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들은 반말 한마디, 그 상인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염불·기도 ·

책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의 제4장을 전해 드립니다. 제2부의 첫 장으로, 이제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낙산 바닷가를 떠나 우리가 날마다 걷는 길 위로 나섭니다. 첫 이야기는 읍내 장날, 배추 좌판 앞에서 들은 반말 한마디입니다.

그날의 장면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남자분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물러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요즘은 아내 대신 장을 보러 다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날은 닷새마다 서는 읍내 장날이었습니다.

늦가을 아침이었습니다. 밤새 내린 서리가 아직 녹지 않아 장터 바닥이 축축했습니다. 천막마다 김이 피어올랐고, 국밥집 가마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물전 앞에서는 상인이 “싱싱한 고등어 있어요!” 하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사람들은 털모자를 눌러쓰고 손을 비비며 좌판 사이를 오갔습니다.

그분은 채소 좌판 앞에 멈춰 섰습니다. 김장철이라 배추와 무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적어 준 쪽지에는 ‘배추 세 포기, 쪽파 한 단’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분은 배추 한 포기를 들어 겉잎을 살짝 젖혀 보았습니다. 속이 잘 찼는지 보려는 것이었지요.

그때 좌판 뒤에서 마흔 줄쯤 되어 보이는 상인이 말했습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무를 정리하던 참이었습니다.

“아저씨, 그거 자꾸 벗기지 마. 살 거야, 말 거야?”

그분은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상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다른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아니, 속이 찼나 보려고…” 하고 말을 꺼내자 상인이 다시 말을 잘랐습니다. “다 꽉 찼어. 세 포기 만오천 원. 사려면 사고.”

그분은 배추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뒤에서 상인이 “에이, 안 살 거면서”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그분은 장터 끝 다른 좌판에서 배추를 샀습니다. 값은 조금 더 비쌌습니다.

내 마음에 일어난 것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반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살 거야, 말 거야?’ 그 한마디가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이 지나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에, 그것도 한참 어린 사람이 반말을 했다는 것이 괘씸했습니다. 평생 남에게 함부로 말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에 있을 때는 ‘과장님’ 소리를 들었고, 동네에서도 점잖은 어른으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런데 장터 한복판에서 손님 대접은커녕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서운함도 밀려왔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세상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늙은이라고 얕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분은 아내에게 장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말하다 보니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습니다. 아내가 “그래서 배추는 어디서 샀어요?” 하고 물었을 때에야 겨우 웃음이 났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분은 그 상인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받아쳤어야 할 말을 혼자 이리저리 지어 보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마음은 자꾸 장터로 돌아갔습니다.

관세음보살로 다시 보기

며칠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은 뒤, 그분은 그날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물음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상인은 나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그 상인은 반말이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아픈지를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짧은 반말 한마디가 하루를 흔들고 밤잠까지 설치게 했습니다. 말 한마디의 무게를 그날만큼 또렷하게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반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다면, 그 언짢음이 바로 가르침입니다. “너는 남에게 이렇게 말하지 마라.” 그것이 그날 장터에서 관세음보살이 일러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 장에서 꼭 함께 새기고 싶은 대목입니다. 반말을 들은 내 마음이 언짢았다면, 그 언짢음은 그냥 지나가는 기분이 아닙니다. 내가 남에게 반말을 하면 그 사람도 이만큼 언짢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언짢았던 만큼,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말을 한 그 상인은 그 가르침을 일러 주러 온 반면교사의 관세음보살이었던 셈입니다.

그러자 다음 물음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언제 그렇게 말했던가. 처음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식당에서 젊은 직원에게 “여기 물 좀 줘” 하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집 앞에 짐을 내려놓는 택배 기사에게 “거기 놓고 가” 하고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 젊은 직원들에게 했던 말들도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반말인 줄도 몰랐습니다. 나이가 많고 자리가 높으니 당연하다고 여겼지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그날의 나처럼 속이 상했을지 모릅니다.

