 길을 따라가는 장입니다.
이 장의 경문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고춧가루 한 숟가락의 먼 여행
김치를 담글 때 빠지지 않는 고춧가루를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 밥상에서 이보다 더 ‘우리 것’ 같은 재료도 드뭅니다. 그런데 고추의 고향은 본래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바다를 건너고 여러 나라를 거쳐 우리 땅에 들어왔고, 수백 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우리 음식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반야심경도 그렇습니다.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이제 우리 귀에 너무도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 경 역시 아주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인도에서 생겨난 가르침이 사막과 산맥을 넘어 중국에 닿았고, 거기서 한문 옷을 입은 뒤 바다와 강을 건너 이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 길은 천 년이 훨씬 넘게 걸렸습니다.
이 장에서는 260자가 걸어온 그 길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역사 이야기라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고 나면, 오늘 우리가 읽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새삼 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인도에서 피어난 ‘반야’의 가르침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수백 년이 흐르면서, 인도 불교 안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났습니다. 나 혼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그치지 말고, 모든 이와 함께 건너가자는 흐름입니다. 이를 ‘큰 수레’라는 뜻에서 대승(大乘)불교라고 부릅니다. 이 대승불교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꽃핀 가르침이 바로 ‘반야’, 곧 지혜에 관한 경전들입니다.
반야 경전들은 대략 기원 전후 무렵부터 인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짧은 경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내용이 덧붙어 점점 방대해졌습니다. 1장에서 말씀드린 600권의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바로 이렇게 불어난 반야 경전들을 한데 모은 것입니다.
왜 하필 ‘지혜’였을까요? 대승의 수행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계율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내가 했다’, ‘나는 이만큼 얻었다’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그것이 또 다른 집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수행의 바탕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야 경전들이 ‘모든 수행을 이끄는 눈’이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이 큰 숲에서 가장 작은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제목은 ‘프라즈냐파라미타 흐리다야(Prajñāpāramitā-hṛdaya)’로, ‘지혜의 완성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는 짧은 것과 긴 것, 두 가지 모양이 전합니다. 우리가 읽는 짧은 경은 곧바로 “관자재보살…“로 시작합니다. 긴 경에는 그 앞뒤로 부처님이 어느 산에서 삼매에 드셨고, 사리자가 무엇을 여쭈었는지 같은 이야기의 틀이 붙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 사본으로는 일본 호류지(法隆寺)에 전해 온 야자잎 사본이 남아 있는 것들 가운데 오래된 것으로 손꼽힙니다.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야심경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지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전통적으로는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먼저 만들어진 뒤 한문으로 옮겨졌다고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미국의 불교학자 잔 나티에(Jan Nattier)는 반야심경이 중국에서 먼저 한문으로 엮였고, 그것이 다시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졌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큰 반야경의 한 대목을 간추리고 앞뒤에 주문 등을 붙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지금도 연구와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반야심경이 인도에서 꽃핀 반야의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막을 건넌 스님, 현장
반야 경전들은 일찍부터 중국으로 건너가 한문으로 옮겨졌습니다. 반야심경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한역본이 전합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것이 당나라 현장(玄奘) 스님의 번역입니다.
현장 스님보다 앞서 이름난 번역가로는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이 있습니다. 서역 쿠차 출신인 그는 5세기 초 장안에서 수많은 경전을 아름다운 한문으로 옮겼습니다. 『금강경』과 『법화경』을 우리가 지금도 그의 번역으로 읽을 정도입니다. 반야심경에도 구마라집 스님의 이름이 붙은 한역본이 전하는데, 정말 그가 옮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현장 스님 뒤로도 여러 스님이 반야심경을 거듭 번역했습니다. 그만큼 이 짧은 경을 바르게 전하려는 노력이 시대마다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현장 스님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젊은 시절 경전의 뜻을 놓고 여러 스승의 해석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원전을 직접 구해 보겠다며 인도로 길을 떠났습니다. 629년 무렵 길을 나서 645년에 장안으로 돌아왔으니, 열여섯 해 남짓의 여정이었습니다. 돌아올 때 그는 수백 부의 경전을 가지고 왔고, 남은 생을 번역에 바쳤습니다.
현장 스님의 전기에는 그가 끝없는 사막을 건너던 대목이 나옵니다. 물을 잃고 길을 헤매며 두려움이 밀려올 때,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반야심경을 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길을 떠나기 전 병든 이를 돌보아 주었더니, 그가 고마움의 표시로 이 경을 일러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대로 역사라기보다 전설에 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이 예부터 두려움 앞에서 마음을 붙잡아 주는 경전으로 여겨졌다는 것만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현장 스님이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옮긴 것은 649년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번역은 정확하면서도 간결해서,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서 표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가 2장에서 함께 읽은 260자가 바로 이 번역입니다.
