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니 독송을 꾸준히 이어가시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기왕이면 산스크리트 원어 발음을 찾아서 독송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과, “지금 우리가 대대로 지녀온 한역 음역본(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으로 독송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입니다.
두 입장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고, 실제로 불교계 안에서도 오랜 세월 함께 논의되어 온 주제입니다. 오늘은 이 두 입장을 각각 자세히 살펴보고, 초보자이신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시면 좋을지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1. 왜 이런 논쟁이 생겼을까 — 다라니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긴 기간
이 논쟁을 이해하려면 먼저 다라니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거친 기간을 알아야 합니다.
다라니는 본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당나라 시대에 여러 역경승에 의해 한자로 음역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미 한 차례의 소리 변형이 일어납니다.
산스크리트어에는 있지만 중국어(한자)의 음운 체계에는 없는 발음들이, 가장 비슷한 한자음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원음과 다소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자로 옮겨진 음역본이 다시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이번에는 그 한자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는 두 번째 변형이 더해졌습니다. 즉 우리가 지금 독송하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는, 산스크리트어 → 당나라 한자음 → 한국식 한자음이라는 두 단계의 음운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소리인 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소개해드리면, 조선 초기 왕실에서는 이러한 음의 변형 문제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조 때 간행된 《오대진언(五大眞言)》이라는 자료는, 기존 한자 음역본을 기본 골격으로 삼으면서도 범자(梵字, 산스크리트 문자)의 발음 원리를 중시하여 음가를 다시 정리한 문헌입니다.
당시 일부 승려들이 이미 실담자(悉曇字, 산스크리트를 표기하는 고대 문자)의 음가와 발음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이 작업을 통해 한자 음역만으로는 불분명했던 산스크리트 원어의 소리가 다시 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즉 “원어에 가깝게 독송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결코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불교계 안에서 함께 고민해온 주제였던 것입니다.

2. 원어(산스크리트) 다라니 독송을 지지하는 입장
근거 1. 소리 자체에 힘이 있다는 다라니 신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지난 글에서 다라니를 번역하지 않는 이유(오종불번)를 설명해드리며, 다라니의 힘은 “뜻”보다 “소리 그 자체”에 담겨 있다는 전통적 이해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 소리가 핵심이라면 그 소리는 당연히 원래의 소리, 즉 산스크리트 원음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두 단계의 음운 변화를 거친 한역 음보다는, 원어에 가까운 발음이 다라니 본연의 진동과 울림을 더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근거 2. 학술적·언어학적 복원이 가능해졌다
오늘날에는 산스크리트어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자로 음역된 다라니의 원래 산스크리트 형태를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경우, 학자들이 산스크리트 원문(니라칸타 다라니)과 대조하여 각 구절의 원어를 상당 부분 확인해두었습니다. 이런 복원 자료를 참고해 독송하면, 한역 과정에서 다소 뭉개진 소리를 원형에 가깝게 되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전통 한역 음역본 다라니 독송을 지지하는 입장
근거 1. 순고고(順古故) —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 그 자체에 힘이 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오종불번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순고고(順古故)”, 즉 예로부터 그렇게 사용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독송하는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라는 음은, 수백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수행자들이 정성을 다해 지송해온 소리입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신심과 공덕이 바로 그 소리 안에 깃들어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굳이 원어로 바꾸기보다 이미 검증되고 전승되어 온 소리 그대로 잇는 것이 더 온전한 수행이라 봅니다.
근거 2. 공동체 안에서 함께 독송할 수 있다
사찰의 새벽 예불이나 법회에서 대중이 함께 다라니를 독송할 때, 모두가 같은 음으로 맞추어 외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행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만약 저마다 다른 산스크리트 복원 발음으로 독송한다면, 이러한 대중적 합송(合誦)의 힘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표준화되어 온 한역 음역본은, 지역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같은 소리로 함께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의 언어라는 실용적 가치를 지닙니다.
근거 3. 완벽한 산스크리트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스크리트어 학자들 사이에서도, 고대 산스크리트의 정확한 발음을 오늘날 100% 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경우도, 학자들이 여러 판본과 산스크리트 원문을 비교했을 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즉 “산스크리트 원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여러 갈래의 복원안이 존재하는 유동적인 대상이라, 어느 것이 진짜 “원어”인지조차 명확히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4. 두 입장,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여기까지 살펴보면, 두 입장 모두 나름의 정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다라니를 독송하시는 분들,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특정 음역본으로 독송해오신 분들은 어떻게 하시면 좋을까요. 몇 가지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리해드립니다.
이미 독송해오셨다면, 굳이 바꾸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역 음역본으로 꾸준히 독송해오셨다면, 그 안에 이미 쌓여온 정성과 습관의 힘이 있습니다. 갑자기 발음을 바꾸시면 오히려 리듬이 흐트러지고 집중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순고고”의 정신처럼, 이미 이어온 전통을 굳이 흔들 필요는 없습니다.
학술적 호기심으로 원어를 살펴보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라니 첫머리의 귀의문(“나모라 다나다라 야야…”)이 산스크리트로 “삼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처럼, 원어의 의미와 발음을 함께 공부하시는 것은 신심을 더 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독송은 익숙한 음역본으로 하시되, 그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를 넓혀가시는 것은 전혀 상충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심(一心)”입니다
이 사이트에서 거듭 강조해드린 것처럼, 다라니 독송의 핵심은 발음의 정확도보다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모으는 것에 있습니다. 원어로 독송하든 한역 음으로 독송하든, 산만한 마음으로 형식만 갖추는 것보다는, 다소 발음이 불완전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지송하는 편이 훨씬 값진 수행입니다.
5. 정리하며 — 하나의 실용적인 제안
굳이 하나의 방향을 제안해드린다면 이렇습니다.
- 처음 시작하시는 분은 지금 이 사이트에서 소개해드린 한역 음역본으로 편안하게 시작하세요. 오랜 세월 검증되고 표준화된 소리이기에, 배우기도 쉽고 사찰 어디서든 함께 독송하실 수 있습니다.
-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분은, 여유가 되실 때 다라니 첫머리의 산스크리트 원어와 뜻을 함께 공부해보세요. 소리의 뿌리를 알게 되면 같은 음역본을 독송하더라도 마음에 담기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 어느 쪽을 택하시든, 발음의 완벽함보다 정성의 깊이에 더 무게를 두세요. 그것이 다라니 신앙이 예로부터 한결같이 강조해온 핵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