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그림자, 구속 면하려면 3천만 원이 필요하다
구속영장 그림자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열한 번째 이야기]
구속영장.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은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한다. 검찰에서는 경찰이 작성한 내용에 대해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그대로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거짓으로 꾸몄다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앞이 캄캄했다. 변호사는 구속을 면하려면 3천만 원이 든다고 했다.
변호인 선임료가 6천만 원?
서울 교대 앞.
지인이 알려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법무법인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 '비싼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으나 상담하는 정도인데 큰돈 들겠나 싶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다양한 파티션이 보였다. 수십 명의 변호사들이 근무한다는 뜻이다. 돌아나갈까 하다 '알아보고 비싸면 그냥 가지 뭐'란 생각에 상담을 요청했다.
"지금 경찰서에 전화해서 검찰에 송치한 번호 좀 알려 달라고 하세요."
사무장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은 먼저 경찰서에 전화해 보라고 했다.
검찰에 송치했다면 그 번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기보다 싫은 경찰서 전화 걸기.
어쩔 수 없다.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변호사를 선임했다니까 말씀드리는데 면장님 구속영장 청구됐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구속영장이라니!'
사무장은 최대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더니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이내 돌아왔다.
"알아봤는데 상황이 지금 상당히 안 좋게 됐습니다. 진즉 찾아오셨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방법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멘붕에 빠졌다. 세상이 무너져 버린 듯, 혼나간 미친 인간 같은 멍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사무장은 "이런 분야에선 우리가 전문입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서류를 내밀었다.
6천만 원!
불구속을 끌어내면 3천만 원, 변호사 선임료 3천만 원.
변호사 선임하는 데 많아야 몇백만 원이면 될 줄 알았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돈을 빌려서라도) 계좌입금을 부탁했다. 이후 서울에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구속영장 그림자, 하마터면 체포될 뻔했다
"내일 나도 같이 변호사 사무실에 가야겠다."
아내 말에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이 느껴졌다.
다음 날, 변호인이 일러준 대로 근무상황부, 인사기록카드 등을 준비해 서울로 향했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아내는 집에 있으란 권유에도 굳이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이 이는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늘 사무실에 나갈 정도로 성실히 일만 했는데, 대체 이게 뭐예요!"
아내는 마치 변호인에게 잘못이 있는 양 따졌다. 변호인은 젊은 여성이었다. 로스쿨 출신인 듯했다.
사실 법무법인이란 간판만 그럴싸하지, 실제 현장업무는 '새끼 변호사'라 칭하는 젊은 변호인들이 맡는다는 것도 알았다.
변호인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심적 여유가 있을 때 해볼 일이다.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을 변호인에게 맡겨야 했다.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찾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냥 체포 형식으로 수갑 채워 법원에서 실질심사를 받았을 겁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변호사 사무실을 찾지 않았고, 평상시처럼 출근했다면 직원들 보는 앞에서 체포되는 꼴을 당했을 거란다. 앞이 캄캄했다.
"변호사에겐 솔직하게 말씀하셔야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건 아시죠?"
아무리 설명해도 변호인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아랫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관을 거짓으로 고발한다? 변호인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경찰과 연락했는데, 11월 26일 아침 9시까지 일단 경찰서에 가셔서 수사관들과 같이 법원까지 오세요. 거기서 뵙죠."
내겐 경찰 신문조서나 사전 구속영장신청서, 아무것도 없다. 시간도 없다. 변호인은 오직 내 진술에 근거해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 대응 자료를 만드는 듯했다.
스님 말씀이 틀리길 바랐다
그렇게 4시간여 상담을 마치고 아내와 집으로 향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 됐다.
"걱정하지 마. 진실은 거짓을 이긴대!"
아내 말이 맞았으면 좋으련만, 모든 진실이 거짓을 이기진 못할지도 모른다는 참으로 재수 없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 스님이신 형님께서 '올해에 삼재가 들어오니 조심해야 할 거'란 말씀이 내 의식 한쪽에 자리했었나 보다. 자꾸 뭔가 불길한 예감만 들었다.
스님 말씀은 이랬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홉 수에 삼재가 들면 3년 뒤 나가는 일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 경우) 지독히 좋지 않다란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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