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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 왕건의 후예, 개성 왕씨의 역사와 현재

aulir 2024. 11. 15.

개성 왕씨(王氏)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왕실 성씨로, 중요한 왕족 가문 중 하나입니다. 474년간 고려 왕조를 이끌었던 개성 왕씨는 조선 건국 이후 큰 시련을 겪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문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개성 왕씨의 발자취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성 왕씨의 기원

개성 왕씨의 기원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성 왕씨 관련 이미지
개성 왕씨 관련 이미지

시조와 기원

개성 왕씨는 고려 왕족의 본관으로, 공식적인 시조는 왕국조(王國祖)입니다. 왕건의 가문은 원래 송악의 호족 출신으로, 고구려계 혈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건의 증조모인 정화왕후 강씨는 고구려계 신라인 강충의 증손녀였습니다.

왕씨 성의 사용

왕씨 성의 사용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 《편년통록》과 《편년강목》에서는 세조 용건 또는 태조 왕건 때부터 왕씨 성을 사용했다고 기록
  • 이제현의 기록에 따르면 시조 국조 때부터 이미 왕씨 성을 사용

조선시대의 탄압과 변화

조선 건국 이후 개성 왕씨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1. 태조 3년에 공양군 왕요와 폐세자 왕석을 포함한 135명의 유력 왕씨가 살해되었습니다.
  2. 많은 왕씨들이 생존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택했습니다.
  • 성씨를 田, 全, 玉, 車, 申 등으로 변경
  • 외가의 성씨로 개성
  • 중국, 대만 등 해외로 이주

복권과 회복

왕씨 가문의 복권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1. 효종 때 선양에서 왕이문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왕씨 성 사용 금지가 해제되기 시작했습니다.
  2. 정조 때 전국의 왕씨들을 찾아 본관을 개성으로 정해주었습니다.
  3. 1789년에는 가전기록을 바탕으로 《왕씨 세보》가 편찬되었습니다.

현재 개성 왕씨의 인구는 2015년 기준 22,452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희성(稀姓)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조선시대 왕씨가 탄압받은 이유 상세 설명

고려 왕씨가 조선 초기에 탄압받은 주요 이유와 과정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정치적 위협 요인

개성 왕씨는 고려 474년간의 국성(國姓)으로서, 조선 건국 초기에 새 왕조의 안정에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탄압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정적 사건, 박위의 점괘 사건

태조 3년에 발생한 중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동래현령 김가행과 염장관 박중질이 점쟁이에게 태조와 공양왕의 운세를 비교하고 왕씨들 중 누구의 운세가 좋은지 물어보는 역모 행위를 했습니다.
  • 이 사건에 참찬문하부사 박위가 연루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탄압의 진행 과정

1. 초기에는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 태조 2년에는 거제도에 있던 왕씨 일족의 육지 출입을 허용했습니다.
  • 재능 있는 왕씨의 관직 등용도 허락했습니다.

2. 그러나 박위의 점괘 사건 이후 강경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대간과 형조가 12차례나 왕씨 제거를 요청했습니다.
  • 결국 공양군과 그의 두 아들이 교살되었습니다.
  • 강화와 거제에 있던 왕씨 일족 다수가 처형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대응

살아남은 왕씨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 외가의 성씨로 개성
  • 이씨, 유씨 등 다른 성씨로 改姓
  • 일부는 공을 세워 사성받은 경우 원래 성으로 복귀

개성 王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개성 왕씨의 시대별 주요 인물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주요 인물

태조 왕건과 왕실(34명의 왕 전부)

  • 태조 왕건 :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개국 군주
  • 광종 : 혁신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한 제4대 왕
  • 성종 : 귀족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왕
  • 문종 :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왕
  • 공민왕 : 자주적인 독립국가 위상을 추구한 개혁군주

조선시대 주요 인물

초기

  • 왕방연 : 단종에게 사약을 전달한 의금부 도사로, 당시 왕씨 중 최고위직 역임
  • 왕희걸 : 문중 최초의 문과급제자이자 홍문관 부제학을 지냄, 퇴계 이황과 교분이 있었음
  • 왕의성 : 선조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좌승지에 추대

