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의 제5장을 전해 드립니다. 텃밭의 잡초 이야기로 마음공부가 무엇인지 풀어 보고, 반야심경을 읽을 때 마음에 새겨 두면 좋을 네 가지 자세를 함께 살피는 장입니다. 제1부를 마무리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이 장의 경문
照見五蘊皆空
조견오온개공
몸과 마음을 이루는 다섯 가지가 모두 공함을 환히 비추어 봅니다.
텃밭에서 배우는 마음공부
텃밭을 가꾸어 본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봄에 고추와 상추 모종을 심고 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잡초가 고개를 내밉니다. 뽑고 돌아서면 또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잡초가 밉습니다. 내가 심지도 않은 것이 왜 자꾸 자라나 싶어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몇 해 밭을 일구다 보면 마음이 조금 달라집니다. 잡초는 미워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신 자주 밭에 나가 들여다보는 사람의 밭이 깨끗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디에 무엇이 올라오는지 일찍 알아차리면, 뿌리가 깊어지기 전에 손쉽게 뽑을 수 있습니다. 밭을 지키는 힘은 호미보다 눈에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밭의 주인은 잡초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잡초가 아무리 무성해도 밭은 여전히 밭입니다. 잡초를 뽑고 나면 그 자리는 다시 깨끗한 흙으로 돌아옵니다. 잡초가 밭을 영영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라났다가 사라지는 손님일 뿐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운함, 짜증, 걱정, 부러움 같은 마음의 잡초가 올라옵니다. 미워하고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주 들여다보고 일찍 알아차릴 때 마음의 밭이 가지런해집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음공부’의 출발점입니다.
마음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보는 일
‘마음공부’라고 하면 무언가 거창한 수행을 떠올리는 분이 많습니다. 산속 절에서 오래 앉아 있어야 할 것 같고, 화를 내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고 물러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공부의 첫걸음은 마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화를 참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걱정이 밀려올 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이 또 이렇게 찾아왔구나’ 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작은 알아차림 하나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듭니다. 화에 휩쓸려 있던 내가, 화를 바라보는 자리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랜만에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바쁘다며 금세 끊어 버렸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확 올라옵니다. 그대로 두면 이 서운함은 금세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요즘 나를 귀찮아하는구나’, ‘키워 놓았더니 다 소용없구나.’ 한두 시간 뒤에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처음 서운함이 올라온 그 순간 ‘아, 지금 서운하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서운함은 서운함으로 머물 뿐, 더 큰 이야기로 번지지 않습니다. 잡초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알아본 것입니다.
이 장의 첫머리에 실은 구절이 바로 이 ‘보는 일’을 말합니다. ‘조견(照見)’은 ‘비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등불을 들어 어두운 방을 비추듯, 지혜의 빛으로 내 몸과 마음을 환히 비추어 본다는 것입니다. 관자재보살이 괴로움을 건넌 것도 무엇을 붙잡거나 고쳐서가 아니라, 먼저 깊이 비추어 보았기 때문이라고 경은 말합니다. ‘다섯 가지가 모두 공하다’는 말의 뜻은 8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비추어 본다’는 두 글자만 마음에 담아 두시면 충분합니다.
비추어 보는 일에는 판단이 끼어들지 않습니다. 등불은 방 안의 먼지를 보고 화내지 않습니다. 그냥 비출 뿐입니다. 우리도 내 마음을 들여다볼 때 ‘이런 마음을 먹다니 나는 못난 사람이야’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이런 마음이 있구나’ 하고 비추면 됩니다. 신기하게도 환히 비추어진 마음은 그것만으로 힘이 조금 빠집니다. 어둠 속에서는 커 보이던 그림자가, 불을 켜면 작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듣고, 생각하고, 몸에 익히다
불교에서는 지혜가 자라는 과정을 흔히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듣고 배워서 얻는 지혜,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서 얻는 지혜, 그리고 몸과 마음으로 닦아서 얻는 지혜입니다. 한자로는 문(聞)·사(思)·수(修), 이 세 가지 지혜를 묶어 ‘삼혜(三慧)’라고 부릅니다.
자전거 타기를 떠올려 보시면 쉽습니다. 먼저 누군가에게 페달을 밟고 손잡이를 잡는 법을 듣습니다. 그다음 왜 넘어지는지,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머릿속으로 궁리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것은 직접 올라타 여러 번 넘어진 뒤입니다. 한번 몸에 익으면 몇 년을 안 타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반야심경 공부도 이 세 단계를 거칩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듣는’ 단계입니다. 읽은 구절을 내 삶에 비추어 곱씹어 보는 것은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순간, 걱정에 잠 못 드는 밤에 그 구절을 실제로 꺼내 쓰는 것이 ‘닦는’ 단계입니다. 앞의 두 단계도 소중하지만, 마음공부가 비로소 열매를 맺는 것은 세 번째 단계에서입니다. 이 책의 매 장 끝에 ‘오늘의 마음공부’를 둔 것도 그래서입니다.
