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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황씨, 천년을 이어온 명문가의 이야기

aulir 2024. 10. 9.

우리나라의 성씨 문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창원 황씨(黃氏)는 우리나라의 주요 성씨 중 하나로,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명문가입니다. 오늘은 창원 황씨의 역사, 주요 인물,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창원 황씨의 유래와 역사

창원 황씨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의창 황씨와 회원 황씨로 나뉘어 있던 이 성씨는 1408년(조선 태종 8년)에 의창과 회원이 창원으로 통합되면서 창원 黃氏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창원 황씨 관련 재미있는 이미지
창원 황씨 관련 재미있는 이미지

창원 黃氏는 크게 3개의 주요 계파로 나뉩니다.

1. 공희공파(恭僖公派) :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며, 본래 회원 황씨(檜原 黃氏)였습니다. '당황(唐黃)'으로도 불립니다.
2. 시중공파(侍中公派) :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며, 본래 의창 황씨(義昌 黃氏)였습니다. '토황(土黃)'으로도 불립니다.
3. 호장공파(戶長公派) :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며, 고려시대 창원에서 호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세 계파는 각각 별도의 족보를 편찬하고 있어,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창원이라는 공통된 근원지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 시대를 거치며 많은 명망 있는 인물들을 배출하여 창원 黃氏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2. 창원 黃氏의 주요 인물들

창원 黃氏는 역사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시대별로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려 시대

- 황석기 : 공희공파의 시조로, 충혜왕 때 회산군에 봉해지고 문하평장사에 올랐습니다.
- 황충준 : 시중공파의 시조로, 충렬왕 때 문하부판문하시중을 역임했습니다.
- 황양충 : 호장공파의 시조로, 창원에서 호장을 역임했습니다.

조선 초기

- 황상 : 황석기의 아들로, 문하찬성사와 서강도원수 등을 지냈습니다.
- 황거정 : 조선 개국공신으로, 좌군도총제에 올랐습니다.

조선 중기

- 황형 : 공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 황기 : 직제학, 대사간, 도승지, 경기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 황신 : 1588년 문과 장원 급제 후 공조판서, 호조판서를 역임하고 회원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 황사우 : 중종 때 별시문과 갑과에 급제하고, 호조·예조·이조의 판서와 우찬성을 역임했습니다.
- 황림 : 1590년 광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의성군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조선 후기

- 황흠 : 숙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 황자 :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청나라에 다녀와 '갑인연행록' 등을 저술했습니다.
- 황인검 : 형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 황인점 : 영조의 딸 화유옹주와 결혼하여 창성위에 봉해졌습니다.
- 황사영 : 신유박해 때 순교한 백서사건의 주인공으로,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근현대

- 황인성 :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 황성수, 황명수 :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 황학수 :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냈습니다.
- 황우여 : 정치인으로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 황창규 : 기업인으로 KT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 황교안 : 정치인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 황희찬 : 현재 활동 중인 축구선수로,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원 황씨는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이는 창원 黃氏가 우리나라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창원 黃氏의 계파와 본관

창원 黃氏는 앞서 언급한 3개의 주요 계파 외에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또한, 황씨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창원이 아닌 다른 본관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주요 본관

1. 창원 황씨(昌原黃氏) : 가장 큰 본관으로, 약 27만 명의 인구를 가집니다.
2. 장수 황씨(長水黃氏) : 두 번째로 큰 본관으로, 약 17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3. 평해 황씨(平海黃氏) : 세 번째로 큰 본관으로, 약 16만 명 정도의 인구입니다. 

이 세 본관이 황씨의 3대 메이저 본관으로, 전체 황씨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기타 본관

4. 우주 황씨(紆州黃氏)
5. 회덕 황씨(懷德黃氏)
6. 항주 황씨(杭州黃氏) : 중국계 황씨입니다.

이 밖에도 덕산, 상주, 남원, 제안, 황주 등의 소규모 본관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위의 3대 메이저 본관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덕산, 상주, 회덕 황씨는 평해 계열로, 남원, 우주 황씨는 장수 계열로, 제안, 황주 황씨는 창원 계열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4. 창원 黃氏의 현재

2015년 기준으로 창원 黃氏의 인구는 약 271,986명으로, 우리나라의 성씨 중 상위권에 속합니다. 이는 창원 黃氏가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원 黃氏의 주요 집성촌으로는 다음과 같은 지역들이 있습니다 :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하점면

이러한 집성촌들은 창원 黃氏의 역사적 뿌리와 현재의 분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특히, 창원 황씨는 주로 영남 남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경향이 있어,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창원 黃氏의 특징과 업적

창원 黃氏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78명, 공신 2명, 상신 1명을 배출하는 등 문무 양면에서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성씨입니다. 이는 창원 黃氏가 조선 시대 동안 학문과 정치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창원 黃氏는 한국의 역사적 변화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조선 건국 시기의 황거정,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의 황사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황학수, 그리고 현대의 정치인과 기업인들까지, 창원 黃氏는 한국 역사의 주요 국면마다 중요한 인물들을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6. 창원 黃氏와 다른 성씨와의 관계

창원 黃氏는 다른 여러 성씨 및 본관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성씨 문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의창 황씨와 회원 황씨 : 이들은 창원 黃氏의 전신으로, 1408년에 창원으로 통합되면서 창원 黃氏가 되었습니다.

2. 제안 황씨 : 황석기의 5세손인 황을구가 태종 때 제안군에 봉해지면서 창원 黃氏에서 분적되었습니다.

3. 회덕 황씨와 황주 황씨 : 이들도 창원 黃氏에서 분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4. 장수 황씨와 평해 황씨 : 이들은 창원 黃氏와 같은 도시조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황씨의 도시조인 황락의 세 아들이 각각 창원, 장수, 평해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5. 우주 황씨와 남원 황씨 : 이들은 장수 황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6. 상주 황씨와 덕산 황씨 : 이들은 평해 황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대부분 역사적 전승이나 족보 기록에 기반하고 있으며, 일부는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창원 황씨는 여러 계파로 나뉘어 있고, 다른 본관의 황씨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정확한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7. 결론 : 천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창원 黃氏

창원 黃氏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걸어온 명문가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그들의 역사는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 긴 역사 속에서 창원 黃氏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문과 급제자들, 독립운동가, 현대의 정치인과 기업인들까지, 창원 黃氏는 각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들을 꾸준히 배출해왔습니다.

창원 黃氏의 역사는 우리의 성씨 문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여러 계파로 나뉘어 있고, 다른 본관의 황씨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창원 黃氏의 모습은 한국의 가문 문화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27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창원 黃氏는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요 집성촌을 중심으로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창원 黃氏 후손들은 선조들의 명예로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창원 黃氏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가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창원 黃氏는 한국 역사의 주요 국면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창원 黃氏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들을 계속해서 배출할 것입니다.

끝으로, 창원 황씨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가문의 전통과 역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개인이 속한 가문의 역사와 전통 또한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창원 황씨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찬란한 가문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동시에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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