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진술과 선거법 위반 혐의
거짓 진술과 선거법 위반 혐의 [나는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다 – 세 번째 이야기]
물증 없는 피의자가 있을까? 있다. 수사기관에서는 2명이 비슷한 말을 하면 혐의를 둔다. 심증을 빌미로 압수수색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직 내부에서 어떤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2명이 짜고 거짓을 만들어 고발하면 엮어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황당하지 않은가!
"아빠, 저녁에 만나!"
딸아이의 아침 인사는 마치 출근하는 아빠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그래..."
작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난 오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인사는 간절함을 담은 기원이었을 것이다.
2018년 11월 26일 아침 9시, 경찰서 앞에는 '닭장차'라 부르는 봉고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범인 호송용 차량이다. 차량 내부에는 굵은 철망이 처져 있었다. 안에서 유리창을 열지 못하도록 한 장치 같았다.
경찰관 세 명이 차에 올랐다. 한 명은 운전석에, 나머지 두 명은 나를 중심으로 양옆에 앉았다. 범인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 같았다. 잠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일 전, 변호사와 상담을 하지 않았다면, 난 체포 형식으로 수갑을 찬 채 이 차에 올랐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사전구속 영장 심사를 받아야 하는 신분이었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니 싸락눈이라도 내릴 듯 을씨년스러웠다.
압수수색 이유, 선거법 위반 혐의
2018년 11월 5일. 평소와 같이 아침 8시 30분에 출근했었다. 9시를 조금 넘은 시각, 난데없이 4명의 낯선 남자들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 눈앞에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압수수색 영장'
무슨 혐의인지 묻기 전, 수사관은 내게 "2018년 6월 13일 열린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했다"라고 했다.
'뭔가 착오가 있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는 생각에 책상 서랍과 캐비닛, 컴퓨터, 휴대폰을 공개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다 털어보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두 명이 유사 증언을 했기에 증거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은 압수수색 이유를 말했다. 물증은 없다.
내가 면장 재직 시, 어떤 마을 이장과 면사무소 아무개 직원에게 '현(現) 군수를 찍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사관이 말한 추형오(가명)라는 남성면(가칭) 사무소 직원은 늘 문제가 많던 인물이었고, 방호석(가명) 이장은 선거 종료 후 선거법 위반으로 면 이장협의회장직에서 물러났던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공직 또는 지역사회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순간 '이들이 짜고 뭔가 조작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거는 없다.
두 사람의 진술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경찰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사관들은 내 업무용 노트와 컴퓨터 백업파일, 휴대폰을 가져갔다.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파리가 날면 그 날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것 같았다.
"지난 선거운동 기간에 내가 운동한 적 있나?"
"솔직히 마음으로만 지지했지, 공무원 선거운동? 말도 안 된다는 건 군수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일 군수와 나눴던 대화다. 공무원 생활 30년, 수십 번 선거를 치렀다. 선거법 위반 시 적용되는 처벌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내가 소속 직원에게 현 군수를 지지해 달라고 했다? 그것도 평소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직원에게?
방호석 이장은 또 어떤가. 선거 기간에 있었던 이장회의 시, 나는 이장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 금지 교육'을 했었다. 그랬던 내가 그에게 현 군수를 찍어 달라고 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거짓 진술, 양심선언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다음 날이었다. 압수한 자료를 근거로 조사해야 하니, 2018년 11월 13일 경찰서에 출두해 달라는 것이었다. 딱히 준비할 건 없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내가 압수수색을 당했는지 알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한 사람만 이런 말을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명이 비슷한 증언을 해서 수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서 지능팀장이 말했다. 같은 공직자로서 이런 상황을 패싱(passing)할 경우 '직무유기'라는 생각에 "잘하셨다"라고 했다. 팀장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2018년 9월 4일, 추형오라는 남성면사무소 공무원이 양심선언을 한다며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그 직원 진술을 간추려 보면,
1. (지방) 선거 임박 무렵, 현 군수가 선거를 위해 군수직을 일시 사퇴한 이후, (면장이) 더욱 심하게 지역 내 공사를 임의로 했다.
2. 틀림없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공사하는 것 같았으며, 지시하는 사람은 군수였다.
3. 2건의 공사는 군수가 면장에게 지시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면장실에 갔을 때 면장이 전화상으로 "네 알겠습니다, 군수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한 후 면장이 자신을 데리고 사업 현장을 다니면서 "A농로 포장과 B배수로 공사는 군수님이 지시한 것이니까, 바로 시행해"라고 말했다.
