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시간의 어둠 속에서 — 극한의 순간, 신앙이 건네는 힘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라는 숫자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참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 속에서도,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생존의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사건을 다시 돌아보며, 극한의 순간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 그리고 그 힘과 신앙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이어진 기적의 구조

사고 발생 후 열흘이 넘도록 구조 당국은 더 이상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구조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붕괴 11일째, 잔해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당시 만 20세이던 최명석씨였습니다.

이 기적 같은 소식은 구조대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고, 이틀 뒤인 13일째에는 당시 18세였던 유지환씨가 구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붕괴 17일째(377시간), 당시 19세였던 박승현씨가 마지막 생존자로 구출되었습니다.

이는 당시까지 국내 매몰 사고 생존 기록을 갈아치운 기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세 분 모두 이후 저마다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최명석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다 이후 건설회사에 재직했고, 다른 생존자의 지인을 소개받아 가정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지환씨와 박승현씨 역시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 분 모두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내오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한 상황 신앙이 주는 힘

2.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사건과 관련해, 일부 불교 신앙 자료에서는 생존자들이 물 한 모금 없이 오직 진언 독송만으로 그 긴 시간을 버텨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 사이트를 준비하며 이 이야기의 출처를 확인해보았는데, 공식 언론 보도나 검증된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마도, 도저히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존 자체의 기적성 앞에서, 신앙을 지닌 이들이 그 의미를 자신들의 언어로 풀어내며 구전되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 글에서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전해드리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세 분 생존자는 실존하는, 그리고 이미 그 자체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이기에,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그분들의 실제 경험인 것처럼 덧붙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어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77시간이라는 시간 자체가 이미 상식을 뛰어넘는 생존의 기록이었고,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에 의지해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은 이들이 신앙의 언어로 이해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3. 극한 상황, 인간은 무엇에 의지하는가

확인된 사실과 별개로, 극한의 고립과 공포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버텨내는지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물음입니다. 실제로 재난 생존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많은 이들이 극도의 공포와 절망 속에서 반복적인 되뇌임에 의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거나, 어린 시절 배운 기도문을 계속 외우거나, 특정한 숫자를 세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반복 행위는 심리적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이해됩니다.

  • 공포에 잠식되지 않도록 마음을 붙잡아주는 닻이 되어줍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입으로 무언가를 되뇌는 행위 자체가 “나는 아직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시켜줍니다.
  • 시간과 고통에 대한 인식을 흐트러뜨려, 극한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줍니다.
  •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붙들게 해줍니다. 신앙을 지닌 이들에게는 그 되뇌임의 대상이 절대자나 보살님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일 수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지난 글들을 통해 소개해드린 것처럼, 다라니와 명상이 공유하는 핵심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이 “반복을 통한 마음의 정박(碇泊)”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이 훈련을 쌓아온 사람이라면, 극한의 순간에도 그 훈련이 무의식중에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4. 평소의 정진이 위기의 순간을 위한 준비가 됩니다

여기서 이 사이트가 강조해온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라니 독송이나 명호 정근을 매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지금 당장의 평온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마주할지 모를 인생의 극한 상황을 위한 마음의 훈련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아침 달리기를 하며 다라니를 독송했을 때 숨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경험담이나, 힘든 순간마다 자연스레 관세음보살의 명호가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평소의 반복된 수행이 위기의 순간 하나의 의지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재난 생존을 보장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극한의 순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붙들기 위한 하나의 훈련으로서 다라니 독송이 지니는 가치를, 이 참사를 돌아보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치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502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깊은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살아 돌아온 세 분의 생존은, 신앙의 언어로 설명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 극한 속에서도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하기보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의 일부를, 우리가 매일 이어가는 조용한 정진 속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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