신라에서 오늘의 우리 절까지
현장 스님의 번역은 오래지 않아 한반도에도 전해졌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분이 신라의 원측(圓測) 스님입니다. 원측 스님은 젊어서 당나라로 건너가 그곳에서 평생 학문과 수행에 힘썼고, 현장 스님이 번역을 이끌던 무렵 장안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그는 반야심경에 대한 주석서인 『반야바라밀다심경찬』을 남겼습니다. 신라 스님이 쓴 이 해설서는 지금까지 전해지며, 반야심경을 마음의 작용을 깊이 살피는 유식(唯識)의 관점에서 풀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책으로 평가됩니다.
고려 시대에 새긴 팔만대장경에도 반야심경이 들어 있습니다. 나라의 큰 어려움 앞에서 온 백성의 마음을 모아 새긴 경판 속에, 이 짧은 경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반야심경이 우리말 옷을 입게 됩니다. 세조 10년인 1464년, 경전을 번역하고 펴내던 관청인 간경도감에서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를 간행했습니다. ‘언해’란 한문을 우리 글로 풀었다는 뜻입니다.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한계희 등이 번역을 맡았다고 전합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스무 해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새로 만든 우리 글로 이 경을 풀어 백성에게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반야심경은 우리나라 절의 예불과 법회, 재를 지낼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읽히는 경전이 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한문 경과 함께 쉬운 우리말로 옮긴 한글 반야심경도 마련해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가르침이 중국에서 한문이 되고, 다시 우리말이 되어 오늘 우리 입에서 소리 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여러 번역이 나왔는데도, 우리나라 절에서는 여전히 현장 스님의 한문 경을 소리 그대로 읽는 전통이 굳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뜻을 알기 쉬운 우리말 경과,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한문 경이 나란히 함께 살아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이 한문 원문과 독음, 우리말 풀이를 모두 싣는 것도 그 두 전통을 함께 아끼고 싶어서입니다.
260자가 건너온 길, 내 마음이 건너갈 길
이 긴 여행을 돌아보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반야심경은 한 번도 혼자 걸어온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을 처음 엮은 이름 모를 수행자들이 있었고, 목숨을 걸고 사막을 건넌 스님이 있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평생 그 뜻을 풀어 쓴 신라 스님이 있었고, 경판 한 장 한 장에 칼을 댄 고려의 장인들이 있었습니다. 새 글자로 경을 옮긴 조선의 학자들이 있었고, 오늘도 새벽 예불에서 이 경을 읽는 스님과 불자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손을 거쳐 260자는 지금 여러분 앞에 와 있습니다.
이 장의 첫머리에 실은 구절을 다시 보십시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 지혜에 의지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구절의 깊은 뜻은 19장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이 장의 이야기와 겹쳐 읽으면 또 다른 울림이 있습니다. 지혜는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어짐의 끝자락에 지금의 내가 서 있습니다.
경전이 먼 길을 건너왔듯이, 우리 마음도 건너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그 건너감을 ‘저 언덕으로 간다’고 표현합니다. 괴로움이 있는 이쪽 언덕에서 평안이 있는 저쪽 언덕으로 가는 것입니다. 1,300년도 더 전에 사막 한가운데서 이 경을 외우던 한 스님의 두려움과, 오늘 밤 잠 못 이루는 우리의 걱정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스님이 이 경에 기대어 사막을 건넜다면, 우리도 이 경에 기대어 오늘의 사막을 건너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는 지금 어떤 사막이 놓여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막을 건너는 동안 마음속으로 되뇔 한마디가 있으십니까? 이 책을 다 읽을 무렵에는 그 한마디가 반야심경 어느 구절 속에서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마음공부
1. 경이 걸어온 길 떠올리며 읽기
반야심경을 한 번 읽되, 인도와 사막, 장안과 신라, 팔만대장경과 오늘의 절을 차례로 떠올려 보십시오. 같은 260자가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2. 나에게 경을 전해 준 사람 생각하기
내가 처음 반야심경을 들은 때와 곳, 그 소리를 들려준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께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해 봅니다.
3. 나의 사막에 이름 붙이기
지금 내 앞에 놓인 어려움을 ‘나의 사막’이라 이름 붙이고 한 줄로 적어 두십시오. 앞으로의 장에서 그 사막을 건널 지혜를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한 줄 새김
천 년을 건너온 260자, 이제 내 마음을 건너게 할 차례입니다.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3장입니다. 천 년을 건너온 260자를 책에서는 이어서 제목 한 글자 한 글자의 뜻(4장)부터 살핀 뒤,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어 나갑니다. 이 장의 경문인 ‘삼세제불’의 깊은 뜻도 19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화, 걱정, 이별, 늙음, 죽음처럼 저마다 앞에 놓인 ‘나의 사막’을 건너는 지혜를 장마다 ‘오늘의 마음공부’와 ‘한 줄 새김’으로 함께 담았습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앞 장인 반야심경 전문 읽기와 왜 지금 반야심경인가, 책을 쓰게 된 인연을 담은 260자에 담긴 인생, 반야심경과 한 스님과의 오랜 인연도 함께 읽어 보세요. 반야심경을 읽거나 사경하며 느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