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와 미래를 잇는 명문가문, 보성 오씨 종친록
보성 오씨(吳氏)는 고려시대 오현필을 시조로, 충절과 효행의 정신을 이어온 명문가문입니다. 중국 오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오첨의 후손들은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려 보성, 해주, 동복 등 세 갈래로 분파되었고, 보성 오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보성 오씨 기원과 특징
보성 오씨는 오현필(吳賢弼)을 시조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입니다.
기원
오씨의 근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장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나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500년경 오첨(吳瞻)이 신라로 입국하여 김종지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고, 그의 24세손인 오현필이 보성 오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시조와 역사
시조 오현필은 1216년(고려 고종 3년) 거란군을 격퇴한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오현필의 형제들은 각각 해주오씨와 동복오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이는 세 형제가 모두 거란군 격퇴의 공을 세워 각각 다른 지역의 군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요 인물과 업적
보성 오씨 가문에서는 여러 명의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래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 오한경 : 고려 원종 때 감시에 장원급제하여 동궁시학에 선발되었고, 첨의찬성사를 지냈습니다.
- 오사충 : 대사성과 좌상시를 역임하고 조선 개국 후 좌명개국삼등공신이 되어 영성부원군에 추증되었습니다.
분포
2015년 기준 보성 오씨의 인구는 71,162명이며, 주요 집성촌으로는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남도 공주시, 보령시, 천안시, 세종특별자치시 등이 있습니다.
보성 吳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고려시대
- 시조 오현필 : 1216년(고종 3년) 거란군 격퇴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짐
- 오한경 : 원종 때 감시에 장원급제하여 동궁시학으로 선발되었고, 첨의찬성사 역임
- 오사충 : 공민왕 때 문과 급제, 대사성과 좌상시 역임
- 오천복 :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보성부원군에 봉해짐
조선 전기
- 오몽을 : 고려 말 대장군으로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됨. 강원도관찰사 역임
- 오점 :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내며 가문 중흥
- 오자경 : 단종 때 무과급제, 이시애의 난 평정 공로로 보성군에 봉해짐
조선 후기
- 오천을 : 대제학 역임
- 오연찰 : 이조판서 역임
- 오집 : 한성판윤 역임
- 오대남 : 고원군수 재직 중 병자호란 때 순절
근현대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배출되었으며, 대표적 인물들은,
- 오강표
- 오재옹
- 오교선
- 오익표
- 오연길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보성 吳氏 과거급제자 현황
문과 급제자
- 오몽을 : 1380년(우왕 6) 식년문과 급제
- 오윤 : 1511년 별시 문과 급제
- 오저 : 1756년(영조 32) 식년 문과 급제하여 병조정랑, 장령, 군자감정 등 역임
- 오점 : 1401년(태종 1) 문과 급제, 이후 세종 때 대사성 역임
무과 급제자
- 오자경 : 단종 때 무과 급제, 이시애의 난 평정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어 보산군에 봉해짐
- 오세한 : 무과 출신으로 병마절도사 역임,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음
기타 과거 합격자
- 오숙 : 진사시 합격 후 승지에 올랐음
- 오윤 : 진사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
보성 吳氏의 주요 분파와 항렬표
주요 분파
보성 吳氏의 대표적인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양숙공파
- 양무공파
- 부위공파
- 장기공파
- 감역공파
- 판관공파
- 사직공파
- 대사성공파
- 병판공파
- 좌상공파
- 통정공파
항렬표
부위공파 항렬
- 21세 : 상(相) 응(應) 환(煥) 종(宗)
- 22세 : 선(先) 재(在) 형(亨)
- 23세 : 계(啓) 현(鉉) 석(錫)
- 24세 : 호(鎬) 준(俊) 영(永) 연(淵)
- 25세 : 영(永) 식(植) 수(秀)
양무공파 항렬
- 31세 : 훈(勳)
- 32세 : 중(重)
- 33세 : 선(善)
- 34세 : 원(源)
- 35세 : 래(來)
- 36세 : 열(烈)
- 37세 : 달(達)
- 38세 : 종(鍾)
보성 吳氏 집성촌 및 족보관리 상황
집성촌 현황
전국 12개의 주요 집성촌이 있으며, 특히 충청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청주 지역
- 오창읍 화산리
- 현도면 달계리
- 낭성면 삼산리
- 현도면 매봉리
- 현도면 시목리
- 현도면 중척리
충청 기타 지역
- 보령시 웅천면 성동리
- 공주시 우성면 대흥리
-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
-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
전라도 지역
- 보성군 조성면 귀산리
-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
족보 관리
보성 오씨의 족보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발간되었습니다.
- 무자년 : 초보 편찬(미발간)
- 병술보 : 최초 발간
- 계미보 : 1623년
- 갑인보 : 1914년
- 을미보 : 1955년
- 경신보 : 1980년
- 경자보 : 2020년
집성촌 형성 과정
현재 보성 오씨의 대표적 집성촌인 청주 현도면 달계리는 9세 숙동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피해 이주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후손들의 중앙정계 진출과 한양 인근 거주지 확보, 종족경관(사당, 서원, 선영) 확보 등을 통해 집성촌이 공고화되었습니다.
보성 吳氏 문화재 및 유적지
청주 지역 유적
- 지선정 : 현도면에 위치한 정자
- 강고사 : 보성 오씨 관련 사당
- 영모제 : 문중의 제실
- 효자정 : 효자를 기리는 정자와 비석
보령 지역 유적
효행 관련 문화재
- 오성호 효행록 : 1878년 무인년에 작성된 고문서로, 암행어사 마패가 찍힌 귀중한 사료
- 72명의 수결과 7개 고을 유생들의 연명이 담긴 상서 문서
묘소 및 사당
- 시조 오현필의 묘소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위치
- 보성 오씨 문중 비각 : 현도면 일대에 다수 분포
집성촌 문화유산
- 웅천 집성당 : 보령시 웅천읍 성동리에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현도면 일대에는 다수의 보성 오씨 관련 문화유적이 산재
이러한 문화재들은 보성 오씨의 역사적 발자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효행록은 보령시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효행 관련 고문서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성 吳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보성 오씨 문중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육 분야 공헌
- 오범수가 충청대학을 설립하여 지역 사학의 기반을 마련
- 오선균 충청대학장, 오경호 충청대이사장 등이 교육기관을 이끌며 인재양성에 기여
- 오덕균 충남대교수, 오희필 대전대 교수, 오갑준 전 교육대교수 등 다수의 학자 배출
문화재 보존 활동
- 보성 오씨 사당의 전통방식 보수 공사 진행
- 콘크리트 대신 전통 재료와 공법을 사용한 보수작업 실시
- 사당 주변 담장과 부지를 전통 방식으로 복원
학술 진흥
- 현도면에서 오건세, 오장균, 오원진, 오노균, 오상진 등 5명의 박사 배출
- '오박사 축제' 개최를 통한 학문 장려 전통 계승
정치·사회 활동
- 오장세 충북도의원, 오제세 국회의원 등 정계 진출
- 다수의 전문가들이 학계와 정계에서 활발한 활동 전개
결론
보성 吳氏는 8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문무양반의 전통을 이어오며 충효와 학문을 중시해왔습니다. 시조 오현필부터 현대의 교육자,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보성 오씨는 교육과 문화재 보존, 학술 진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전통의 계승과 미래 지향적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명문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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