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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豊壤趙氏), 천년의 역사와 미래를 잇다

aulir 2024. 11. 13.

고려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풍양 조씨(趙氏)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현 풍양현)를 관향으로 합니다.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7대에 걸쳐 이조판서를 배출하고 고구마를 도입하는 등 한국의 정치, 문화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풍양 조씨 기원

풍양 조씨는 경기도 남양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로, 그 역사와 기원이 매우 깊습니다.

풍양 조씨와 고구마 이야기
풍양 조씨와 고구마 이야기

시조와 유래

풍양 조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조맹(趙孟)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바우(岩)였으며,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해당하는 풍양현에서 태어났습니다.

바우는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서 은둔하며 살던 도인이었는데, 70세의 나이에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영해지방 전투에서 그의 뛰어난 지략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성씨의 하사

태조 왕건은 바우의 공을 인정하여,

  • 성씨 '조(趙)'를 하사
  • 이름을 '맹(孟)'으로 하사
  • 통합삼한벽상개국공신에 책록
  • 상주국삼광문하시중평장사의 관직을 제수

역사적 위상

풍양 조씨는 우리나라 조씨 중 가장 오래된 성씨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7세기 좌의정을 지낸 조익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조씨 성씨들과 비교했을 때,

  • 직산 조씨의 시조는 실존 여부가 불분명
  • 함안 조씨는 중국에서 이주한 성씨

이러한 이유로 풍양 조씨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조씨 성씨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풍양 趙氏와 고구마 이야기

풍양 조씨와 고구마의 관계는 조엄(趙曮, 1719-1777)이라는 인물을 통해 연결됩니다.

고구마의 도입

조엄은 풍양 조씨 가문의 대표적 인물로, 1763년 통신사의 신분으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고구마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재배 과정

귀국 후 조엄은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고구마 종묘를 전달
  • 재배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수
  • 1764년 부산 영도에서 최초 재배 시작

기록과 보급

조엄은 고구마의 재배와 보급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공헌을 했습니다.

  • 해사일기(海槎日記)』에 고구마의 재배법과 보관법을 상세히 기록
  • 제주도와 동래 지역에 재배를 확대
  • 가난한 백성들의 구황작물로 활용되도록 보급

역사적 의의

조엄의 고구마 도입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조저(趙藷)'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공헌을 기렸음.
  • '고구마'라는 명칭 자체가 조엄의 『해사일기』에서 일본인들이 부르던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
  • 조선의 구황 작물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함.

풍양 趙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고려시대

  • 조맹(趙孟) : 풍양 조씨의 시조, 고려 개국공신이자 문하시중평장사 역임
  • 조운흘 : 공민왕 때 문과 급제, 동지밀직사사와 계림부윤 등 역임

조선 전기

  • 조익(趙翼, 1579-1655) : 좌의정 역임, 성리학자로 유명한 포저(蒲菹)

조선 후기

  • 조현명, 조문명 형제 : 영조 때 탕평책을 주도,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 역임
  • 조엄(1719-1777) : 이조판서,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를 도입
  • 조만영(1776-1846) : 효명세자의 장인, 영돈녕부사 역임
  • 조인영(1782-1850) : 조만영의 동생, 영의정 역임

왕실 관련 인물

  • 효순왕후 : 조선 진종의 비
  • 신정왕후(1809-1890) : 조선 익종의 비, 철종 사후 고종을 왕위에 올림

근현대

  • 조풍연 : 아동문학가, 언론인
  • 조치훈 : 바둑 기사
  • 조순 : 전 서울시장

풍양 조씨는 특히 조선 후기 세도정치 시기에 크게 번성했으며, 숙종 대 이후 재상 7명, 대제학 4명, 공신 4명, 장군 7명을 배출한 명문가로 성장했습니다.

풍양 趙氏의 과거 급제자 현황

과거 급제자 총괄

조선시대 풍양 조씨의 과거 급제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과 : 186명
  • 무과 : 15명
  • 사마시 : 395명
  • 의과: 1명
  • 주학: 2명

시대별 주요 급제자

고려시대

  • 조운흘 : 1357년(공민왕 6) 문과 급제

조선시대

  • 조세영 : 중종 16년(1521) 문과 급제
  • 조익정 :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 급제

특징

  • 특히 숙종 이후 급제자가 크게 증가했으며, 조도보의 아들 3형제와 손자 8명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 조선 후기에는 7대에 걸쳐 연속하여 이조판서를 배출할 정도로 가문이 번성했습니다.
  • 과거 급제자들의 활약으로 조선시대에 상신 7명, 대제학 4명, 공신 7명, 장신 7명을 배출했습니다.

풍양 趙氏의 주요 계보

주요 종파

풍양 조씨는 크게 3계 5파로 나뉩니다.

전직공계(殿直公系)

  • 호군공파 : 조사충을 중시조로 함
  • 회양공파 : 조신을 중시조로 함
  • 금주공파 : 조임을 중시조로 함

평장사공계

  • 평장사공파 : 조신혁을 중시조로 함

상장군공계

  • 상장군공파 : 조보를 중시조로 함

파의 특징

  • 회양공파는 다시 한평군파와 청교파로 나뉘며, 이 두 파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현재도 풍양조씨의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 주요 지파로는 전직공파 아래 판관공파, 사인공파, 병사공파, 지평공파, 주부공파, 부위공파, 한평군파, 별검공파, 장령공파, 도사공파, 진사공원종파, 부장공파가 있습니다.
  • 평장공파 아래에는 참판공파, 생원공파, 진사공세필파 등이 있습니다.

