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임씨(平澤 林氏)의 역사와 현황
평택 임씨는 중국 은나라의 충신 비간의 후손으로, 그의 아들이 장림산에서 은거하며 임(林)씨 성을 사용하게 된 것이 시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 한림학사 임팔급이 870년경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에 정착한 이후, 전객령계와 충정공계의 두 계파로 나뉘어 발전해 왔습니다.
평택 임씨 기원과 발전 과정
시조와 유래
평택 임씨의 태시조는 중국 은나라의 충신 비간(比干)입니다. 비간의 아들 견(堅)이 아버지가 주왕에게 살해당한 후 장림산(長林山)에 은거하면서 수풀 임(林)자를 성씨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평택 林氏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입니다. 그는 당나라에서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냈으나, 870년경 정치적 박해를 피해 7명의 학사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현재의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정착했습니다.
계보 구성
평택 林氏는 크게 두 개의 계통으로 나뉩니다 :
평택 林氏가 수풀림(林)을 쓰는 이유
평택 林氏가 수풀 임(林)자를 쓰게 된 것은 중국 은나라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숙부이자 충신이었던 비간(比干)이 주왕의 폭정을 직간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비간의 부인 진씨는 장림산(長林山)으로 피신하여 아들 천(堅)을 낳았습니다.
후에 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되자, 주나라 무왕은 비간의 아들 천을 찾아내어 그에게 임(林)이라는 성씨와 견(堅)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장림산(長林山)에서 은거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임씨 성은 후대에 평택 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하면서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 평택 林氏가 수풀 임(林)자를 쓰게 된 근원이 되었습니다.
평택 林氏의 시대별 주요 인물
고려시대 주요 인물
- 임세춘 : 고려 말 세자전객령 겸 연희궁부사를 지냈으며, 전객령계의 중시조
- 임언수 : 문하시중 평장사, 평성부원군을 지냈으며, 충정공계의 중시조. 시호는 충정
- 임재 : 예의판서와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
- 임견미 : 홍건적의 난 때 왕을 호종하여 1등공신이 되었고, 문하시중까지 올랐음
조선시대 주요 인물
- 임정 : 예조판서, 병마절도사, 평양부윤을 지냈으며 성종 때 청백리에 선정됨
- 임경업 : 1624년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진무원종공신에 녹훈. 병자호란 때 항청활동을 펼침
- 임향수 : 부제학까지 올랐으나 을사사화로 제주목사로 좌천된 후 사사됨
- 임병찬 :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거문도에 유배되어 1916년 단식 자결한 독립운동가
현대 인물
많은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들이 평택 임씨의 후손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명단은 생략하겠습니다.
평택 林氏 과거 급제자 현황
평택 林氏의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현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 급제자 총계
조선시대 동안 평택 임씨는 총 9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세부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문과 : 19명
- 무과 : 20명 (일부 기록에는 53명으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 사마시 : 52명
무과 급제자 특징
평택 林氏는 조선시대 전체 성씨 중 무과 급제자 순위에서 95위를 기록했으며, 총 56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무과 급제자들은 대부분 병과(丙科)로 합격했으며, 일부는 을과(乙科)에도 진출했습니다.
주요 급제자
특히 주목할 만한 급제자로는,
- 임득열 : 인조 5년(1627) 문과 정시 갑과 장원급제
- 임덕제 : 영조 37년(1761) 문과 정시 병과 급제
- 임길수 : 선조 13년(1580) 문과 별시 병과 급제
이러한 과거 급제자들의 배출은 평택 임씨가 조선시대 문무 양면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음을 보여줍니다.
평택 林氏 주요 종파와 대동항렬표
평택 임씨의 주요 종파와 항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요 종파
평택 임씨는 크게 두 개의 대종파로 나뉩니다.
- 전객령계 : 고려 말 세자전객령 겸 연희궁부사를 지낸 임세춘을 일세조로 하는 계파
- 충정공계 : 고려 말 평성부원군 임언수를 일세조로 하는 계파
세부 종파
전객령계는 다음과 같은 파로 구분됩니다.
- 참판공파
- 판서공파
- 승지공파
- 병사공파
- 정랑공파
- 전적공파
- 갈곡공파
대동항렬표
전객령공파의 항렬은 다음과 같습니다.
