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의 제3장을 전해 드립니다. 의상대사가 걸었던 낙산 바닷가 길을 원효대사도 걸었습니다. 길 위에서 관세음보살을 마주치고도 알아보지 못한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삼국유사』를 따라 읽어 봅니다.
같은 바닷가, 다른 결말
앞 장에서 우리는 의상대사가 낙산 바닷가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은 그 이야기 바로 뒤에 또 한 분의 이야기를 이어 놓았습니다. 원효대사(元曉大師)입니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 뒤에 원효법사가 뒤따라 와서 관세음보살을 뵙고 예배하려 했다고요. 의상대사가 갔던 그 길을 원효대사도 걸었습니다. 같은 바닷가, 같은 굴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전혀 달랐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만났습니다. 원효대사는 길 위에서 관세음보살을 마주치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 길을 원효대사와 함께 천천히 걸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오늘 우리가 걷는 길과 얼마나 닮았는지 함께 돌아보겠습니다.
원효대사는 어떤 분이었나
먼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원효대사는 결코 모자란 분이 아니었습니다.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이고,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사상가입니다. 평생 수많은 책을 지어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을 정리했습니다.
원효대사는 글방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저잣거리로 나가 노래하고 춤추며 글 모르는 백성들에게 부처님 이름을 알렸습니다. 높은 자리의 스님이 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 가난한 사람들도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의 깨달음에 얽힌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공부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비바람을 피해 하룻밤 머문 곳이 날이 밝고 보니 무덤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 엮은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원효대사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치를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뒷날 더 널리 알려진 모습으로 바뀌어 전해졌습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이야기지요. 어젯밤에는 달았던 물이 아침에는 구역질이 났습니다. 물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물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리지 않는 이치를 깨달은 분, 그분이 원효대사였습니다.
이 대목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낙산 가는 길에서 원효대사에게 일어난 일을 읽으면, 이 깨달음이 묘하게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들판에서 벼를 베는 여인
원효대사가 낙산 남쪽 들녘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논에서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습니다. 『삼국유사』는 원효대사가 장난 삼아 그 벼를 달라고 청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인도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올해는 벼가 여물지 않았다고요.
그 장면을 그려 봅니다. 가을 들판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허리를 굽혀 낫질을 하던 여인이 고개를 듭니다. 땀에 젖은 이마, 흙 묻은 흰옷 차림입니다. 지나가던 스님이 농을 건네고, 여인도 웃으며 농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집니다.
흰옷을 입었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립니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낙산은 흰옷 입은 큰 보살, 곧 백의대사(白衣大士)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의 눈에 그 여인은 들일하는 시골 아낙일 뿐이었습니다.
다리 밑에서 빨래하는 여인
원효대사는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다리 아래에 이르니 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삼국유사』는 그 여인이 월경 때 쓴 천을 빨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목이 말랐던 원효대사는 마실 물을 청했습니다.
여인은 빨래하던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습니다. 원효대사는 그 물을 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냇물을 다시 떠서 마셨습니다.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해골 물을 마시고 깨끗함과 더러움이 마음에 달려 있음을 깨달은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이번에는 더러운 물을 쏟아 버렸습니다. 깨달음을 머리로 아는 것과 그 깨달음대로 사는 것 사이에는 이렇게 먼 거리가 있는 모양입니다. 원효대사 같은 큰스님에게도 말입니다.
소나무 위의 파랑새, 그리고 신 한 짝
그때 들판 가운데 서 있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소리쳤습니다. “휴제호화상(休醍醐和尙)!” 그러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 소나무 아래에는 벗어 놓은 신 한 짝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호(醍醐)는 우유를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얻는 가장 좋은 맛을 가리킵니다. 불교에서는 가장 높은 가르침을 제호에 빗대곤 하지요. 새가 외친 말은 여러 가지로 풀이하는데, 흔히 ‘제호를 마다한 스님아’ 하는 뜻으로 읽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내밀었는데 그것을 쏟아 버린 스님을 일깨우는 소리였던 셈입니다.
