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년 역사 명문가문 영양 남씨 영의공부터 현대까지

aulir 2024. 12. 18.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김충(金忠)을 시조로 영양 남씨(南氏)는 경덕왕으로부터 성씨와 식읍을 하사받은 이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문무양반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17-18세기에는 다수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명문가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영양 남씨의 기원과 특징

기원

영양 남씨의 시조는 당나라 출신의 김충(金忠)으로, 755년 경덕왕 14년에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영해 축산항 부근에 표착하여 신라에 귀화하였습니다. 경덕왕은 그에게 남씨(南氏)라는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치게 하였으며, 영양현을 식읍으로 내려주고 영의공(英毅公)이라는 작호를 내렸습니다.

영양 남씨 이해도
영양 남씨 이해도

분파

영양 남씨는 영양, 의령, 고성, 남원 등의 본관으로 분파되었으나, 모두 시조 남민의 후손입니다. 남민의 후손인 남진용의 세 아들이 각각,

  • 장남 : 영양남씨
  • 차남 : 의령남씨
  • 삼남 : 고성남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특징과 발전

족보의 체계화
남사고(1509-1571)에 의해 처음으로 족보가 체계화되었으며, 1680년에 남자(南磁)가 편찬하고 1712년 안동의 남흥재사에서 3권 1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인물 배출
조선시대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특히 울진 지역에서는,

  • 만호를 지낸 남호
  • 현감을 지낸 남신
  • 감찰어사를 지낸 남수
  • 해운당 남계명
  • 천문·지리에 정통했던 격암 남사고 등이 있습니다.

현재 분포

현재 영양 남씨들은 경상북도 울진군의 울진읍, 평해읍, 기성면, 온정면을 비롯한 울진 지역 일대에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영양 남씨 시대별 주요인물

고려시대

  • 남숙손 : 검교예빈시경을 역임
  • 남영번 : 중랑장을 지냈으며, 울진 입향조로서 고려말 어지러운 정세를 피해 울진에 은둔
  • 남호 : 만호를 역임
  • 남신 : 현감을 역임

조선시대

생육신 관련

  • 남효온(추강) : 사육신 사건 이후 정계를 떠나 선비로서의 지조를 지켰으며, 「육신전」을 완성하였습니다.

학문과 관직

  • 남사고(격암) : 천문·지리에 정통했던 학자
  • 남계명(해운당) : 조선 중종 때의 유현
  • 남전 : 진사공으로 울진의 명망 높은 유학자
  • 남세영 : 임천공

후기 조선

  • 남명신(용암, 1698-1772)
  • 남석로(예연) : 남명신의 아들
  • 남목영(봉산)
  • 남진영(무실)
  • 남대년(정제)
  • 남상규(우산)

영양 남씨 과거급제자 현황

문과 급제자

조선시대 시기별 급제 현황

  • 17세기 : 1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안동권씨(24명), 의성김씨(16명) 다음으로 많은 급제자를 배출
  • 18세기 : 12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여 안동권씨(20명), 의성김씨(13명), 진주강씨(13명) 다음으로 많은 수를 기록

주요 문과 급제자

  • 남붕익 : 현종 13년 대과 급제 후 예조좌랑, 영산현령 역임
  • 남천한 : 대사간 역임
  • 남천택 : 경주부윤 역임
  • 남몽뢰 : 통례원 통례 역임
  • 남구명 : 숙종 때 급제하여 순천부사 역임

무과 급제자

주요 무과 급제자 가계

  • 남민생의 5형제가 모두 무과 급제
    - 남부량 : 삼척진병마검절사
    - 남수량 : 중령호군
    - 남의량 : 수위교위
    - 남우량 : 회령도호부사
    - 남보량 : 만호

생진과(생원·진사시) 급제자

송정공파에서만 28명의 생진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학문적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특징

영양 남씨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특히 17-18세기에 문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여 명문가문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무과와 문과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로 진출은 가문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영양 남씨 주요 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6대 종파

  • 록사공파 : 6세 영경전록사 휘 승경
  • 만호공파
  • 현감공파
  • 반송공파
  • 송정공파 : 전체 영양 남씨의 약 8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파
  • 수사공파

지역별 분파

  • 영양 : 장남 남홍보 계열
  • 의령 : 차남 남군보 계열
  • 고성 : 삼남 남광보 계열
  • 남원

항렬표

26세~35세

  • 수(守) - 우(佑) - 정(禎) - 욱(旭) - 장(章)
  • 세(世) - 원(元) - 규(圭) - 영(寧) - 정(正)

