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과 문무겸전의 명가(名家) 장흥 마씨 이야기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 장흥 마씨(馬氏)는 은나라 마완을 시조로 하며, 고려시대 마혁인을 기세조로, 조선시대 마천목을 중흥조로 하는 명문가문입니다. 문무양반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해왔습니다.
장흥 마씨의 기원과 특징
시조와 기원
장흥 마씨의 첫 시조는 은나라의 양성인 마완(馬浣)이다. 은나라 말기에 마완과 그의 아들 마장은 주왕의 폭정을 피해 은거하다가, 마장이 기자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습니다.
백제 시대에는 마려(馬黎)가 백제의 건국공신으로서 온조왕을 도와 백제 건국에 공헌했으며, 좌보의 벼슬을 받고 마사량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았습니다.
가문의 발전
장흥 마씨의 중흥은 기세조 마혁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혁인은 1085년 고려 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특진과 판개성윤을 지냈습니다. 가문의 가장 큰 전환점은 마혁인의 11세손인 마천목 때로 볼 수 있습니다. 마천목은,
- 조선 태종의 즉위를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올랐습니다
- 병마도절제사, 도총제, 병조판서 등 핵심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장흥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분파 현황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만, 장흥 마씨는 마천목의 네 아들을 통해 여러 파로 나뉘었습니다.
- 문광공파 (첫째 마승)
- 조은공파 (둘째 마전)
- 현감공파 (셋째 마반)
- 참판공파 (넷째 마춘)
현재 장흥 마씨 종친들은 매년 음력 10월 8일에 모여 제사를 지내며, 장흥 용산면에 원사를 두고 선조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장흥 馬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장흥 마씨의 시대별 주요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삼국시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려(馬黎)는 백제의 건국공신으로, 온조왕을 도와 백제 건국에 공헌했으며 좌보의 벼슬을 받고 마사량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았습니다.
고려시대
- 마혁인(馬爀仁) : 1085년 문과에 급제하여 특진과 판개성윤을 지냈으며, 장흥 마씨의 중흥을 이룬 기세조입니다.
- 마엽(馬曄) : 마혁인의 아들로 병부시랑을 역임했습니다.
- 마의유(馬義裕) : 고려 의종 때 홍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조선시대
마천목(馬天牧, 1358-1431)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인물로,
- 태종의 즉위를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올랐습니다.
- 병마도절제사, 도총제, 병조판서 등을 역임했습니다.
- 북방 6진 설치를 최초로 주장했습니다.
마승(馬勝)은,
- 세종 때 경상도수사, 이조참판, 경주부윤 등을 지냈습니다.
-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마성훈(1533-1601)과 그의 종형제들이 큰 활약을 보였습니다.
- 마성훈은 의병장으로 고경명 부대에서 활동했습니다.
- 마륜, 마응훈, 마운종, 마온종, 마창종 5형제는 진주 남강 전투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장흥 馬氏의 과거 급제자
장흥 마씨의 과거 급제자들을 시험 종류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문과 급제자
고려시대
- 마혁인 : 1085년 선종 때 문과 급제하여 판개성윤 역임
- 마엽 : 1128년 인종 때 문과 급제하여 병부시랑 역임
- 마의유 : 1165년 의종 때 문과 급제하여 홍주목사 역임
- 마희원 : 문과 급제 후 문하시중, 평장사 지냄
- 마중기 : 희종 때 문과 급제하여 전리상서 제수
- 마지백 : 원종 때 문과 급제하여 국자박사, 보문각학사 역임
조선시대
- 마계변 :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역임
- 마맹하 : 1747년 영조 때 식년문과 을과 급제하여 학유 지냄
무과 급제자
- 마지룡 : 27세 정묘년에 무과 급제하여 어영장 역임
사마시(생원진사시) 급제자
- 마계변 : 사마시 합격
- 마우동 : 1567년 명종 때 사마시 합격
장흥 마씨는 조선시대에 공신 1명,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장흥 馬氏의 주요 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장흥 마씨는 마천목의 네 아들을 통해 다음과 같이 4개의 주요 분파로 나뉘었습니다.
- 문간공파 : 첫째 마승(馬勝)을 시조로 하며, 곡성 지역에 터를 잡았습니다.
- 조은공파 : 둘째 마전(馬腆)을 시조로 하며, 현재 장흥 지역에 주로 거주합니다.
- 현감공파 : 셋째 마반(馬胖)을 시조로 하며, 강진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 참판공파 : 넷째 마춘(馬椿)을 시조로 하며, 주로 북한 지역에 후손들이 거주했습니다.
항렬표
장흥 마씨의 항렬은 다음과 같이 사용됩니다.
