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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충절의 명문가문 강릉 유씨 이야기

aulir 2024. 12. 17.

강릉 유씨(劉氏)는 고려 시대부터 이어온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가입니다. 시조 유전의 학문적 업적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의 충절과 근현대의 사회 기여까지, 강릉 유씨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왔습니다. 이제 그들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겠습니다.

강릉 유씨의 기원과 특징

강릉 유씨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그 기원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그림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강릉 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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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강릉 劉氏의 시조는 유전(劉筌)입니다.  유전은 중국 송나라 출신으로, 1082년(고려 문종 36년) 8학사의 일원으로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그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에 정착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본관 설정

강릉 劉氏가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유전의 12세손인 유창(劉敞) 때문입니다. 유창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고, 이에 따라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특징

  1. 명문거족 :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남한에만 236,871명이 살고 있는 대규모 씨족입니다.
  2. 학문과 관직 :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는 등 학문과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3. 분파 : 감찰공파, 경력공파, 군수공파 등 다양한 분파가 존재합니다.
  4. 항렬자 : 대동항렬을 사용하며, 시조부터 세대를 계산합니다.
  5. 집성촌 : 경상북도 영주시,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남도 신안군 등 여러 지역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6. 주요 인물 : 유창순 전 국무총리,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 유승민 전 국회의원 등 정계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7. 문화재 : 서울 상일동에 있는 문희공 유창의 영정각 및 어필각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릉 劉氏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씨족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강릉 劉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강릉 劉氏는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주요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시대별로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려 시대

  • 유전(劉筌) : 강릉 유씨의 시조로, 송나라 출신으로 1082년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9경과 백가서, 천문, 지리에 정통했으며, 경북 영일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 유충기 : 좌간의대부로서 지공거를 겸했으며, 시문에 뛰어나 '한림별곡'에서 '충기대책'으로 불렸습니다.
  • 유존혁 : 원종 때 대장군을 지냈으며,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제주도에서 몽고군과 고려 정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국했습니다.

조선 시대

  • 유창(劉敞) : 강릉 유씨의 중시조로, 조선 개국공신 2등으로 책록되었습니다. 성균관대사성, 옥천부원군 등을 역임했으며, 이성계와 친분이 깊었습니다.
  • 유호인 : 선조 27년 큰 가뭄 때 살신기우하여 비를 내리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로 인해 '천방'이라는 호를 하사받았습니다.
  • 유진길 : 조선 말기 사역원 당상관으로, 1823년 천주교를 받아들였다가 후에 순교했습니다.

근현대

  • 유대치 : 개화기의 인물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당 인사들의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 유여대 :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 유창순 :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 유재흥 : 국방장관을 지냈습니다.
  • 유기천 : 서울대학교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강릉 劉氏는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학문,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강릉 劉氏 과거 급제자 현황

강릉 劉氏는 조선 시대를 통해 다수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가 중 하나입니다. 문과와 무과 급제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과 급제자

강릉 유씨 가문에서 배출한 문과 급제자 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

  •  
  • 7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다른 자료에 따르면 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 가장 많은 수를 언급한 자료에 의하면 2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조사 시기나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강릉 유씨가 상당수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과 급제자

강릉 유씨 가문에서는 8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사마시 급제자

사마시(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인원은 39명입니다.

총 과거 급제자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강릉 유씨 가문에서 배출한 과거 급제자의 총 수는 54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문과 7명, 무과 8명, 사마시 39명을 합한 수치입니다.

특징

강릉 유씨는 조선 시대 전체 성씨 중에서 문과 급제자 수로는 상위권에 들지는 않지만, 꾸준히 관리를 배출한 가문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무과와 사마시에서 많은 급제자를 배출한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러한 과거 급제자들의 활약으로 인해 강릉 劉氏는 조선 시대에 중요한 양반 가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강릉 劉氏 주요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강릉 劉氏는 다음과 같은 주요 분파로 나뉩니다.

경력공파(經歷公派) : 6세 유지주(劉智周)를 파조로 합니다.

병사공파(兵使公派) : 6세 유신주(劉信周)를 파조로 합니다.

좌랑공파(佐郞公派) : 6세 유계주(劉繼周)를 파조로 합니다.

군수공파(郡守公派) : 5세 유인제(劉仁悌)를 파조로 합니다.

감찰공파(監察公派) : 6세 유생(劉生)을 파조로 합니다.

어사공파(御使公派) : 5세 유상우(劉尙友)를 파조로 합니다.

