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밀착행정을 보는 경찰의 시각
주민 밀착행정을 보는 경찰의 시각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아홉 번째 이야기]
강원도에는 산이 많다. 광활한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다. 면사무소에서 군청까지 가려면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40여 분이나 걸린다. 지휘부에 보고할 사항은 휴대폰 메시지만큼 편리한 게 없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그 메시지 내용을 털었다. 후에 검찰에선 군수에게 보낸 메시지는 업무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의심은 곧 혐의
경찰 지능팀장은 각종 사업 추진 경위를 물었다. 추형오(가명)는 '면장이 먼저 업자를 불러 사업을 시키고, 후에 그에게 알려주는 바람에 서류를 소급 작성해 지출했다'고 진술했었다. 면장 직권 남용으로 고발했던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진술을 들은 경찰이 '직권남용'을 적용했다는 표현이 옳다.
추형오의 말을 조건 없이 맹신한 경찰은 '현 군수가 당선을 위해 각종 사업을 면장에게 시켰다'고 결론지은 듯했다. 추형오는 본인의 나태로 소급해 서류를 만들었던 것을 모두 면장의 사후 지시라고 진술했었다.
팀장은 갑자기 ㄹ업체를 언급했다. 그 업체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어주고 뒷돈을 받지 않았느냐는 말투였다. 종종 일 잘하는 업체들도 눈에 띈다. 반복적으로 일을 시키다 보니 그런 오해도 받을 만했다. ㄹ업자도 추형오가 등장시킨 케이스다. 얼마 후 ㄹ업체 대표는 내게 '추형오에게 수시로 술을 사주고 돈도 줬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비를 제때 집행해 주지 않아서'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경찰은 '면장이 독단으로 업자를 불러 사업을 시킨 후, 담당자인 추형오에게 지시한 것은 면장의 직권남용'이라고 결론 내린 듯했다. ㄹ업자 진술 따윈 필요치 않았다. 경찰의 의심은 곧 혐의였다.
경찰의 목표는 군수?
경찰이 대체 압수수색에서 뭘 털어냈는지 궁금했다. 휴대폰 메시지가 핵심인 듯했다. 그들은 내가 군수에게 보낸 메시지와 군수 답변에서 '선거법 위반'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2015년 남성면장 부임 후, 거의 매일 군수에게 휴대폰 메시지로 현황을 보고했다. 남성면과 군청 거리는 40여 km에 이른다. 대면보고 후 출근은 현실에 맞지 않았다. 전화 보고 또한 번거로울 수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문자 보고였다.
3년여 기간, 군수에게 어떤 내용을 보냈는지 기억날 리 없다. 용케도 지능팀장은 몇 건을 찾아, 내게 읽어주는 형식으로 사실을 확인했다. 오해를 살 만한 내용도 꽤 되는 듯싶었다. 사실 면장이 놀지 않는다는 걸 군수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확대 포장한 문자 보고도 있을 수 있다. 3년간 매일 면 동향을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군수에게 보고했었다. 답 메시지를 받고자 함이 아니다. 보내는 게 목적이었다.
경찰이 노렸던 것이 이 대목이었다. 애초 목표는 내가 아니었다. 군수를 잡는 것이 그들 목적이었던 것이다. 내 휴대폰을 털면-압수수색을 하면-군수와 연계성이 드러날 테고 뭔가 나올 거라 여겼다. 그것을 근거로 군수를 잡자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에 검찰은 '군수에게 보낸 메시지는 업무보고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일 9시 10분에 시작된 경찰 조사는 오후 3시 55분에 끝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간 것인데 무려 6시간 40여 분이나 걸렸다.
"걱정하지 마. 그 정도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거야."
