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씨(진양 정씨)의 전통과 미래의 조화
진주 정씨(晉州 鄭氏)는 신라 건국 6부족의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하는 우리의 대표적 성씨입니다. '진주8정(晋州八鄭)'으로 불리는 8개의 분파를 통해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정치, 문화,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진주 정씨와 진양 정씨의 차이점과 특징
진주 정씨와 진양 정씨는 사실상 동일한 성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두 명칭 모두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성씨를 가리킵니다. 혼돈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성씨의 주요 특징과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칭
- 진주 정씨 : 공식적인 명칭으로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 진양 정씨 : 진주 정씨의 이칭(異稱)으로, 진주의 옛 이름인 진양에서 유래했습니다.
주요 특징
1. 다양한 시조
진주(진양) 정씨는 8개의 서로 다른 계통을 가지고 있어 '진주8정(晋州八鄭)'으로 불립니다. 주요 시조로는,
- 정예(鄭藝)
- 정자우(鄭子友)
- 정장(鄭莊)
- 정헌(鄭櫶)
2. 역사적 배경
신라 건국 6부족의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합니다.
진주 鄭氏 시대별 주요인물
성명 | 시대 | 주요업적 |
정예 | 고려 시대 | 고려 삼한벽상공신(光祿大夫),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를 역임.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며 청백리로 알려져 진주 정씨의 역사적 중요성을 확립. |
정자우 | 고려 시대 | 호장(戶長)을 지낸 고려 시대 인물. 후손 중 정자우의 6세손은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정신열(鄭臣烈). 진주 정씨의 시조로, 후손들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 |
정장 | 고려 말 | 통정첨지중추원사 역임. 후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역임하는 등 조선 시대에 걸쳐 정치적, 사회적 기여. 진주 정씨 가문의 위상을 높임. |
정헌 | 고려 말 | 문하시랑 평장사,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으로 봉해짐. 둘째 아들 정택(鄭澤)은 감찰어사를 역임하며 어사공파(御史公派)를 이끔. 조선 시대에도 다양한 문신 배출로 높은 지위 유지 및 문화적 기여. |
정온 | 조선 중기 |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킴.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나 국방에 기여. 은거하며 "덕변록" 등 저서를 남김. |
정이오 | 고려 말, 조선 전기 | 1374년 문과 급제. 예문관 검열, 공조, 예조의 정랑 등 역임. 조선 초기 '사서절요' 편찬, '태조실록' 번역 등에 기여. 저서로 "교은집"을 남김. |
정분 | 조선 초기 | 세종, 문종, 단종 시기 문신. 고명대신으로 정치적 기여. 토목과 건축에 뛰어난 관리. 계유정난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시호가 충장(忠莊)으로 결정됨. |
정경세 | 조선 중기 | 문신·학자로 영남 예학 발전에 기여. 도남서원 창건 주도, 의병 활동, 무료 치료소 운영 등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음. 여러 관직 역임하며 국정에 기여. |
추가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시대별로 보면,
고려시대
- 정천익 : 공민왕 때 판부사를 지냈으며, 사위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 재배에 성공하고 물레를 개발하여 의복문화 혁신에 기여했습니다.
조선 전기
- 정척 : 세종 때의 명신으로, 1463년 양성지와 함께 동국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조선 중기
- 정기룡 : 임진왜란의 명장으로, 상주성 탈환 등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삼도통제사를 지냈습니다.
조선 후기
- 정경세 : 유성룡의 제자로 영남학파의 적전이며, 예학에 정통했고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이들은 각 시대별로 문신, 무신, 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진주정씨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중요 인물들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진주 鄭氏의 과거급제자 현황
진주 정씨의 주요 과거 급제자들을 과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과 급제자
고려시대
- 정이오 :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삼사도사, 공조·예조의 정랑 등을 역임했습니다.
조선시대
- 정척 : 1414년(태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 봉상시 주부, 감찰을 거쳐 판한성부사와 수문전 대제학에 올랐습니다.
무과 급제자
조선시대
- 정기룡(정무수) :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했으며, 초명인 무수에서 선조의 명으로 기룡으로 개명했습니다.
주요 관직 진출
진주 정씨는 과거 급제 이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 정신열 : 고려 현종 때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청환직을 거친 후 병부상서에 올랐습니다.