4. 약 10여 건 이상은 군수가 다 지시한 것이다.
5. 지방선거 전에 군수가 표를 의식해 지역 내 주민들에게 무료로 공사를 해 주었다.」
추형오의 진술은 시종일관 군수에 대한 허위와 거짓 일색이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아닌 군수를 표적으로 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현 군수에게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군수는 내가 면장으로 있던 남성면(가칭)이 읍내와 떨어진 험지라는 생각에 면사무소 직원들 진급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었다. 내 면장 재직 3년 중 계장 보직을 받은 사람이 무려 4명에 이른다. 면 단위에서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추형오는 2010년 3월 18일 지방 행정주사보(7급) 진급 이후, 2017년 7월 17일 지방행정 주사로 승진했다. 읍·면 공무원이 군청 직원들보다 빨리 진급한 경우다. 이 또한 흔치 않은 일이다. 이처럼 군수가 남성면사무소 직원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가 군수에게 불만을 느끼거나 모함할 이유는 없다. 군수 험담에 이어 그는 나에 대해 진술했다.
비상식적인 주장
"2018년 5월경, 면장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면장이 이미 완료된 ㄱ사업과 ㄴ사업에 대한 집행을 지시하기에 나는 '선 공사를 하고 후 결재를 하는 게 어디 있냐? 왜 나를 힘들게 하냐. 이제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하니까 면장이 '도와줘. 참아. 이번만 넘기면 돼. 이번 선거에서 군수가 재선 되면 너도 잘 될 거고, 나도 잘 될 거야. 그러니까 한번 해 보자'고 하여 제가 면장한테 '공무원이 왜 선거에 개입합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믿는 사람이 있어도 내색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니까, 면장이 저에게 '그럼 때려치워. 너도 적이 될래, XX야? 지금 선거 뻔한데, 너 내 말 안 들으면 평생 읍·면만 돌아다니며 살래?'라고 협박까지 하였습니다."
경찰 관점에서 추형오의 진술을 보면 틀림없는 면장의 위법 행위다. 공무원은 선거에 개입해선 안 된다. 그의 말처럼 특정인에게 마음은 있어도 발설을 하면 안 된다. 시보(초임 공무원)도 그건 안다. 30년간 공직 생활을 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추형오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의 진술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가 말한 시기보다 앞서 시행된 지역 한 언론 여론조사에서 D당 유서현(가명) 후보가 현 군수를 앞선 것으로 보도됐었다. 그의 '지금 선거 뻔한데'라는 말은 맞지 않다.
추형오는 근무시간 중 음주로 민원인과 마찰이 잦았다. 군청을 비롯해 면사무소 전 직원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런 직원에게 부당 집행을 지시하고 현 군수 지지를 말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경찰서 지능팀장도 그의 행실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다. 그 지역 한 경찰 간부는 얼굴 한 번 봤다는 이유로 한동안 '술에 취한 그의 전화에 시달렸다'고 했었다. 지능팀장이 추형오에게 물었다.
"(면장이) 또 누구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했나요?"
"면 이장 협의회장인 방호석 이장에게도 군수를 도와달라고 했고, H이장과 L이장도 면장이 군수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후일 H이장은 '면장으로부터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증언했고, L이장 또한 '면장이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공직 부적격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지능팀장은 L이장과 H이장 진술을 완전히 무시했다. 추형오 진술에 거짓이 드러났음에도 그를 신뢰했다. 그는 진술을 이었다.
"면장이 10건 이상 공익성이 없는 사업을 특정 개인을 위해 추진한 후, 시행 결의토록 제게 지시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당시 면장이었던 내가 사업 대상지를 임의로 선정한 후, 공사가 완료된 다음, 그에게 집행을 지시했다는 말이다. 이게 말이 될까? 면장이 특정 사업을 하고자 했다면 담당자에게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이 건에 대해 지능팀장은 면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했다.
추형오의 출근일 수는 1주일에 4일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술 때문이다. 일 처리가 늦을 수밖에 없다. '(면장이) 공사 추진 후 집행 지시'라는 핑계를 만든 이유다.
출근한 날도 낮에 슬그머니 없어졌다가, 저녁나절이면 여지없이 고주망태가 되곤 했다. 그놈의 의리가 뭔지, 동료 직원들은 그에 대해 병가나 출장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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