29세-33세
- 29세 : 숙(叔), 하(河)
- 30세 : 상(相), 락(樂)
- 31세 : 황(煌), 열(烈)
- 32세 : 채(埰), 재(在)
- 33세 : 전(銓), 용(鎔)
34세-38세
- 34세 : 영(永), 홍(洪)
- 35세 : 권(權), 근(根)
- 36세 : 찬(燦), 병(炳)
- 37세 : 규(圭), 교(敎)
- 38세 : 용(鎔), 현(鉉)
39세-43세
- 39세 : 수(洙), 호(浩)
- 40세 : 병(柄), 계(桂)
- 41세 : 경(炅), 훈(焄)
- 42세 : 효(孝), 재(載)
- 43세 : 진(鎭), 은(銀)
장흥 馬氏 집성촌 및 종친회 운영 현황
주요 집성촌
전라남도 지역
- 장흥군 용산면 : 장흥마씨의 원사가 위치해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8일 전체 문중이 모여 제사를 지냄
- 강진군 군동면 : 하신마을에는 과거 150호가 넘는 장흥마씨 집성촌이 있었음
- 장흥군 학송마을 : 1580년경부터 형성된 집성촌으로, 1970년대에는 장수마을과 합쳐 약 100호의 장흥마씨가 거주
종친회 조직
중앙조직
- 장흥마씨 중앙종회가 전체 종친회를 총괄
- 전국적으로 약 3만여 명의 종친이 있음
지역종친회
- 강진종친회 : 마홍식 회장과 마병문 부회장이 이끌며, 두 달에 한 번 임원회의 개최
- 총무와 감사를 두어 회장단을 보좌하는 체계 구축
주요 문중시설
사당 및 제각
- 충정사 : 작천면 척동마을에 위치, 매년 상강(음력 10월 23일경)에 제향
- 충현사 : 학송리 화개산 아래에 위치
- 군동 하신마을 : 응정의 묘와 제각 보유
제향활동
- 매년 음력 10월 8일 : 용산면 원사에서 전체 문중 제사
- 음력 10월 15일 : 시제 거행
- 상강절 : 충정사에서 유림들이 모여 제향
장흥 馬氏 문화재 및 유적지
주요 사당 및 제각
충정사
- 작천면 척동마을에 위치
- 매년 상강(음력 10월 23일경)에 마천목과 마응정, 마응방을 기리는 제향 거행
- 최근 종친들이 1억 8천만원을 들여 보수공사 완료
충현사
- 학송리 614번지 화개산 아래 위치
- 1921년 2월에 관산세장(冠山世庄) 편액 설치
- 1922년 운재(雲齋) 최영조가 충현사강당중수기 작성
- 1997년 숭의문(崇義門) 중건확장
묘소 및 기념물
마천목 묘와 재실
-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에 소재
- 전라남도 기념물 제252호로 지정
- 장방형 형태의 묘소로 묘표, 무인석, 망주석, 장명등 등 석물 보유
- 조선 초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유적
전라병영성
- 1417년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이 축조
- 1895년까지 전라도의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 총지휘부
- 대한민국 사적 제397호로 지정
문화재
마천목 공신녹권
- 2006년 4월 28일 보물 제1469호로 지정
- 세로 39cm, 가로 570cm 규모의 좌명공신 유일본
- 1948년 여순사건 때 종택 화재로 소실될 뻔했으나 사당 마루 밑 항아리에서 발견
-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관리
장흥 馬氏의 미래지향적 활동
종친회 현대화 활동
중앙종회 운영
- 장흥마씨 중앙종회가 전국 3만여 종친을 총괄하며 체계적으로 관리
- 마상빈 대종회장을 중심으로 종친 네트워크 강화
- 정기적인 임원회의를 통해 문중 발전방안 논의
문화재 보존 및 관리
충정사 정비사업
- 종친들이 1억 8천만원을 모금하여 충정사 보수공사 완료
- 제각과 사당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 매년 정기적인 제향 행사 진행
문화유산 관리
- 마천목 공신녹권(보물 제1469호) 국립고궁박물관 위탁 관리
- 종가 문화유산의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 진행
종친회 활성화 계획
젊은 세대 참여 확대
- 종친회 임원진 세대교체 추진
- 젊은 종친들의 참여를 위한 온라인 네트워크 구축
- 종친회 행사의 현대화 및 간소화 추진
지역 발전 기여
- 장흥, 강진 등 집성촌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화
- 종친회 장학사업 확대
- 지역사회와 연계한 문화행사 개최
결론
장흥 마씨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문과와 무과를 통해 꾸준히 관리를 배출하며 나라의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현재는 전국의 3만여 종친이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전통문화 계승과 종친회 현대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 확대와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미래로 이어가고 있으며, 지역사회 발전에도 적극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흥 마씨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미래 지향적인 명문가문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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