특이사항

  • 각 계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 없어 항렬을 따로 사용합니다.
  • 시조 이후 몇 세대가 지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지린을 계조로 하는 파와 조신혁을 계조로 하는 파가 주요 계보를 이룹니다.

풍양 趙氏 대동항렬표

세대전직공계평장사공파상장군공파

24세 동(東) 기(紀) 갑(岬)
25세 구(九) 강(康) 일(日)
26세 남(南) 규(揆) 병(昺)
27세 연(衍) 연(演) 종(宗)
28세 성(誠) 행(行) 성(晟)
29세 희(熙) 진(振) 기(玘)
30세 용(鏞) 동(東) 강(慷)
31세 신(新) 순(淳) 상(庠)
32세 중(重) 경(卿) 성(聖)

각 계파는 시조 조맹(趙孟) 이후 중시조까지의 세대가 불분명하여 독립적인 항렬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대부분 40~45세대에 해당합니다.

풍양 趙氏 문화재 및 유적지

풍양 조씨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찰 및 암자

현성암(見聖庵)

  •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천마산
  • 의의 : 시조 조맹이 왕건을 만났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굴에 건립
  • 풍양 조씨 문중에서 시조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여 관리

서원

퇴수서원

  • 위치 : 충남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 배향인물 : 풍양 조씨 3인(석곡 조박, 성강 조견소, 퇴수재 조성복)
  • 연혁
    - 영조 33년(1757) 세도면 동사리에 최초 건립
    - 1957년 현재 위치로 이전

주요 인물 관련 유적

조박(1577-1650)

  • 통정대부를 지낸 문신
  • 선조 39년(1606) 과거 급제

조견소(1611-1677)

  • 금구현령을 지낸 후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

조성복(1681-1723)

  • 대사간을 지냈으나 정치적 박해로 유배 중 사망

이러한 문화재와 유적들은 풍양 조씨의 역사적 발자취와 문화적 유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물로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풍양 趙氏 집성촌 및 족보관리 현황

주요 집성촌

경상북도 상주 지역

  • 낙동면 승곡리 : 풍양 조씨 호군공파의 대표적 집성촌
  • 낙동면 운평리 : 입향조 조사충의 피신지로 시작된 세거지

기타 지역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일원
  • 강원도 양구군 일원
  •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일원
  • 전북 옥구군 미면 신관리

종친회 활동

주요 조직

  • 풍육회 : 장학금 지급 등 후진 양성 사업 수행
  • 대종중 : 선조 묘소 및 유적지 정화사업 주도

주요 활동

  • 시조묘 관리 및 세일제 봉행
  • 종보 및 족보 발간
  • 문중 문화재 보존 관리

족보 관리 현황

족보 판목 보관

  • 소재지 : 상주시 남장동 보각(譜閣)
  • 보유 현황 : 총 934판 중 674장 현존
  • 주요 판목
    - 신해보(1731년)
    - 경진보(1760년)
    - 병술보(1826년)

보각 시설

  • 규모 : 앞면 3칸, 옆면 1.5칸의 맞배지붕 건물
  • 시설 : 통풍, 채광, 배열, 소독 등 보존시설 구비

현재 풍양 조씨는 2015년 기준 124,26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종친회를 중심으로 문중의 결속과 전통 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풍양 趙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소개

풍양 조씨의 현대적 활동과 미래 지향적 노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종친회 활동

풍육회 운영

  • 장학 사업을 통한 후진 양성
  • 문중 인재 발굴 및 육성
  • 종친 간 유대 강화를 위한 각종 행사 개최

대종회 주요 사업

  • 선조 묘소 및 유적지 정화사업 추진
  • 종보 발간을 통한 종친 간 소통 강화
  • 족보 발간 및 디지털화 작업

문화재 보존 활동

현성암 관리

  • 시조 조맹과 관련된 천마산 현성암 보존
  • 역사적 유적지 관리 및 정비

종친회의 현대화 노력

디지털 전환

  • 족보의 전산화 작업 추진
  • 종친회 홈페이지 운영
  • SNS를 통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

문화 계승 활동

  • 전통문화 계승 프로그램 운영
  • 청년회 활성화를 통한 세대 간 소통
  • 종친회 행사의 현대화

사회공헌 활동

  • 장학재단 운영을 통한 인재 양성
  • 문화재 보존 및 관리를 통한 문화유산 계승
  • 종친회 차원의 사회봉사 활동 전개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풍양 조씨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접목시켜 종친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결론

풍양 조씨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3계 5파로 이어지는 종파 체계와 체계적인 항렬 운영, 그리고 문화재와 유적지 보존을 통해 가문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현재는 종친회를 중심으로 전통문화 계승과 함께 디지털화, 장학사업, 사회공헌 활동 등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통해 가문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풍양 조씨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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