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의 제5장을 전해 드립니다. 새 휴대전화로 손주 사진을 보내는 법을 묻다가 “그것도 몰라요?”라는 핀잔을 들은 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둔하다고 내쳐진 제자에게 부처님이 흰 천 한 장을 건네신 이야기도 함께 읽어 봅니다.
그날의 장면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예순일곱 살 된 여자분이었습니다. 몇 달 전 자식들이 생일 선물이라며 새 휴대전화를 사 주었습니다. 화면도 크고 사진도 잘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쓰던 전화와 생김새가 달라서 아직도 손에 익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멀리 사는 딸이 손주 사진을 여러 장 보내온 날이었습니다. 돌을 막 지난 손주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뗀 사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사진을 남편 전화로도 보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것저것 눌러 보아도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도 몰라” 하며 고개를 저었지요.
점심을 먹고 그분은 동네 휴대전화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초겨울 바람이 제법 매서운 날이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가게 안에는 젊은 손님 두엇이 새 전화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계산대 뒤에는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젊은 직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내밀었습니다. “저기, 미안한데요. 이 사진을 우리 영감 전화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요?”
직원은 전화기를 받아 들더니 화면을 몇 번 톡톡 눌렀습니다. 그리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것도 몰라요? 요즘은 초등학생도 다 하는 건데.”
직원에게는 별 뜻 없는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이 가게 안에 또렷하게 울렸습니다. 전화기를 구경하던 젊은 손님 하나가 힐끗 돌아보았습니다. 그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직원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사진을 보내 주었습니다. “됐어요. 여기 누르고, 이거 누르고, 이거 누르면 돼요.” 설명은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어떻게 눌렀는지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마워요”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왔습니다.
내 마음에 일어난 것
가게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다 큰 어른이 초등학생도 하는 일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것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였습니다.
부끄러움 뒤로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평생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자식 셋을 키워 냈습니다. 시장에서 콩나물값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고, 이웃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어디 가서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손바닥만 한 전화기 앞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나도 세상에서 밀려나는구나.’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모르는 것이 생기면 어디 가서 물어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아니, 다시는 묻고 싶지 않았습니다. 묻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습니다.
그날 저녁, 그분은 손주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손주의 얼굴을 보며 겨우 마음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는 또 한숨이 나왔습니다.
관세음보살로 다시 보기
며칠 뒤, 그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날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젊은 직원은 나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그 직원은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평생 쌓아 온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모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모른다고 핀잔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핀잔은 다시 묻고 싶은 마음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핀잔을 듣고 마음이 상했다면, 그 상한 마음이 바로 가르침입니다. “너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지 마라.” 그것이 그날 관세음보살이 일러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 장에서 꼭 함께 새기고 싶은 대목입니다. “그것도 몰라요?” 한마디에 내 마음이 언짢았다면, 그 언짢음은 그냥 지나가는 기분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핀잔을 주면 그 사람도 이만큼 움츠러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부끄럽고 서러웠던 만큼,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젊은 직원은 그 가르침을 일러 주러 온 반면교사의 관세음보살이었던 셈입니다.
그러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녁마다 밥상을 펴 놓고 구구단을 외우게 했지요. 아이는 칠단에서 자꾸 막혔습니다. 그분은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몰라? 어제 다 외웠잖아!” 아이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이불 속에서 훌쩍였습니다.
며느리가 처음 집에 와서 김장을 거들던 날도 떠올랐습니다. 며느리가 배춧속을 어떻게 넣는지 몰라 머뭇거리자 그분은 혀를 찼습니다. “아니, 그것도 모르니?” 며느리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며느리는 부엌에서 무엇을 묻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얼마나 아픈지 몰랐습니다. 나는 다 아는 것이었으니까요. 휴대전화 가게의 젊은 직원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 직원에게 사진 보내기는 숨 쉬듯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직원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이도 처지도 다르지만, 그 직원과 나는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날은 내가 듣는 쪽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 듣는 쪽에 서 보고서야 비로소 그 말의 무게를 알았습니다.
