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충절의 가문
신라의 마지막 숨결을 함께했던 충절의 가문,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성주 이씨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8세대 이내에 문형 18명, 상신 15명, 문과급제자 75명을 배출한 기록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주 이씨의 시조와 연원
성주 이씨의 시조는 이순유(李純由)로, 신라 말기 경순왕(927~935) 시대에 이부상서와 재상을 지낸 인물입니다. 이순유는 원래 경주 이씨의 시조인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의 양부에서 이(李)씨 성을 하사받은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본관 유래
성주 이씨가 본관을 성주로 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라 멸망 후 이순유는 이름을 극신(克臣)으로 바꾸고 경상북도 성주읍 경산리로 은거했습니다.
-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 부흥을 도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주에 은둔하여 살았습니다.
- 고려 충렬왕 때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씨의 본관을 성주로 정했습니다.
중시조와 가문의 번영
이장경(李長庚)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그의 손자 이승경이 원나라에서 공을 세워 이장경이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 되면서 '농서 이씨'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장경의 다섯 아들(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면서 가문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가문의 위상
성주 이씨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로서,
- 8세대 이내에 문형(대제학) 18명
- 봉작받은 인물 11명
- 상신(정승) 15명
- 식읍을 받은 인물 5명
- 부마 2명
- 문과 급제자 75명을 배출했습니다.
시대별 주요 인물
성주 이씨의 시대별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신라 말기
- 이순유(시조): 경순왕 시대에 이부상서와 재상을 지냈으며, 신라 멸망 후 마의태자와 함께 구국 운동을 펼쳤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주읍 경산리로 은거했습니다.
고려시대
- 이장경(중시조):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그의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삼중대광 좌시중 등의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 다섯 형제
- 이백년 : 밀직사사
- 이천년 : 참지정사
- 이만년 : 문하시중
- 이억년 : 개성유수
- 이조년: 정당문학 문열공 - 이승경 : 이천년의 둘째 아들로, 원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며 공을 세워 농서군공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조선시대
- 이직 : 조선 개국 공신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며, 계미자(동활자)를 만드는데 공헌했습니다.
- 이인복 : 고려 말의 권신으로, 정당문학 겸 감찰대부를 지냈으며 성산군에 봉해졌습니다.
현대
- 정계/군사
- 이순자 : 전두환 대통령 영부인
- 이소동 : 육군 대장
- 이동섭 : 전 국회의원 - 경제계
- 이운일 : 신영그룹
- 이의순 : 세방그룹
- 이심 : 한국잡지협회장 역임
성주 이씨는 8세대 이내에 문형(대제학) 18명, 봉작받은 인물 11명, 상신(정승) 15명, 식읍을 받은 인물 5명, 부마 2명, 문과 급제자 75명을 배출한 명문가문입니다.
과거 급제자 현황
조선시대 성주 이씨의 과거 급제자 현황을 정리해 봤습니다.
시험 종류급제자 수
문과 | 102명 |
무과 | 32명 |
사마시 | 352명 |
역과 | 2명 |
의과 | 12명 |
음양과 | 1명 |
율과 | 2명 |
주학 | 3명 |
성주 이씨는 조선 중기(15세기부터 17세기)에 특히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영남권에서 문과 급제자 20명 이상을 배출한 30여 성씨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뛰어난 명문가문이었습니다.
집성촌과 문화 유적지
성주 이씨의 주요 집성촌과 문화 유적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주요 집성촌
경상북도 성주 지역
- 성주읍 : 예산리 세록골, 예동, 경산리 서문밖, 용산리 이방동
- 선남면 : 동암리 서촌, 명포리 금계
- 용암면 : 용정리 송정·회봉, 상언리 안언, 선송리, 칠선리
- 수륜면 : 신파리 신당, 남은리 작천, 보월리
- 가천면 : 화죽리 양죽
- 금수면 : 명천리, 어은리, 영천리
경기도 용인 지역
- 수지구 성복동 : 성주 이씨 안변공파 집성촌
- 기흥구 중동(동백) : 성주 이씨 총제공파 집성촌
주요 문화유적지
성주 지역 유적
- 봉산재 : 경산리 사골에 위치, 이장경과 다섯 아들을 추모하는 재실
- 오현재 : 대가면 옥화리에 위치, 중시조 이장경의 묘소 수호를 위해 1992년 건립
- 안산서원 : 벽진면 자산리에 위치, 성주 이씨 현조 22인을 제향
문화재
- 성주이씨영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5호, 10위의 영정 13폭 보관
- 안산영당 : 경상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217호, 성주 이씨 현조의 초상화 보관
기타 유적
- 이빈 효자정려각 :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위치, 철종때 하사 받은 효자 정려
- 원모재 : 용암면 본리리에 위치, 이숭인의 묘소 아래에 있는 재실
주요 분파와 항렬표
성주 이씨의 주요 분파와 항렬표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주요 분파
성주 이씨는 중시조 이장경의 다섯 아들을 중심으로 5개의 주요 분파로 나뉩니다.