그 상인의 처지도 조금 헤아려 보게 되었습니다. 장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트럭에 배추를 싣고 왔을 것입니다. 찬 바닥에서 몇 시간째 서서 수많은 손님을 맞았을 것입니다. 배추 겉잎을 벗겨 보고 그냥 가는 손님도 하루에 여럿이었겠지요. 그렇다고 반말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반말 뒤에 고단함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시골 장터에서 흔히 오가는 말투였을 수도 있습니다. 상인에게는 허물없는 말이었는데, 듣는 쪽에서 무례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요. 같은 말도 듣는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그것을 깨닫자 그분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3장에서 본 원효대사가 떠오릅니다. 다리 밑의 여인이 내민 것은 빨래하던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원효대사는 그 물을 쏟아 버리고 지나갔지요. 장터에서 들은 반말도 어쩌면 그런 물이었는지 모릅니다. 듣기에는 불쾌하지만, 그 안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쏟아 버리고 돌아서면 그저 기분 나쁜 일로 끝납니다. 한 모금 삼켜 보면 내 말씨를 바로잡는 약이 됩니다.

내가 들어서 언짢았던 반말은, 내가 했을 때도 누군가를 언짢게 했던 반말입니다.

경전 한 자락

부처님은 말을 무척 무겁게 여기셨습니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 Nipāta)』의 「코칼리야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지니고 태어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제 몸을 찍는다.

— 『숫타니파타』 「코칼리야경」

거친 말은 남을 다치게 하기 전에 먼저 말하는 사람 자신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장터의 그 상인도 반말 한마디로 손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반말을 곱씹으며 잠 못 든 사람도 있었지요. 거친 말은 이렇게 양쪽을 모두 다치게 합니다.

불교에서는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나쁜 행동을 ‘십악(十惡)’이라 합니다. 그 가운데 네 가지가 입으로 짓는 것입니다. 거짓말, 꾸며 대는 말, 이간질하는 말, 그리고 거친 말입니다. 열 가지 가운데 넷이 말에 관한 것이니, 그만큼 말로 짓는 잘못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남의 거친 말을 들었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은 지금 제 도끼로 제 몸을 찍고 있구나. 그리고 나도 그 도끼를 지니고 있구나.

오늘의 실천

내일 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써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 같지만 막상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쉽게 반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 앞에서 한 번 더 마음을 써 보십시오. 식당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 물건을 가져다주는 택배 기사, 길을 묻는 낯선 젊은이입니다. 손주뻘 되는 사람에게도 “물 좀 주세요”, “여기 두고 가세요” 하고 말끝을 높여 보는 것입니다. 말끝에 ‘요’ 한 글자를 붙이는 데서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에게서 반말을 듣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맞받아치지 말고 속으로 한 번 불러 보십시오. “관세음보살.” 그리고 이렇게 다짐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또 하나 배웁니다. 나는 남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언짢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언짢음을 가르침으로 바꾸어 받는 것입니다. 그 짧은 다짐 하나로 불쾌함은 배움이 되고, 화는 다짐이 됩니다.

다음 장날에 그 좌판 앞을 다시 지나가게 된다면, 이번에는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배추 좋네요. 수고 많으십니다.” 그 한마디에 상인의 말씨가 달라질지 어떨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 마음에 남아 있던 앙금은 그 자리에서 풀립니다.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내가 반말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있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사과하면 됩니다. 이렇게 며칠만 해 보아도 말씨가 달라지고, 말씨가 달라지면 얼굴도 달라집니다.

반말 한마디에 언짢았다면,
그 언짢음이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입니다.
“너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관세음보살은 버스 정류장에도 계신다』 만나 보기

이 글은 책의 제4장입니다. 책에서는 이어서 핀잔을 주는 사람, 새치기하는 사람, 약속을 어기는 사람, 서운한 말을 하는 식구처럼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얼굴들을 한 장씩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알아보는 법을 함께 익혀 갑니다. 장마다 내일 해 볼 작은 실천 하나와 마음에 새길 한 줄이 있어, 하루 한 장씩 곁에 두고 읽기 좋습니다.

앞 장인 원효대사,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하다와 의상대사, 낙산 바닷가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책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 오늘 나에게 거친 말을 한 그 사람도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도 함께 읽어 보세요. 오늘 만난 얼굴 가운데 반면교사의 관세음보살이라 여겨지는 분이 있었다면 게시판에 함께 나눠 주세요. 다른 이야기는 불교이야기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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