후기

  • 왕미 : 교서감을 지내며 18세기 정조 때 정치권에 진출
  • 왕경석 : 고종 시대 판서를 역임
  • 왕정양 : 고종 때 동부승지를 지낸 정치인

근현대 주요 인물

  • 왕재일 : 대한제국 말기 독립운동가로 성진회를 조직해 광복운동 전개
  • 왕철수 : 충북 미술의 대중화를 이룬 화백
  • 왕종학 : 전 충북도 농무과장
  • 왕상은 : 전 민정당 국회의원

이처럼 개성 왕씨는 조선 초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별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는 정치,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가문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개성 王氏의 과거 급제자 현황

개성 왕씨의 과거 급제자 현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 현황

조선시대 개성 왕씨의 과거 급제자는 총 35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험 종류별로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 문과 : 7명
  • 무과 : 1명
  • 생원진사시 : 26명
  • 의과 : 1명

주요 급제자와 관직

문과 급제자

  • 왕희걸 : 문중 최초의 문과급제자로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했으며, 퇴계 이황과 교분이 있었음
  • 왕의성 : 선조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좌승지에 추대

무과 급제자

  • 왕경조(王景祖) : 1547년 한성 출신으로 1572년 무과에 급제

시대별 관직 진출

조선 전기

  • 왕방연 : 의금부 도사를 지냄
  • 왕미 : 교서감을 지내며 정치권에 진출

조선 후기

  • 왕경석 : 고종 시대 판서 역임
  • 왕정양 : 고종 때 동부승지를 지낸 정치인

이처럼 개성 王氏는 조선 초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문과와 무과를 통해 꾸준히 관직에 진출했으며,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 많은 인물들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개성 王氏 주요 분파

주요 분파

개성 왕씨는 다음과 같은 5개의 주요 분파가 있습니다.

동양군파

  • 파조 : 태조 왕건의 15번째 아들 효은태자 왕원(王垣)
  • 현존하는 개성 왕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분파

양양공파

  • 파조 : 신종의 둘째 아들 왕서(王恕)
  • 개성과 해주 지역에 주로 세거

안경공파

  • 파조 : 고려 고종의 둘째 아들 왕창(王滄)
  • 중앙 관직에 많이 진출

시중공파

  • 파조 : 충정왕의 맏아들 왕제(王濟)
  •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분파

평양공파

  • 파조 : 현종의 넷째 아들 왕기(王基)
  • 논산, 은진, 김제, 익산, 여산 등지에 집성촌 형성

세거지 분포

개성 왕씨의 주요 세거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태인, 정읍, 남원, 천변, 문척, 인관
  • 하동, 양주, 과천, 인천, 후인, 남양
  • 장단, 산청, 예산, 상주, 예천
  • 의령, 울산, 거창, 함열 등

현대 분포

2000년 인구주택 총 조사 기준,

  • 총 6,148가구
  • 전체 인구 19,808명
  • 전북과 경남 지역에 특히 많이 분포

이러한 분파들은 조선시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서 꾸준히 가문을 이어왔으며, 현재까지도 종친회를 통해 활발한 종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성 王氏 항렬표

개성 王氏의 대동항렬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항렬표

1-4 元(원) 17-20 命(명) 33-36 洪(홍)
5-8 德(덕) 21-24 興(흥) 37-40 泰(태)
9-12 仁(인) 25-28 顯(현) 41-44 鎭(진)
13-16 義(의) 29-32 光(광) 45-48 成(성)

주요 특징

  • 4자씩 돌아가며 사용하는 윤회 항렬법을 채택
  • 한자의 의미가 모두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글자들로 구성
  • 개성 왕씨의 주요 분파인 동양군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렬표

사용 방법

  • 항렬자는 4대를 기준으로 순환
  • 같은 항렬자를 쓰는 친족은 같은 세대로 간주
  • 항렬자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로 사용

이 항렬표는 조선 후기 정조 때 왕씨 세보가 편찬되면서 정립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개성 왕씨 문중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성 王氏 종친회 활동 및 족보관리 상황