21세 | 순(淳) |
22세 | 식(植) |
23세 | 병(炳) 희(熙) |
24세 | 규(奎) 규(圭) |
25세 | 종(鍾) 석(錫) |
26세 | 호(浩) 수(洙) |
27세 | 동(東) 상(相) |
28세 | 섭(燮) 열(烈) |
29세 | 배(培) 경(坰) |
30세 | 진(鎭) 호(鎬) |
31세 | 태(泰) 철(澈) |
32세 | 모(模) 근(根) |
33세 | 형(炯) 경(炅)[6] |
평택 林氏 집성촌과 종친회 조직
평택 임씨의 집성촌과 종친회 현황을 다음과 같습니다.
주요 집성촌
평택 임씨의 주요 집성촌은 다음과 같습니다 :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 전라남도 나주시
-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 충청남도 부여군과 아산시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옥산리
- 경상북도 문경시 공평동 임촌
- 경상북도 청도군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종친회 조직
평택 임씨는 크게 두 개의 주요 종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충정공계
- 향선재(享先齋) 대종회를 중심으로 운영
- 현재 14대 대종회장 체제로 운영 중
2. 전객령계
- 전객령공파 종친회를 중심으로 운영
족보 관리
평택 임씨의 족보 관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디지털화 추진 : 현재 인터넷 족보 구축을 진행 중이며, 검색과 수시 수정·보완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
- 족보 정비 : 1997년 전국임씨중앙회를 구성하여 다음과 같은 계보 정립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 임팔급의 중국 상계
- 임팔급에서 7세손 몽주까지의 계대
- 몽주에서 세춘과 언수까지의 계대
현대 종친회 활동
현재 종친회는 다음과 같은 주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향선재 건물과 정려의 나주시 향토문화자원 지정 추진
- 종토(宗土) 정리 및 수익 극대화 방안 모색
- 세림장학금(世林獎學金) 운영을 통한 후손 교육 지원
평택 林氏 관련 유적지
평택 임씨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농성(農城)
- 위치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 지정 : 경기도 기념물 제74호 (1981년 7월 16일)
- 특징
- 타원형의 토성으로 둘레 약 300m, 높이 4m의 규모
- 동쪽과 서쪽에 문터가 있으며, 붉은색 찰흙을 층층이 다져 쌓은 흔적이 남아있음
- 평택 임씨의 시조 임팔급이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이 전해짐
청양 평택임씨 재실
- 위치 :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산당로
-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2011년 7월 20일)
- 특징
- 1800년대 전후의 전형적인 재실 건물
- 안채, 아래채, 문간채, 헛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
- 안채와 문간채의 부엌 상부에 제기와 음식을 보관하던 다락공간이 있음
청양 임찬주가옥
- 위치 :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기덕리
- 특징
- 1900년대 초 건립된 것으로 추정
- '삼전고택'이라고도 불림
- 안채, 사랑채, 곳간채 등 전통 양식이 잘 보존됨
이러한 문화재들은 평택 임씨의 역사적 발자취와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들입니다.
평택 林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평택 임씨의 미래 지향적 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종친회 현대화 사업
- 디지털 족보 구축
- 1997년 전국임씨중앙회를 구성하여 체계적인 족보 정리 작업 진행
- 인터넷 족보 시스템 구축을 통해 수시 수정·보완이 가능한 디지털 족보 관리 체계 도입
문화유산 보존 사업
1. 문화재 지정 및 관리
- 청양 평택임씨 재실의 문화재자료 지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농성(경기도 기념물 제74호) 보존 관리
2. 종친회 시설 현대화
- 재실과 종친회관의 현대적 시설 보강
- 제례 및 종친회 행사의 현대화 추진
교육 및 장학 사업
- 세림장학금(世林獎學金) 운영을 통한 후손 교육 지원
- 종친회 차원의 교육프로그램 운영
종친회 조직 혁신
- 전국임씨중앙회를 통한 체계적인 종친회 운영
- 젊은 세대의 종친회 참여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 종토(宗土) 관리의 효율화 및 수익 극대화 방안 모색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평택 林氏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결론
평택 林氏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문무 양면의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한국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9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특히 임경업 장군과 같은 명장을 배출하여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현재는 디지털 족보 구축, 문화재 보존, 장학사업 등 다양한 현대화 사업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평택 임씨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임을 보여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