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원효대사가 낙산사로 가는 길에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인데, 왜 부처님이라 하지 않고 여전히 “보살”이라 부를까요?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 모두 “보살”이라는 호칭을 쓰고 계시지만, 정작 불교 경전에서는 이분들이 이미 아득한 과거에 깨달음을 이루신 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물음을 풀어주는 개념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실보살(實菩薩)과 권보살(權菩薩)입니다.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한자어처럼 들릴 수 있지만, 뜻을 알고 나면 관세음보살 신앙을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먼저, 보살이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보살(菩薩)”의 기본 뜻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보살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한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줄임말로, “보리(菩提)”는 깨달음을, “살타(薩埵)”는 중생을 뜻합니다. 즉 문자 그대로는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자기 혼자만의 해탈에 만족하지 않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원력을 세운 존재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이 “보살”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는, 사실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존재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실보살과 권보살입니다.

2. 실보살(實菩薩) — 실제로 수행 중인 보살
정의
실보살은 한자 그대로 “실제(實)의 보살”입니다. 아직 완전한 깨달음, 즉 성불(成佛)에 이르지 못한 채, 실제로 보살의 길을 걸어가며 수행하고 있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경전에서는 보살의 수행 단계를 여러 층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처음 깨달음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낸 초발심(初發心) 단계부터, 오랜 수행 끝에 부처님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등각(等覺)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모든 수행자가 실보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아직 완전한 부처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기에, 여전히 정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존재입니다.
특징
- 스스로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수행의 길에 들어선 존재
- 수행의 깊이에 따라 여러 단계(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 등)로 나뉨
- 아직 번뇌와 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나,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원력으로 수행을 이어감
- 사찰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수행자,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읽고 계신 우리 자신도, 보리심을 내어 자비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실보살의 길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실보살은 “현재 진행형으로 보살도를 걷고 있는 존재”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3. 권보살(權菩薩) — 이미 부처이나 방편으로 나투신 보살
정의
반면 권보살은 전혀 다른 결의 존재입니다. “권(權)”이라는 글자는 “방편, 임시로, 짐짓”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권보살이란, 이미 아득한 옛적에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신 분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부러 보살의 모습을 취하고 계신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법화경》의 이른바 본적(本迹) 사상입니다. “본(本)”은 그 존재의 본래 자리, 즉 이미 오래전에 성취한 깨달음의 자리를 뜻하고, “적(迹)”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자취, 즉 방편으로서의 모습을 뜻합니다.
관세음보살을 비롯한 여러 큰 보살들은, 본래 자리(本)에서는 이미 부처이지만, 중생 앞에 나타나실 때는 자취(迹)로서 보살의 모습을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부처의 모습을 감추고 보살로 나투실까
여기에는 중요한 신앙적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의 모습은 이미 완전하고 초월적이어서,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거리감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보살은 여전히 “중생과 함께 수행하는 존재”라는 친근함을 지니고 있어, 고통받는 이들이 더욱 가깝게 의지할 수 있습니다.
큰 자비를 지닌 부처들이 짐짓 보살의 자리에 머무는 것은, 중생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자비로운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권보살들
일반적으로 다음 네 분의 큰 보살, 이른바 4대 보살이 권보살에 해당한다고 이야기됩니다.
- 관세음보살 — 우리가 이 사이트에서 늘 만나 뵙는 바로 그분입니다. 경전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이미 헤아릴 수 없는 과거에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라는 부처의 이름으로 성불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럼에도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스스로 보살의 자리에 머물러, 중생의 소리에 응답하고 계신 것입니다.
- 지장보살 — “지옥의 중생이 모두 구제되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그 서원 때문에 스스로 성불을 미루고 보살로 남아 계신다고 전해집니다.
- 문수보살 —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경전에서는 과거 일곱 부처님의 스승이었다고 전할 만큼 오래고 깊은 근원을 지닌 존재로 그려집니다.
- 보현보살 —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살로, 문수보살의 지혜와 짝을 이루어 중생을 이끄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네 분은 겉으로는 나란히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본질은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존재라는 점에서 앞서 설명드린 실보살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릅니다.
4. 실보살과 권보살, 한눈에 비교하기
| 구분 | 실보살(實菩薩) | 권보살(權菩薩) |
|---|---|---|
| 한자 뜻 | 실제(實)의 보살 | 방편(權)의 보살 |
| 깨달음의 상태 |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함 | 이미 오래전 완전한 깨달음(성불)을 이룸 |
| 존재 방식 | 실제로 수행 중인 진행형 존재 | 방편으로 보살의 모습을 취한 것 |
| 대표적인 예 | 각 단계의 수행자, 발심한 재가·출가 불자 |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
| 신앙적 의미 | 함께 정진하는 도반, 우리가 나아갈 모범 | 이미 완성된 자비와 지혜의 화현, 절대적 의지처 |
5. 이 구분이 우리 신행에 주는 의미
실보살과 권보살의 구분을 아는 것은 단순한 교리 지식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권보살을 향한 신심이 더욱 깊어집니다
관세음보살이 이미 오래전 정법명여래로 성불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사이트에서 늘 독송해온 다라니와 명호가 얼마나 큰 원력과 자비 위에 서 있는지 새삼 깊이 다가옵니다.
관세음보살은 “아직 수행 중인 존재”가 아니라,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도 오직 중생을 위해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를 때 느끼는 의지처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수행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권보살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오늘 이 순간 자비로운 마음을 내고 정성껏 다라니를 독송하는 그 자체로 실보살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완성된 자비를 우러러 의지하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도 작은 자비를 실천해가는 수행자라는 자각. 이 두 가지 마음이 함께할 때, 신앙은 단순한 기복을 넘어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마치며
정리하면, 실보살은 아직 수행의 길 위에 있는 존재이고, 권보살은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뒤 자비의 방편으로 보살의 모습을 취하신 존재입니다. 우리가 매일 부르는 관세음보살은 바로 이 권보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음번 다라니를 독송하실 때, 이 사실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그 이름 뒤에는, 이미 완성된 깨달음을 갖추고도 오직 자비로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신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비에 응답하여, 오늘 하루도 작은 선행 하나를 실천하는 우리 자신 역시,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실보살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