- 정헌 : 고려 말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내고 진산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 정분 : 조선 단종 때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진주 鄭氏 주요 분파와 항렬표
주요 분파
진주정씨는 '진주8정(晋州八鄭)'이라 불리는 8개의 계파가 있으며, 그 중 4개의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예계(鄭藝系)
- 충장공파
- 화헌공파
- 부원군파
2. 정자우계(鄭子友系)
- 은열공파
- 정중공파
- 보경공파
3. 정장계(鄭莊系)
- 공대공파
4. 정헌계(鄭櫶系)
- 우곡공파
- 어사공파
항렬표
각 계파별 주요 항렬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헌계(櫶系) 항렬
- 환(煥) 묵(默)
- 규(圭) 재(在)
- 호(鎬) 용(鎔)
- 영(泳) 주(注)
- 병(炳) 영(榮)
수계(需系) 항렬
- 한(漢) 해(海) 제(濟)
- 식(植) 모(模) 채(采)
- 연(然) 병(炳) 형(炯)
- 기(基) 효(孝) 달(達)
- 종(鍾) 용(鎔) 진(鎭)
예계(藝系) 항렬
- 중(重) 찬(燦)
- 규(奎) 감(鑑)
- 종(鍾) 일(一)
- 원(源) 인(仁)
- 삼(三) 휴(休)
각 분파는 독자적인 항렬을 사용하며, 이를 통해 세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진주 鄭氏 집성촌 및 종친회 현황
주요 집성촌
경상남도
- 진주시 : 금곡면, 진성면, 사봉면, 금산면, 대평면, 수곡면
- 하동군 : 옥종면 북방리 (41가구)
- 남해군
- 함양군
- 휴천면 목현리 목현마을
- 유림면 서주리 서주마을
- 유림면 유평리 유평마을
전라도
- 전라남도
-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약 100여 호)
- 광양시
- 화순군
- 영광군 - 전북특별자치도 : 고창군
기타 지역
- 충청남도 : 서산시
- 평안북도 : 녕변군
인구 현황
2015년 인구조사 기준입니다.
- 전국 총인구 : 324,521명
- 함양군 : 466명
주요 종중 건물
재실 및 사당
- 진주정씨 재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 존덕사(存德祠) :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 간취당(澗翠堂) : 1917년 건립
- 고양재(高陽齋) : 입향조 기념
진주정씨는 각 지역별로 종친회를 구성하여 종중 재산을 관리하고 선조의 제사를 모시며 종친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진주 鄭氏 문화재 및 유적지
주요 문화재
진주 지역
- 도동서원 : 정분을 비롯해 황보인, 김종서, 김문기 등을 배향했던 서원으로, 현재는 유허비만 남아있습니다.
- 정분 묘소 : 경남 진주시 상대동에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
전의면 영당리
- 진주정씨 재실 : 1992년 건립된 재실이 전의면 영당리에 위치
-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
- 정원룡과 그의 처 파평윤씨
- 정대권(정원룡의 아들)
- 정헌세의 처 한산이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정려
기타 유적
- 정윤필 묘 : 전동면 미곡리 종중 공원묘에 위치
- 고문서 : 교지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고문서가 보존되어 있음
뿌리공원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에 진주정씨 문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재들은 진주정씨의 역사적 위상과 문화적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진주 鄭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진주 정씨 문중의 미래 지향적 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결속 활동
친족 단위 활동
- 종친회를 통한 정기적인 모임과 행사 개최
- 문중 재산 관리와 선조 제사 봉행
- 종친 간의 유대 강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교육 및 장학 사업
- 후속 세대 지원 활동
- 종친회 장학금 지원
- 종중 자녀들의 교육 지원
지역사회 기여
문화유산 보존
- 진주 도동서원 유허비 보존
- 종중 문화재와 유적지 관리
- 고문서 및 역사 자료 보존
지역발전 참여
- 집성촌 지역의 발전 사업 참여
- 지역사회와의 협력 강화
- 문화 행사 주최 및 참여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진주 정씨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접목시켜 문중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결론
진주 정씨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명현을 배출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문화, 학문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현재도 전국의 집성촌과 종친회를 중심으로 문중의 결속을 다지고, 교육과 장학 사업을 통해 후속 세대를 양성하며,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주 정씨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가치의 조화를 통해 미래 지향적인 문중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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