원효대사는 그 뜻을 다 알지 못한 채 낙산의 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상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이 앉은 자리 아래에 신 한 짝이 놓여 있었습니다. 소나무 아래에서 본 바로 그 신의 나머지 한 짝이었습니다.
그제야 원효대사는 깨달았습니다. 길에서 만난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참모습이었다는 것을요. 『삼국유사』는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굴 앞에서 일어난 풍랑
원효대사는 성스러운 굴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의 참모습을 다시 뵙고자 했습니다. 의상대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굴 앞에 이르자 바람이 거세게 일고 물결이 높이 솟았습니다. 원효대사는 끝내 굴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삼국유사』는 여기서 원효대사 이야기를 맺습니다.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의상대사의 이야기 바로 뒤에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았을 뿐입니다. 무엇이 달랐는지는 읽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듯합니다.
관세음보살은 굴 안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굴로 가는 길 위에서 먼저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원효대사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관세음보살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원전이 말해 주지 않으니, 우리 자신을 비추어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관세음보살을 만날 곳을 미리 정해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원효대사의 마음속 관세음보살은 바닷가 성스러운 굴 안에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논두렁과 빨래터에서 만난 여인을 눈여겨볼 까닭이 없었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곳에 관세음보살이 늘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미리 정해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거룩하고 빛나는 모습을 떠올렸다면, 흙 묻은 옷을 입고 낫을 든 여인은 그 모습과 너무 달랐을 것입니다. 1장에서 보았듯이 관세음보살은 서른세 가지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 가운데 많은 수가 평범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셋째,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가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관세음보살이 내민 것은 더러운 빨래물이었습니다. 원효대사는 그것을 쏟아 버렸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귀한 가르침은 종종 불쾌한 모습으로 옵니다. 거친 말 한마디, 무례한 행동 하나에 담겨 오기도 합니다.
넷째,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의상대사는 이레씩 두 번 재계하며 기다렸습니다. 원전에는 원효대사가 재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원효대사가 길에서 건넨 첫마디는 장난이었습니다. 가볍게 오가는 말 속에서는 상대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원효대사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원효대사를 탓하려고 꺼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원효대사 같은 큰스님도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돌이켜 보면 우리도 날마다 원효대사처럼 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반말을 하는 상인에게 얼굴을 찌푸리고 돌아섭니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흘겨봅니다. 잔소리하는 식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립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보여 주러 왔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희망도 있습니다. 원효대사는 끝내 알아차렸습니다. 늦었지만, 관세음보살상 아래 놓인 신 한 짝을 보고 길에서 만난 여인이 누구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하루를 돌아보다가, 낮에 나를 언짢게 한 그 사람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늦게라도 알아차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원효대사가 걸었던 길을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길 위로 나섭니다
이제 이 책은 제1부를 마치고 일상의 길 위로 나섭니다. 4장부터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얼굴들을 하나씩 들여다볼 것입니다. 반말을 하는 사람, 핀잔을 주는 사람, 새치기하는 사람, 서운한 말을 하는 식구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두 스님을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간절히 찾아가 마침내 만난 의상대사,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고도 지나친 원효대사입니다. 오늘 내가 만난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어느 쪽이었는지 가만히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 물음이 바로 관세음보살을 알아보는 눈을 뜨는 첫걸음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내가 정해 둔 곳이 아니라,
내가 무심히 지나치는 그 자리에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3장으로, 제1부의 마지막 장입니다. 책에서는 4장부터 일상의 길 위로 나서, 반말을 하는 사람, 핀잔을 주는 사람, 새치기하는 사람, 서운한 말을 하는 식구처럼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얼굴들을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장마다 내일 해 볼 작은 실천 하나와 마음에 새길 한 줄이 있어, 하루 한 장씩 곁에 두고 읽기 좋습니다.
앞 장인 의상대사, 낙산 바닷가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다와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일까, 부처이면서 보살로 남은 분, 책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 오늘 나에게 거친 말을 한 그 사람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도 함께 읽어 보세요. 오늘 만난 얼굴 가운데 관세음보살이라 여겨지는 분이 있었다면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