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는 어디인지, 그리고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의 원문과 독송법까지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실제로 이 다라니를 지니고 살았던 한 스님의 삶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봉은사·조계사·동화사·불국사 주지와 법주사 조실을 두루 지낸 범행(梵行) 스님입니다.
스님은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당시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던 폐병을 얻었다가, 한 권의 경전과 한 가지 주문을 붙들고 이겨낸 뒤 출가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스님이 생전에 직접 남긴 회고를 바탕으로 전해지는 내용이며, 이 글에서는 그 회고의 흐름을 따라가되 저희 사이트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 전해드립니다.
1. 넉넉한 집안, 그러나 폐병 앞에서는 속수무책
범행 스님은 1921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넉넉한 편이어서 형제들이 원한다면 일본 유학도 갈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안에는 유독 폐병이라는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아버님과 두 형님이 모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중 한 형님은 일본의 대학 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 집안 내력을 지켜봐 온 청년에게, 스스로 폐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예감하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결핵이 충분히 치료 가능한 병이지만, 1940년대 말에는 마땅한 치료제도 없이 그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며 몸을 추스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청년은 요양이나마 해볼 요량으로 대둔산의 한 절, 태고사를 찾아갑니다. 훗날 돌아보면, 이 발걸음이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은 출가의 인연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2. 태고사에서 만난 스승
태고사는 여덟 분의 스님이 참선 수행을 하던, 조용하고 풍광이 빼어난 절이었습니다. 청년은 그곳에서 평소 즐겨 읽던 철학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세계 문학 전집과 철학서를 두루 탐독해온 터라, 웬만한 인생사의 이치에는 자신도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절의 조실 스님이 청년의 방을 찾아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내 토론으로 이어졌고, 청년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인생관과 철학적 논리를 자신 있게 펼쳤습니다.
그러나 한 주일가량 이런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청년은 스스로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니, 조실 스님이 거듭 강조했던 것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아졌습니다.
“공(空)의 이치를 모르고서야, 무슨 수로 세상사를 꿰뚫는 논리를 세울 수 있겠는가.”
절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청년은 승려들의 생활을 내심 우습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일제 말과 해방 직후의 절집 살림은 몹시 궁핍했고, 엿을 고아 신도 집에 가져다주고 쌀 한 말을 얻어오던 시절이었으니,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알려진 그 조실 스님과의 대화를 거듭할수록, 청년은 자신이 미처 몰랐던 세계가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문학책도, 그토록 자신 있어 하던 철학책도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3. 조실 스님이 건넨 얇은 경전,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그렇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즈음, 조실 스님은 청년에게 비로소 그가 이 절을 찾아온 이유, 즉 병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경전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경》이었습니다.
조실 스님은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경 속에 담긴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앉으나 서나 꿈속에서도 놓치지 않을 만큼 일심으로 지니고 외우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병도 나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청년은 이미 불법의 깊은 이치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스님을 깊이 믿고 있었기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오직 한마음으로 다라니를 지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의 원문은 저희가 지난 글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린 바로 그 다라니입니다. 청년은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그 소리를,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숨결처럼 익혀갔습니다.
4. 온전히 하나가 된 한 달
전심전력으로 주력에 몰두하다 보니, 나중에는 태고사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다라니가 실려 있는 듯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력과 자신이 둘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못 되는 시간, 아마도 3주쯤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를 돌보아주던 의사가 진찰을 마치고는 반갑게 외쳤습니다.
“병이 다 나았군요.” 그 말에 반가운 마음으로 벌떡 일어섰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병원이 아니었습니다. 비몽사몽,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마음이 상쾌해졌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불전을 향해 무수히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손쓸 방법이 없다던 그 폐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5. 은혜에 보답하는 길, 출가
이 경험을 두고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가피, 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부처님 법을 믿고 수행 삼매에 들었을 때 찾아오는 그 무한한 가피는,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합니다. 실제로 1949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수원 팔달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어떤 인연으로 참선 수행을 하게 되기까지, 줄곧 이 다라니 주력을 자신의 수행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이루기 어려운 일도, 내게 맡겨지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주력 수행이 그와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스님은 이 체험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가피를 얻기 위해 수행하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원을 세우고 수행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바라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공부해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정진하다 보면, 자연히 그 가르침이 자기 것이 되어 실생활에서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6. 그 후의 삶 — 정화의 시대를 살아낸 수행자
출가 이후 범행 스님의 행보는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굵직한 흐름과 함께합니다.
- 1952년 수원 팔달사 주지를 지내던 중, 1954년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자 서울 봉은사 초대 주지를 맡아 정화불사에 앞장섰습니다.
- 1956년부터 1960년까지는 조계사 주지로 부임해, 당시 운영난에 처했던 조계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 이 시기 스님은 군포교에도 원력을 세워, 육군사관학교 포교와 군부대 법당 건립 등 군불교 진흥을 위한 여러 불사를 이끌었습니다.
- 1959년 동산 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뒤, 대구 동화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선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불교 발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특히 1968년부터 1973년까지 불국사 주지로 재임하던 시절, 대대적인 발굴 조사와 함께 불국사를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불사를 이끌어 “보건 불사의 선구자”로 평가받았습니다.
- 1975년에는 수덕사 방장 혜암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효일’이라는 당호를 받았고, 1986년 예산 수덕사 주지를 끝으로 1998년에는 법주사 조실로 추대되어 후학을 이끌었습니다.
한 스님이 짧게 회고한 말처럼, 이(理)와 사(事)를 둘로 보지 않으며 평생 수행자로서 본분을 잃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7. 스님이 남긴 마지막 가르침
범행 스님은 생전에 신도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도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부처님 법을 깊이 체득하고 원을 세워 꾸준히 수행 정진하다 보면, 그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 닥치는 것을 미리 막아주기도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전을 먼저 익혀 불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난 뒤에 수행에 들어가라고 신도들에게 늘 강조했습니다. 경전을 공부하며 스스로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 비로소 수행이 온전히 빛을 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2012년 1월, 수원 팔달사에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습니다.
일생다사(一生多事) 몽중여환(夢中如幻)
일념방하(一念放下) 무애환희(無碍歡喜)일생 동안 많은 일들이 꿈속의 일과 같았네
한 생각 내려놓으니 걸림이 없어 기쁘고 기쁘도다
8.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것
범행 스님의 이야기는 한 개인이 남긴 신앙 체험의 회고이며, 이는 당사자의 깊은 신심 속에서 이해되고 전승되어 온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일화가 “다라니를 외우면 병이 낫는다”는 공식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가지에 몰두했던 한 청년의 정성, 그리고 그 정성이 평생에 걸친 수행과 회향으로 이어졌다는 삶의 궤적에 있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이라면,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과 더불어 반드시 병원 진료와 전문적인 치료를 함께 받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은 마음의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지만, 의학적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범행 스님의 이야기처럼,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시간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만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진실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짧게라도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독송하며 그 정성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이 사이트의 “수행 나눔터”에 오늘의 마음가짐을 기록해두신다면, 훗날 범행 스님이 그러했듯 여러분의 수행 여정을 돌아보는 소중한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