36세~45세

  • 철(喆) - 호(鎬) - 영(永) - 표(杓) - 병(丙)
  • 배(培) - 수(銖) - 한(漢) - 화(和) - 걸(杰)

46세~49세

  • 재(在) - 용(鎔) - 하(河) - 영(榮)

영양 남씨 집성촌 및 족보관리 현황

주요 집성촌 현황

울진 지역

  • 울진읍 정림리
  • 죽변면 화성리
  • 북면 고목리
  • 근남면 노음리, 행곡리
  • 원남면 금매리, 매화리
  • 온정면 소태리, 선구리
    각 마을마다 20~60호씩의 집성촌을 형성

영덕 지역

  • 영해면 괴시리: 경북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된 민속마을
  • 괴시마을은 1630년경부터 영양남씨가 정착하여 집성촌 형성

청송 지역

  • 현동면 거성리 부흥마을: 약 20가구
  • 현동면 월매리 월매마을: 약 30가구
    2015년 기준 청송군 거주 영양남씨는 488명

족보 관리 현황

족보의 발전과정

  • 최초 체계화 : 남사고(1509-1571)에 의해 시작
  • 1680년 : 남자(南磁)가 편찬
  • 1712년 : 안동 남흥재사에서 3권 1책으로 간행

주요 족보

  • 1810년 경오보(庚午譜) : 영양파와 안동파가 최초로 합본 발행
  • 1957년 정유대동보(丁酉大同譜) : 영양, 안동, 의령, 고성 모든 파의 통합보 완성

현대 족보 관리

  • 영양 남씨 대종회에서 인터넷족보 운영
  • 출생, 사망, 결혼, 학력, 경력 등 개인 정보 수정 가능
  • 오탈자 수정 요청 시스템 운영

영양 남씨 문화재 및 유적지

국가민속문화재

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 국가민속문화재 제299호로 지정
  • 고려 말 전리판서 남휘주와 공조참판 남민생의 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
  • ㅁ자형 배치의 재실 건축물로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이 연결된 독특한 구조
  • 종손방, 웃방, 유사방 등 조선시대 유교적 제례문화를 보여주는 공간 구성

경상북도 문화재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 경북 민속자료 제75호
  •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위치
  • 1630년경 남두원 공이 처음 터를 잡아 건립
  •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된 전통 고가

안동 영양남씨 재사

  •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 조선시대 문신 남창년의 무덤 근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
  • 1826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
  • ㅁ자형 구조의 남향 건물로 '둔재(屯齋)'라는 현판이 있음

집성촌 문화유산

괴시리 민속마을

  • 경북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된 전통 민속마을
  • 30여 호의 전통 고가가 보존
  • 매년 "목은문화제" 개최
  • 문집, 저술, 일기, 유고, 서화 등 다수의 문화유산 보유

영양 남씨 종친회 및 미래 지향적 활동

종친회 조직 현황

대종회

  • 영양 남씨대종회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종친회 운영
  • 인터넷 족보 관리 시스템 구축
  • 정기적인 종친회보 발간

지역별 종친회

  • 괴시종친회 : 교육발전기금 기탁 등 지역사회 공헌활동 수행
  • 영양군종친회 : 정기총회를 통한 종친 간 교류 활성화
  • 대구종친회 : 신년교례회와 정기총회 개최

미래지향적 활동

교육 지원사업

  • 장학사업 운영
  • 지역 교육발전기금 지원
  • 젊은 세대 종친회 참여 독려

문화유산 보존

  • 종가 및 재실 관리
  • 전통문화 계승 활동
  • 종중 소장 문화재 보존 관리

디지털화 사업

  • 종친회 홈페이지 운영
  • 전자족보 시스템 구축
  • SNS를 통한 종친 간 소통 강화

지역사회 공헌

  • 지역 발전을 위한 기부활동
  • 문화행사 주최
  • 종친회관을 통한 지역주민 편의 제공

결론

영양 남씨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성씨로,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문무 양면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해왔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문과와 무과에서 많은 급제자를 배출하여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갔으며, 현재도 종친회를 중심으로 교육사업과 문화유산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영양 남씨는 디지털 시대에 맞춘 족보 관리와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발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며 미래지향적인 종가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