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스님과 함께 쓴 책 『260자에 담긴 인생』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반야심경 260자를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은 책입니다. 오늘은 이 책을 펴내며 쓴 머리말을 운세쉼터 독자 여러분께 먼저 전해 드립니다.
귀에는 익었지만 마음에는 닿지 않던 경전
어릴 적부터 반야심경은 늘 귀에 익은 소리였습니다. 산사에 들렀을 때도, 집안 어른의 재(齋)를 모실 때도, 문상을 갔을 때도 목탁 소리에 실려 오는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저에게 반야심경은 뜻을 모르는 채 따라 읽는 소리에 가까웠습니다. 귀에는 익었지만 마음에는 아직 닿지 않은 경전이었습니다.
그 260자가 제 마음에 조금씩 닿기 시작한 것은 한 스님과의 인연 덕분입니다. 경기도 포천 대현암의 주지이신 대현스님입니다. 스님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스님은 제게 법을 일러 주시는 스승이었고, 삶이 흔들릴 때마다 돌아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삶의 굽이마다 스님의 말씀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어머님을 업고 걷던 스님
대현스님은 1959년에 태어나, 서른둘이 되던 1990년에 출가하셨습니다. 출가한 뒤에는 작은 암자 대현암을 꾸려 가시며 어머님을 곁에서 모셨습니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십 년 동안, 스님은 어머님이 바깥나들이를 하실 때마다 등에 업고 다니셨습니다. 날마다 어머님을 목욕시켜 드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출가는 흔히 세속의 인연을 떠나는 일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스님의 삶은 출가가 가장 깊은 인연을 가장 정성껏 보살피는 길일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섯 달 동안 올린 백만 배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스님은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빌며 여섯 달 동안 백만 배의 절을 올리셨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많은 이들 사이에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스님은 지금도 대현암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어머님의 천도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위로를 위한 기도를 이어 가고 계십니다.
효의 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괴로움에 빠진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미루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의 천도를 비는 보살로 깊이 모셔 왔습니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지장보살이 전생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구하려고 온 정성을 다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예부터 효(孝)의 보살로도 여겨져 왔습니다.
말씀보다 먼저 삶으로 다가온 가르침
그래서인지 저에게 스님의 가르침은 말씀보다 먼저 삶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님을 업고 걷던 그 등, 백만 번을 엎드렸다 일어서던 그 몸짓은 어떤 경전의 구절보다 반야의 길을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붙잡을 것 없음을 알면서도 사랑을 다하는 것, 떠나보내면서도 그 인연을 끝까지 정성으로 잇는 것.
책의 25장에서 잃음과 이별을, 27장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들은 스님의 그 삶에 비추어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스님 곁에서 배우며, 저는 반야심경이 먼 옛날 인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자의 눈과 생활인의 눈이 만난 책
이 책은 그렇게 쌓인 인연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현스님께서 오랜 수행으로 길어 올리신 반야의 가르침과,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온 제가 삶의 굽이마다 그 가르침을 비추어 본 경험을 한데 엮은 것입니다. 경전의 뜻과 교리의 바탕은 스님께서 바로잡아 주셨고, 그것을 오늘의 우리 삶에 잇는 이야기는 제가 글로 옮겼습니다. 수행자의 눈과 생활인의 눈이 한 책 안에서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스님과 저의 공저입니다.
왜 ‘260자에 담긴 인생’인가
책의 제목을 ‘260자에 담긴 인생’이라 지었습니다. 반야심경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 짧은 글 안에 우리 삶의 굽이굽이가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데서 시작해, 그것을 내려놓고 두려움 없는 마음에 이르고, 마침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고 노래하는 길. 그 길은 경전의 길이면서, 우리 모두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후반을 걷는 분들께
이 책은 특히 인생의 후반을 걷고 계신 분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일터에서 물러나고,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가까운 이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며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가’를 묻게 되는 때입니다. 그 물음 앞에서 반야심경은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불교를 잘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절에 다니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책은 이렇게 짜여 있습니다
- 제1부: 반야심경 전문과 그 내력, 제목의 뜻을 살피며 경과 처음 인사를 나눕니다.
- 제2부: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구절씩 읽으며 그 뜻을 우리 삶에 비추어 봅니다.
- 제3부: 화, 걱정, 상처, 이별, 늙음, 죽음, 욕심처럼 우리가 날마다 부딪히는 문제 앞에서 260자를 어떻게 꺼내 쓸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각 장의 끝에는 바로 해 볼 수 있는 ‘오늘의 마음공부’와, 하루 동안 품고 지낼 ‘한 줄 새김’을 실어 두었습니다.
천천히 우려 읽는 260자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셔도 좋고, 지금 마음이 가장 쓰이는 장을 먼저 펼치셔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한 장을 읽으면 하루쯤 그 장의 한 줄을 품고 지내 보시기 바랍니다. 260자는 짧지만 빨리 읽을 글이 아닙니다. 오래 우릴수록 깊은 맛이 나는 차처럼, 천천히 곱씹을 때 비로소 제 맛을 드러냅니다.
고마운 분들께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저를 이끌어 주시고, 이 책에 귀한 가르침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대현스님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 책은 시작될 수 없었습니다. 늘 곁에서 힘이 되어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 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이 260자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기쁩니다.
짧은 260자 안에 한평생을 건너갈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그 길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자, 가자, 모두 함께 저 언덕으로.
2026년 가을
대현스님과 함께, 신광태 합장
『260자에 담긴 인생』 만나 보기
반야심경 260자를 한 구절씩 우리 삶에 비추어 읽고, 장마다 ‘오늘의 마음공부’와 ‘한 줄 새김’을 함께 담았습니다. 불교를 잘 모르셔도, 절에 다니지 않으셔도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곁에 두고 하루 한 장씩 천천히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구절이나 반야심경을 외우며 겪은 이야기는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염불의 뜻과 방법은 염불이란 무엇일까요?에서,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