호판공파(戶判公派) : 4세 유방(劉方)을 파조로 합니다.

병판공파(兵判公派) : 4세 유치(劉治)를 파조로 합니다.

금성군파(金城君派) : 2세 유송재(劉松梓)를 파조로 합니다.

항렬표

강릉 유씨의 대동항렬은 다음과 같습니다.

27세
○원(源)
28세
○병(秉)
29세
○렬(烈) ○묵(默)
30세
재(載) 시(時)
31세
○종(鍾) ○호(鎬)
32세
영(永) 승(承)
33세
○상(相) ○근(根)
34세
환(煥) 용(容)
35세
○식(埴) ○균(均)
36세
현(鉉) 진(鎭)
37세
○수(洙) ○제(濟)
38세
동(東) 환(桓)
39세
○섭(燮) ○영(榮)
40세
기(基) 규(圭)

강릉 劉氏 집성촌 및 종친회 운영현황

집성촌 현황

강릉 劉氏의 주요 집성촌은 다음과 같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경상도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

전라도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상등리
  •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구림리, 신원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상봉리 두봉마을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오월리

충청도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 충북 제천시 수산면 고명리
  •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추학리

기타 지역

  •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

종친회 운영

강릉 유씨 대종회는 다음과 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

  • 서울에 강릉유씨대종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40억원 상당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2022년에는 제17대 유기종 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었습니다.
  • 대종회는 문중의 각종 행사와 종친 간의 유대 강화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2015년 기준으로 전국의 강릉 유씨 인구는 236,871명에 달하며, 종친회는 이들을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릉 劉氏 문화재 및 유적지

강릉 유씨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 및 유적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희공 유창 묘역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산190번지
  • 지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6호
  • 특징 
    - 조선 초기 문신인 유창(1352-1420)과 그의 자손들의 묘가 있는 곳
    - 당시의 분묘제도와 석조미술을 대표하는 문관석, 망주석, 묘비 등이 보존되어 있음
    - 신도비, 봉분, 호석, 곡장 등 다양한 묘역 구성요소가 남아있음

해천재(蟹川齋)

  • 위치 : 서울 강동구 상일동
  • 특징 
    - 1990년 10월에 유창의 영정각(影幀閣) 및 어필각(御筆閣)을 이봉하여 모시고 있는 곳
    - 문희공 신도비, 문관석, 묘갈, 망주석 등이 보존되어 있음
    - 보호구역 4필지 19,651m²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됨

오산창의비와 창의사

  • 위치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 지정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1985년 2월 25일 지정)
  • 특징 
    -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덕문의 업적을 기리는 비와 사당
    - 유덕문은 강릉 유씨 출신의 무신으로, 조선 개국공신 유창의 후손임

송계서원

  • 위치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 특징 : 유덕문이 배향된 서원

이러한 문화재와 유적지들은 강릉 유씨의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적 유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특히 문희공 유창 묘역은 조선 초기의 묘제와 석조미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강릉 劉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강릉 유씨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가로서, 현대 사회에 맞춰 다양한 미래 지향적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종친회 활동 강화

강릉 유씨 대종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종친 간의 유대 강화와 문중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 정기적인 종친회 모임 개최
  • 족보 정리 및 디지털화 작업
  • 문중 소식지 발간
  • 장학사업 운영

문화유산 보존 및 계승

강릉 유씨 문중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통해 조상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습니다.

  • 문희공 유창 묘역 등 문화재 관리 및 보존
  • 해천재(蟹川齋) 등 종가 건물 유지·보수
  • 종중 소장 고문서 및 유물의 체계적 관리

사회공헌 활동

강릉 유씨 종친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 지역사회 봉사활동 참여
  • 소외계층 지원 사업
  • 환경보호 캠페인 동참

미래세대 육성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고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청년 종친회 활성화
  • 장학금 지원 확대
  •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디지털 전환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다음과 같은 디지털 전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종친회 홈페이지 및 SNS 채널 운영
  • 온라인 종친회 모임 플랫폼 구축
  •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문화유산 체험 프로그램 개발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강릉 유씨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진취적인 문중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결론

강릉 劉氏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학문과 충절, 그리고 사회 기여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고려 시대 귀화 이후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릉 劉氏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해왔습니다.

다양한 분파와 집성촌, 그리고 문화유산은 이들의 풍부한 역사를 증명합니다. 오늘날 강릉 유씨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활동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강릉 劉氏가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강릉 유씨의 역사는 단순한 가문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현대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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