개성 王氏의 종친회 활동과 족보 관리 현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앙종친회 활동

주요 활동

  • 개성 왕씨 중앙종친회가 종친 활동의 중심 역할 수행
  • 숭의전 춘계대제와 추계대제를 매년 정기적으로 봉행
  •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의 사적 제223호 숭의전 관리

숭의전 관리

  • 조선 태조 때부터 고려 7왕과 16충신을 제사지내는 곳
  •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70년대에 왕씨 후손들이 복구
  • 매년 봄·가을 대제를 봉행하며, 가을에는 고려문화제와 함께 진행

족보 관리

족보 편찬 역사

  • 1789년 가전기록을 바탕으로 《왕씨 세보》를 편찬
  • 정조 때 전국의 왕씨들을 찾아 본관을 개성으로 정리

현대 족보 관리

  • 중앙종친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족보 관리 시스템 운영
  • 5개 주요 분파별로 독자적인 족보 관리도 병행

주요 종친회 활동

지역 종친회

  • 부산 용호동 문중회관에서 선조 9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10월 제향 봉행
  • 각 지역별 종친회가 독자적인 종친 활동 전개

종친회 운영

  • 왕상은 회장이 25년간 중앙종친회를 이끌며 종친회 발전에 기여
  • 포용적 리더십으로 종친 간의 화합과 친목 도모

개성 王氏 관련 문화재 및 유적지

개성 王氏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숭의전(崇義殿)

  • 위치: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 지정: 사적 제223호
  • 특징
    - 조선 태조 때 건립한 고려 왕실 제사 공간
    - 고려 7왕과 16충신을 제사지내는 곳
    - 매년 봄·가을 대제를 봉행

왕건왕릉

  • 위치: 개성시 해선리
  • 특징
    - 943년 최초 조성, 1994년 대대적 개건
    -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무덤칸 벽화에 청룡, 백호, 현무 등 사신도 존재

만월대(滿月臺)

  • 위치: 개성시 송악동
  • 지정: 북한 국보유적 제122호
  • 특징
    - 919년 창건된 고려 왕조의 정궁
    - 회경전, 장화전, 원덕전 등 주요 건물터 현존
    - 2007년부터 남북공동발굴조사 진행

공민왕릉(현릉과 정릉)

  • 위치: 개성시 해선리
  • 지정: 북한 국보유적 제123호
  • 특징
    - 고려 제31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능
    - 조선왕릉의 기본이 된 고려말 왕릉 양식 대표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북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남한에서는 숭의전을 통해 개성 왕씨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성 王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개성 王氏의 현대적 활동과 미래 지향적 노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존 활동

숭의전 관리와 제향

  •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의 사적 제223호 숭의전을 중심으로 문화유산 보존 활동 전개
  •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대제를 봉행
  • 특히 가을에는 고려문화제와 연계하여 일반 대중에게도 개방

종친회 활동 강화

중앙종친회 운영

  • 왕윤국 회장이 종친회를 체계화하고 기반을 다짐
  • 왕상은 회장이 25년간 사비를 들여 종친회 운영과 발전에 기여
  • 포용적 리더십으로 종친 간의 화합과 친목 도모

역사문화 계승사업

문화재 관리와 복원

  • 1970년대 숭의전 정전 복구 주도
  • 배신청, 이안청, 삼문 등 문화재 신축에 참여
  • 고려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세계문화유산 등재 협력

왕건왕릉 보존

  • 개성 왕건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협력
  • 족보와 옥새 등 귀중한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지역사회 공헌

인재 양성과 사회활동

  •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인재 배출
  • 공직자, 기업인, 예술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종친회 활동 전개

이러한 활동들은 고려 왕조의 후예로서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론

개성 王氏는 고려 왕조의 국성(國姓)으로서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탄압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정체성과 전통을 꿋꿋이 지켜왔으며, 현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숭의전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 보존과 계승 활동, 종친회를 통한 화합과 발전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 왕실의 후예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개성 王氏의 노력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개성 왕씨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발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개성 왕씨의 역사와 현재는 단순한 한 성씨의 이야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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