- 밀직공파(密直公派) : 이백년(長子) 계열
- 참지공파(參知公派) : 이천년(次子) 계열
- 시중공파(侍中公派) : 이만년(三子) 계열
- 유수공파(留守公派) : 이억년(四子) 계열
- 문열공파(文烈公派) : 이조년(五子) 계열
항렬표
성주 이씨의 항렬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파(밀직공파)
세손항렬자
20세 | ○秀수 |
21세 | ○煥환 |
22세 | 圭규○ |
23세 | ○鉉현 |
24세 | ○永영 |
25세 | 木○ |
26세 | ○火 |
27세 | 土○ |
중계파(나머지 4개파)
세손항렬자
20세 | ○容용 |
21세 | 敎교○ |
22세 | 鍾종○ |
23세 | ○淳순 |
24세 | 相상○ |
25세 | ○熙희 |
26세 | 在재○ |
27세 | ○鉉철 |
각 파별로 항렬자를 달리 사용하며, 특히 밀직공파(백파)와 나머지 4개 파(중계파)는 서로 다른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렬자 중 火水木金土는 부수로 치환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종친회와 족보관리 상황
종친회 조직
대종회
- 1968년 성주 李氏 전국종친회(대종회 전신) 창립
- 전국 대의원 수는 400여 명에 달함
- 신촌에 성주 李氏 대종회 사옥 보유
지파종회
- 5대 종파별 종친회 운영
- 밀직공파
- 참지공파
- 시중공파
- 유수공파
- 문열공파
지역종친회
- 16개 광역시도별 성주이씨 종친회 운영
- 대종회가 지파종회와 지역종친회를 통합 관리
족보 관리
주요 족보
- 1968년 을묘대동보(乙卯大同譜) 발간
- 1질 9권의 현대활자 인쇄본
- 각 지파종회별 중간보 별도 발간
주요 종사 활동
제례 및 시향
- 오현재와 안산서원에서 정기총회, 한식재, 시향 등 거행
- 대규모 시향 시 1,000~2,000명 정도 참석
문화재 관리
- 삼현소 유지 관리
- 유물·유적 보수 및 신축 사업 진행
대종회 홈페이지(www.sungjulee.co.kr) 운영
현대적 운영
- 문중 행사의 현대화 추진
- 가족 소풍 형식의 참여형 이벤트 도입
- 젊은 세대의 참여 유도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성주 이씨의 미래 지향적 활동
성주 이씨 종친회의 미래 지향적 활동을 소개하겠습니다.
현대적 종사 운영
디지털화
- 대종회 홈페이지 운영을 통한 정보 공유
- 종중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 SNS를 통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
행사 현대화
- 전통적인 시향과 제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 가족 소풍 형식의 참여형 문중 행사 도입
-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위한 이벤트성 프로그램 운영
교육 및 문화 사업
인재 양성
- 종친회 장학사업 운영
- 청년 종친 네트워크 구축
- 법조계, 의료계 등 전문직 종친들의 멘토링 프로그램
문화유산 계승
- 종중 문화재와 유적지의 체계적 보존 관리
- 종중 역사 교육 프로그램 운영
- 성주이씨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 진행
조직 혁신
운영 체계 개선
- 종친회 운영의 투명성 강화
- 지파종회와 지역종친회의 유기적 협력 체계 구축
- 종중 재산의 효율적 관리와 운용
이러한 혁신적인 활동들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종친회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결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성주 李氏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종친회 활동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모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성주 李氏의 이러한 혁신적인 도전은 다른 종친회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며, 한국의 전통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성주 이씨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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