3장의 원효대사도 떠오릅니다. 원효대사는 들판의 아낙과 빨래하는 여인을 그저 평범한 시골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그 안에 계신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했지요. 우리도 모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합니다. 전화기 하나 다룰 줄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은 아닌데 말입니다.
내가 들어서 부끄러웠던 핀잔은, 내가 했을 때도 누군가를 부끄럽게 했던 핀잔입니다.
경전 한 자락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남방 불교의 『법구경(法句經)』 주석서에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머리가 둔하기로 이름났습니다. 시 한 구절을 넉 달 동안 외우려 했지만 끝내 외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앞 구절을 외우면 뒤 구절을 잊고, 뒤 구절을 외우면 앞 구절을 잊었습니다.
먼저 출가한 형은 그런 동생을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형은 동생에게 수행할 그릇이 못 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주리반특가는 절 문 앞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그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못 외우느냐” 하지 않으셨지요. 대신 깨끗한 흰 천 한 장을 건네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을 손으로 문지르며 ‘때를 없앤다, 때를 없앤다’ 하고 되뇌어 보라고요.
주리반특가는 그대로 했습니다. 천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자 깨끗하던 천이 손때로 점점 더러워졌습니다. 그것을 보며 그는 깨달았습니다. 깨끗하던 것도 이렇게 변하는구나. 내 마음에도 이렇게 때가 앉는구나. 그 깨달음 끝에 그는 마침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합니다.
부처님은 모르는 제자에게 핀잔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문 밖으로 내쳐진 제자를 다시 안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실천
내일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물어 오면, 그것이 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그것도 몰라?”라는 말은 삼켜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 이렇게 말해 보는 것입니다. “처음엔 다 그래요. 천천히 다시 해 볼까요?”
반대로 내가 핀잔을 듣게 되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 순간 속으로 한 번 불러 보십시오. “관세음보살. 오늘 또 하나 배웁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을 억지로 감추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르침으로 바꾸어 받는 것입니다. 그 짧은 다짐 하나로 서러움은 배움이 됩니다.
특히 식구들에게 한 번 더 마음을 써 보십시오. 김치 담그는 법을 묻는 며느리나 사위, 숙제를 들고 온 손주, 농사일을 처음 거드는 자식에게 말입니다. 내가 수십 년 해 온 일이 그들에게는 처음인 일입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천천히 보여 주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어보십시오. “제가 이건 처음이라서요. 한 번만 천천히 알려 주시겠어요?” 이렇게 먼저 말하면 상대도 저절로 속도를 늦춥니다. 묻는 것은 모자람이 아니라 배우려는 용기입니다.
작은 수첩을 하나 마련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 배운 것을 큰 글씨로 차례대로 적어 두는 것이지요. ‘사진 보내기: 1. 사진을 누른다. 2. 아래쪽 공유 그림을 누른다…’ 이렇게 적어 두면 다음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주리반특가가 흰 천을 문지르며 한 구절을 되뇌었듯이, 천천히 되풀이하면 누구나 익힐 수 있습니다.
핀잔을 들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내 입에서 나간 말도 돌아보십시오. 누군가를 움츠러들게 한 말이 있었다면,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한 번 더 다정하게 설명해 주면 됩니다.
“그것도 몰라요?”에 마음이 상했다면,
그 상한 마음이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입니다.
“너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5장입니다. 책에서는 이어서 새치기하는 사람, 약속을 어기는 사람, 서운한 말을 하는 식구처럼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얼굴들을 한 장씩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알아보는 법을 함께 익혀 갑니다. 장마다 내일 해 볼 작은 실천 하나와 마음에 새길 한 줄이 있어, 하루 한 장씩 곁에 두고 읽기 좋습니다.
앞 장인 시장에서 들은 반말 한마디, 그 상인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와 원효대사,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하다, 책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 오늘 나에게 거친 말을 한 그 사람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도 함께 읽어 보세요. 오늘 만난 얼굴 가운데 반면교사의 관세음보살이라 여겨지는 분이 있었다면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