지인들에게 내 스스로 유리한 부분만 설명해서일까, 다수는 그렇게 말했다. 추형오와 방 이장 진술에 대해 '거짓을 거짓이라' 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고, 군수에게 보낸 메시지와 밴드에 올렸던 글도 선거법에 저촉될 만한 내용은 기억나는 게 없으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조사과정 질문과 답변 내용을 떠올려 봐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주민 밀착행정
2018년 11월 14일. 추형오는 다시 한번 경찰로부터 출석 요청을 받았다. 지능팀장은 그에게 '남성면 사람들' 네이버 밴드에 관해 물었다.
"피의자인 면장이 '남성면 사람들' 밴드 개설자인가요?"
"개설자인지는 모르지만, 매일 밴드에 글을 올리는 것은 맞습니다."
"면장이 매일 밴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의도인지…."
면장으로 발령받은 후, 나는 매달 전체 직원회의를 열었었다. 신속과 친절, 실천행정을 강조했다. 밴드를 개설하게 된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농촌 마을 할머니 한 분이 20여 리 떨어진 면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걸어오시다 보니 2시간은 족히 걸렸을 겁니다.
"신청 지난 건 알고 있지만, 노인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아니, 시간 충분히 드렸잖아요. 이제 와서 그런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안 되니까 돌아가세요."
이 같은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할머니는 얼마나 힘이 빠지겠습니까? 힘없이 터덜터덜 두 시간 동안 오던 길을 걸어서 귀가하실 할머니 처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안 되는 거 맞습니다! 아니 규정상 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렇게 말해선 안 됩니다. "일단 돌아가 계세요. 제가 충분히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라고 했다면 그나마 할머니는 기대하고 가시게 됩니다.
"무조건 법령이나 규정이란 잣대를 들이대 '안 된다'고 하지 맙시다. 한 번쯤 대안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그래도 정 방법이 없거든 전화로 말씀드리지 말고 직접 찾아뵙고 정중히 말씀드리십시오. '다음번엔 제일 먼저 생각을 해드리겠다'란 말도 빼놓지 말아 주세요."」
직원 교육 중 했던 말이다.
추형오를 만났다
'정답고 소중한 이웃, 행복한 남성면'
당시 면사무소 앞에 걸렸던 구호였다. 이 글귀를 보고 행복을 느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정답고 소중한 이웃이 있어 행복하다'란 생각을 한 적 없다. 문구가 다분히 형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민들 마음에 와닿는 어떤 글귀가 없을까'란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한밤중, 잠결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 벌떡 일어나 메모했다. 그래서 바꾼 게 「남성면 공무원들은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란 구호였다.
"이 문구는 구호가 아니다, 주민들과 약속이다"란 말을 직원회의 때마다 강조했다.
직원들은 밴드나 주민 밀착행정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밴드에 올라오는 글은 면장이 수시로 모니터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추형오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지능팀장이 추형오에게 물었다.
"본건(압수수색) 이후 피의자인 면장이 진술인을 찾아온 적이 있나요?"
"2018년 11월 6일경, 면사무소에 찾아와서 전(前) 총무계장을 만나고 있었고, 면장이 저에게 '어떻게 됐냐?'고 묻기에, 저는 '공문서 위조로 조사를 받았어요'라고 하자, 다른 말 없이 가 버렸습니다."
2018년 7월, 나는 선거 종료 후 군청 관광과장으로 발령받았다. 11월이면 남성면장이 아닌 군청 과장 신분이다. 추형오가 언급한 11월 6일, 나는 남성면사무소 총무계장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았었다. 압수수색을 받은 다음 날이다.
사실 추형오에 관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왜 나를 모함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면사무소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와 마주쳤다.
"요새 경찰 조사받는 일 있다며? 별문제 없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네가 무슨 거짓말을 했기에 내가 압수수색을 받아야 했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왠지 참아야 할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저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어요."
뻔히 다 아는데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더 이상 긴 말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추형오는 경찰에서 '나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선 거짓말을 하진 않은 듯했다.
만약 그가 지능팀장 질문에 '면장이 와서 협박했다'는 식의 또 다른 거짓진술을 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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