세 단계는 한 번 지나가고 끝나는 계단이 아니라 돌고 도는 바퀴와 같습니다. 직접 닦아 보면 다시 듣고 싶은 것이 생기고, 새로 들은 것은 또 새로운 생각을 낳습니다. 그렇게 바퀴가 몇 번 구르는 사이에 지혜는 조금씩 깊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따지기보다, 바퀴를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반야심경을 읽는 네 가지 자세
이제 제2부에서 경문을 한 구절씩 읽어 나가기 전에, 함께 마음에 새겨 두면 좋을 네 가지 자세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 ‘와서 보라’는 자세입니다. 초기 경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고 ‘와서 보라’고 권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 일컫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와서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맞겠지’ 하고 넘어가기보다, 정말 그런지 내 마음에 비추어 하나하나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이 맛있다고 한 음식도 내가 먹어 보아야 그 맛을 압니다. 경전의 말씀도 내 마음으로 맛보아야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둘째, 서두르지 않는 자세입니다. 260자는 짧지만 빨리 읽을 글이 아닙니다. 한 구절을 며칠씩 붙들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래야 합니다. 오래 우려야 맛이 나는 차처럼, 경전의 말씀도 천천히 곱씹을 때 깊은 맛이 납니다.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앞의 구절이 저절로 풀리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빨리빨리 사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경전 앞에서만큼은 그 습관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겠습니다.
셋째, 물음을 품는 자세입니다. 반야심경에는 처음 들으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말이 많습니다. 눈도 귀도 없다니, 늙고 죽음도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그 물음을 억지로 지우지 마십시오. 물음은 공부의 적이 아니라 길잡이입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물음을 품고 읽는 사람이 결국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선(禪)의 전통에서도 큰 물음을 품는 것을 깨달음으로 가는 중요한 힘으로 여겨 왔습니다.
넷째, 내 이야기로 읽는 자세입니다. 반야심경은 먼 옛날 인도의 어느 보살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 며느리의 말 한마디에 서운했던 나, 병원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한 나의 이야기입니다. 구절마다 ‘이것이 내 삶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럴 때 260자는 비로소 경전 속의 글자가 아니라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됩니다. 남의 이야기로 읽으면 지식이 되고, 내 이야기로 읽으면 지혜가 됩니다.
오늘, 여기, 이 마음에서
마음공부를 이야기하면 ‘시간이 나면 해야지’, ‘좀 더 나이 들어 한가해지면 해야지’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는 따로 시간을 내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 길을 걸을 때, 누군가와 말다툼을 할 때, 그 모든 순간이 마음공부의 자리입니다. 텃밭에 나가는 데 특별한 날이 필요 없듯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도 특별한 때가 필요 없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운 분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공부는 다리를 틀고 앉는 자세보다 마음을 바라보는 눈이 먼저입니다. 누워서도, 걸으면서도,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숨 한 번 쉬는 동안 내 마음을 한 번 비추어 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시작입니다.
또 하나, 마음공부에는 늦은 때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후반이 마음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때일 수 있습니다. 젊어서는 바깥일에 쫓겨 마음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느려진 걸음 덕분에 비로소 내 안을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경험도 큰 밑천입니다.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젊은이에게는 어려운 이론으로 들려도, 오래 산 분들에게는 ‘아, 그 말이 그 뜻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화가 없어지고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잡초는 내일도 올라올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마음공부란 잡초 하나 없는 밭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잡초가 올라와도 밭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1부는 여기까지입니다. 반야심경을 처음 만나 전문을 읽고, 경이 걸어온 길과 제목의 뜻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마음공부의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이제 신발 끈을 고쳐 맸으니, 다음 장부터는 경문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첫걸음은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나서고 계십니까?
오늘의 마음공부
1. 하루 세 번 마음 비추어 보기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잠시 멈추어 ‘지금 내 마음은 어떤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답을 고치려 하지 말고 ‘서운하구나’, ‘편안하구나’ 하고 이름만 붙여 봅니다.
2. 마음의 잡초 한 포기 알아차리기
오늘 하루 가장 자주 올라온 마음 하나를 저녁에 적어 보십시오. 그 마음을 탓하지 말고 ‘오늘은 이것이 자주 올라왔구나’ 하고 바라보기만 합니다.
3. 물음 하나 품기
반야심경 전문에서 ‘정말 그럴까?’ 싶은 구절 하나를 골라 마음에 품어 두십시오. 제2부를 읽으며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갑니다.
한 줄 새김
마음공부는 마음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환히 비추어 보는 일입니다.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5장으로, 제1부의 마지막 장입니다. 책에서는 이어서 제2부에서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해 경문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며,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어 나갑니다. 이 장의 경문인 ‘조견오온개공’의 깊은 뜻도 8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화, 걱정, 이별, 늙음, 죽음처럼 저마다 앞에 놓인 삶의 강을 건너는 지혜를 장마다 ‘오늘의 마음공부’와 ‘한 줄 새김’으로 함께 담았습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앞 장인 ‘반야심경’ 제목 안에 모든 것이 있다와 반야심경은 어떻게 우리에게 왔나, 인도에서 한국까지, 반야심경 전문 읽기도 함께 읽어 보세요. 반야심경을 읽거나 사경하며 느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