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나씨의 전통 계승과 미래를 향한 도약
금성 나씨(羅氏)는 전라남도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시조 나총례로부터 시작된 금성 나씨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금성 나씨의 유래와 특징
금성 나씨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씨입니다.
시조와 득성 유래
시조는 나총례(羅聰禮)로, 고려 정종 때 삼한벽상일등공신의 호를 받고 삼중대광보국숭록대부로서 금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나씨의 원류는 중국 축융의 후예로, 기원전 759년 주나라 평왕 때 라국에 봉해진 후손들이 성을 나씨로 삼은 것이 시초입니다.
본관의 변천
금성은 전라남도 나주의 옛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변천 과정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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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 발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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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 금산군/금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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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23년(940년) : 나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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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성종 2년(983년) : 나주목 설치
역사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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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시대 정묘년(1747년)에 무신흉변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 나주에서 금성으로 본관을 변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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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나총례의 아들 라은고가 자의대부로 금산군에 봉해진 이후, 11세손까지 3명의 대광과 4명의 부원군, 5명의 봉군을 배출한 명문가문입니다.
인구 현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성나씨는 남한에 51,966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금성 나씨와 나주 나씨의 차이점
금성 나씨와 나주 나씨는 같은 지역을 본관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시조를 가진 별개의 성씨입니다.
시조와 유래
금성 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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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나총례(羅聰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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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종 때 삼한벽상일등공신의 호를 받고 금성부원군에 봉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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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년 왕건이 금성 지역을 점령할 때 협조하여 공을 세움
나주 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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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나부(羅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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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중국에서 귀화한 것으로 전해짐
분관 사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 영조 시대에 무신흉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 나주 나씨들이 나주의 옛 이름인 금성으로 본관을 바꾸면서 금성 나씨와 나주 나씨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인구 현황
2015년 통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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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나씨 : 58,8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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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나씨 : 112,241명
금성 羅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나총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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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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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종 때 삼한벽상일등공신으로 금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에 기여하였으며, 후손들은 금성을 본관으로 하는 명문가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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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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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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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건조와 병기 제조에 기여한 무관으로, 임진왜란 동안 옥포해전, 한산도해전, 명량해전에 참가하였고 창선을 개발하여 조선 수군의 기동성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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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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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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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과 명종대에 문명을 떨쳤다. 두 차례 장원급제했으며, 권신 김안로의 전횡을 비판하다 유배되었다. 저서로 『송재선생유고』가 있다. 시호는 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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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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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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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시사, 전리좌랑,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 왕조에 충성을 지키며, 조선 건국 후 벼슬을 거절하였다. 저서로 『죽헌유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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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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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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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명경박사, 서해안 염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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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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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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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랑으로 시작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금양군에 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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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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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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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원수로 홍건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2등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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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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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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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벽상일등공신으로 금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금성 나씨의 후손들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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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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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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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대부로 예빈시 판관을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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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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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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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나씨 일원으로 금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고려 왕조에 기여한 공로로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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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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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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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대부로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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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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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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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나씨 시조 나총례의 후손으로 명문가로 성장하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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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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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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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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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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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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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 금성 羅氏의 주요 인물들을 참고했을 때,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특징을 분석해보면,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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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나총례부터 시작하여 고려 시대에 많은 공신과 관료를 배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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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0세손 나유는 여몽연합군의 전선 건조 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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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임진왜란 시기 거북선 설계와 제작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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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찬은 두 차례 장원급제하여 문명을 떨쳤습니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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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나총례부터 11세손까지 3명의 대광, 4명의 부원군, 5명의 봉군을 배출하여 명문가의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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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무신 계열의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금성 羅氏 과거 급제자 현황
금성 나씨의 과거 급제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과 급제자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3명을 배출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나세찬이 있습니다. 나세찬은 조선 중종과 명종대에 걸쳐 두 차례 장원급제하여 문명을 떨쳤고, 시호는 희민입니다.
사마시 급제자
사마시(司馬試) 급제자는 12명을 배출했습니다.
고려시대 급제자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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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효전 : 고려 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직학사를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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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득황 :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부사, 제주부사 겸 방호사를 지냈으며, 후에 금자광록대부, 사공상서, 좌복야, 판호부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특징
시조 나총례부터 11세손에 이르기까지 3명의 대광(정1품), 4명의 부원군, 5명의 봉군을 배출하여 명문가의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금성 羅氏 주요 분파 및 항렬표
금성 나씨의 분파와 항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요 분파
대표적인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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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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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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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은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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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리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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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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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례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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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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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공파
지역별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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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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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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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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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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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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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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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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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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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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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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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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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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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천파
항렬표 체계
25세~29세
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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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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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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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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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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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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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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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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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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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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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33세
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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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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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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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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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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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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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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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금성 나씨는 55개의 나씨 중에서 독자적인 계보를 가진 성씨로, 각 분파들은 지역적 특성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금성 羅氏 집성촌 및 족보 관리 현황
주요 집성촌
전라남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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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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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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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문평면 대도리
황해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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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군 동화면 매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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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군 동화면 매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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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군 용천면 용천리
족보 관리
봉강사(鳳岡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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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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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죽헌 나계종과 나문규를 배향하기 위해 금성나씨 문중에서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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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
현대 족보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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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羅氏 대종회에서 모바일 족보 시스템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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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전체 인구 58,838명의 족보 데이터 관리
인구 현황
연도별 인구 변화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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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0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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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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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9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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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9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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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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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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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羅氏 문화재 및 유적지
금성 羅氏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당 및 제각
봉강사(鳳岡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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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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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죽헌 나계종과 나문규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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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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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나씨의 종친회 모임 장소이자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
장성 금성나씨 삼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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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나통서, 효자 나봉서, 열녀 옥천 설씨와 공산 이씨의 충효열을 기리는 정려각
역사적 건축물
나대용 생가 및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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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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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
집성촌 유적
나주 문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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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리, 동원리, 대도리 등에 금성나씨 집성촌 형성
관련 문화재
나주 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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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나주목 객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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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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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객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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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년~1479년 사이 건립되어 여러 차례 중수
이러한 문화재들은 금성 나씨의 역사적 위상과 문화적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금성 羅氏 종친회 활동
금성 羅氏의 종친회 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종친회 활동
대종회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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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나씨대종회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종친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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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족보 시스템 구축 및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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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나씨총연합회 참여 및 협력 활동 전개
정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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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5월 첫째 주 토요일 시조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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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3월 1일 봉강사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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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 정기 모임 및 친목 도모 활동
문화재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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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사와 영수재 관리 및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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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 장군 생가 보존 및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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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묘와 경모사 관리
미래 지향적 활동
역사 문화 계승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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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골 복원 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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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관련 유적 발굴 및 고증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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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천평 규모의 부지 매입 진행
종친회 현대화
- 디지털 족보 시스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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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51,460명의 족보 데이터 전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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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 네트워크 강화 및 확대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금성 羅氏 종친회는 전통 계승과 현대화를 동시에 추구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결론
금성 羅氏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로서, 그 역사적 가치와 문화유산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금성 羅氏 대종회를 중심으로 전통문화 계승과 함께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현대화를 추진하며, 과거의 영광을 넘어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친회의 적극적인 활동과 문화재 보존 노력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발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성 나씨의 역사와 전통은 단순한 가문의 역사를 넘어, 한국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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