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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석씨 宗史, 고려 무신 석린(石隣)에서 디지털 문중까지

aulir 2024. 12. 13.

충주 석씨(石氏)는 고려 의종 때 무신 석린을 시조로 하는 명문가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문무관직에서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조선 건국 초기 왕실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명문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현재까지 4만여 명의 종친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충주 석씨의 기원과 특징

충주 석씨는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씨입니다.

충주 석씨 관련 이미지
충주 석씨 관련 이미지

시조와 기원

시조 석린(石隣)은 고려 의종 때의 무인으로, 1170년 경인난에서 공을 세워 서경낭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1176년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한 공로로 상장군과 동서북면병마사에 올랐으며, 예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주요 계보

초기 세대

  • 6세손 석양선은 부인이 태조 이성계의 이모였던 인연으로 조선 건국 후 홍양부원군에 추봉되었습니다.
  • 석주는 고려 충렬왕 때 밀직부사를 지냈으나, 1303년 반역 음모에 연루되어 연경으로 압송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분파와 현황

충주 석씨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 충주 본가 :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본래의 가문
  • 홍주 분관 : 석수명이 한성판윤을 지내며 홍주로 분관했습니다

2015년 기준 전국의 충주 석씨와 홍주 석씨를 합한 인구는 42,811명에 달합니다.

역사적 업적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했으며, 특히 고려 무신 정권 시기와 조선 건국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충렬왕 시대에는 왕의 총애를 받는 등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충주 石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고려시대 주요인물

  • 시조 석린은 고려 의종 때의 무신으로, 1170년 경인난에 참여하여 서경낭장이 되었습니다. 1176년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상장군과 동서북면병마사에 올랐습니다.
  • 석수민(1077-1160)은 예빈랑 응양군대장군을 지냈으며, 태자좌감문수부수를 역임했습니다.
  • 석주는 충렬왕 때 밀직부사를 지냈으나, 1303년 반역 혐의로 연경에 압송되어 유배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주요인물

조선 전기

  • 석양선(6세손)은 부인이 태조 이성계의 이모였던 인연으로 홍양부원군에 추봉되었습니다.
  • 석여명은 성균관 생원에 급제하여 주서를 지냈으며, 고려 멸망 후 두문불출했습니다. 태종이 집현전제학직을 내렸으나 사양했습니다.

조선 후기

  • 석재준(1866-1945)은 『경학원문목』을 저술했으며, 『충주홍주석씨세보』의 서문을 작성했습니다.
  • 석진형(1877-1946)은 구한말 법률가이자 일제강점기의 관료였습니다.

근대 의병장

  • 석성국은 1895년 을미사변 때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참모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했습니다.
  • 석창문(1885-1908)은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혀를 깨물고 순절했습니다.

충주 石氏의 과거급제자 현황

충주 석씨의 과거 급제자들을 시험 종류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

문과

  • 석여명 : 1374년(고려 공민왕 23) 성균관 생원에 을과로 급제

조선시대

문과

  • 석기곤 : 행경상도사, 병조좌랑, 사헌부장령을 역임
  • 석방진
  • 석종진

무과
총 8명의 무과 급제자가 있었으나, 구체적인 인명은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생원진사시
9명의 합격자가 있었으며, 이는 조선조방목의 기록을 기준으로 합니다.

총 급제자 현황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2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이는 문과 3명, 무과 8명, 생원진사시 9명으로 구성됩니다.

충주 石氏 주요 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충주 석씨는 크게 두 개의 주요 분파로 나뉩니다.

충주 본관

  • 8세손 석여명의 세 아들을 중심으로 대종을 이루었습니다.

홍주 분관

  • 7세 석천을의 아들 석수명이 한성판윤을 지내고 홍주로 분관했습니다.
  • 후에 경인보(庚寅譜) 수보 때 충주 석씨와 홍주 석씨가 대동보로 합보되었습니다.

항렬표

충주 석씨의 항렬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정(楨)
병(炳)
균(均) 원(源)
진(鎭) 현(鉉)
순(淳) 환(煥) 영(永) 홍
주(柱) 균(均)
정(鼎)
 
 
 
 

이 항렬자는 족보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며, 동일 세대의 이름에 공통으로 사용됩니다.

충주 石氏 집성촌 및 종친회 활동

주요 집성촌

영주 평은리

  • 500년 전 석사성(斯成)이 입향한 대표적 집성촌입니다.
  • 현재 139가구 400여명이 거주하며 영주에서 가장 큰 농촌마을입니다.
  • 25대, 26대, 27대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서울 개포동

  • 병사공파 중 시랑공파의 집성촌이었습니다.

종친회 운영

대종회 조직

  •  충주홍주 석씨 대종회로 통합 운영되고 있습니다.
  • 2016년 제26대 대종회장으로 석준호(29세 병사공파)가 선출되었습니다.

주요 활동

  • 정기총회 개최
  • 어필각 복원사업 추진
  • 홈페이지 운영
  • 화원선조 시향 봉행

인구 현황

  • 2015년 기준 전국의 충주 석씨(41,802명)와 홍주 석씨(1,009명)를 합해 총 42,811명입니다.

충주 石氏 문화재 및 유적지

건축 문화재

영주 강동리 충주석씨재사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1호로 지정
  •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에 위치
  • 2010년 3월 11일 지정

소계정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1호
  •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714번지에 위치
  • 1923년 석재준(1866-1945)의 제자들이 건립
  • 1995년 5월 12일 지정

종가 및 재실

인산당

  •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기세골에 위치
  • 입향조 석언우를 기리기 위해 건립

도흥리 재사

  • 성주군 선남면 도흥2리 삽실 마을 서편에 위치
  • 석종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

문화재 기증품

왕지(王旨)

  •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문서
  • 충주 석씨 문중에서 충주박물관에 기증
  • 조선 건국 초기의 것으로 희소성이 높아 문화재 지정 추진 중

충주 石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디지털 네트워크 구축

온라인 플랫폼

  • 인터넷 전자족보와 홈페이지 운영
  • 유튜브 채널을 통한 종중 소통 강화
  • 실시간 종사 관리 시스템 구축

족보 현대화

  • 전자족보 입보율 향상 추진
  • 시대 문화에 맞는 족보 보완
  •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공유 확대

문중 발전 사업

경제 기반 구축

  • 화원재 부속위토 중심의 농업법인 설립 추진
  • 장학사업 확대
  • 문중 어르신 복지사업 개발

문화 사업

  • 청소년을 위한 문중 역사 문고 발간
  • 예홍원 역사관 발전 방안 검토
  • 전통 제례의식의 체계화 및 통일

종친회 활성화

젊은 세대 참여

  • 축제형 문중행사 기획
  • 젊은 종친들의 관심과 참여 유도
  • 경조사 관련 규정 체계화

소통 강화

  • 각종 문중행사 참여율 제고
  • 종친간 교류 활성화
  • 문중 역사자료의 체계적 축적과 공유

결론

충주 석씨는 85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발전해왔다. 고려시대 무신으로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문무양반으로 성장했고, 근대에는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섰습니다. 현재는 전통과 현대화의 조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통의 계승과 혁신

  • 종친회 조직의 현대화
  • 디지털 족보 구축
  • 문화재 보존 및 관리

미래 지향적 발전

  • 젊은 세대 참여 확대
  • 경제적 기반 구축
  • 교육 및 복지사업 강화

문화적 가치 창출

  • 종중 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
  • 역사 자료의 디지털화
  • 문중 행사의 현대적 재해석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히 가문의 전통을 잇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종친회가 가져야 할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충주 석씨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문중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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