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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 천년의 역사를 품은 안동 김씨 가문 이야기

aulir 2024. 10. 18.

이번 글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인 안동 김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안동 김씨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뉘는데, 각 가문의 역사와 특징,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안동 김씨의 개요

안동 金氏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가문으로, 많은 정치인과 학자, 장군들을 배출했습니다. 특이점으로는 크게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뉜다는 것이며, 두 계열 모두 조선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안동 김씨 이미지
안동 김씨 이미지

구안동김씨

구안동김씨는 더 오래된 계보를 가진 가문입니다.

  • 시조 : 김숙승(金叔承), 신라 경순왕의 손자
  • 중시조 : 김방경(金方慶), 고려 시대의 명장
  • 인구 : 2015년 기준 약 789,790명으로 우리나라에서 18번째로 큰 성씨
  • 주요 특징 
    -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큰 세력을 떨침
    - 조선 시대에 정승 19명, 대제학 6명 배출
    - 21개 파로 분파되었으며, 그중 13개 파가 현존

신안동김씨

신안동김씨는 상대적으로 후대에 형성된 가문입니다.

  • 시조 : 김선평(金宣平), 고려 태조의 삼태사 중 한 명
  • 중시조 : 김극효(金克孝), 조선 중기의 도정
  • 인구 : 2020년 기준 약 30,300명
  • 주요 특징 
    - 조선 후기에 세도가문으로 부상
    - 조선 시대에 정승 15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 배출
    - 장동 김씨로도 불리며, 특히 세도정치 시기에 큰 영향력 행사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구분

두 가문의 구분은 역사적 배경과 시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시조의 차이

  • 구안동김씨 : 시조는 김숙승(金叔承)으로, 신라 경순왕의 손자입니다.
  • 신안동김씨 : 시조는 김선평(金宣平)으로, 고려 태조의 삼태사 중 한 사람입니다.

2. 역사적 시기

  • 구안동김씨 : 보다 오래된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신라 말기부터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 신안동김씨 : 고려 초기에 시작되어 상대적으로 후대에 형성되었습니다.

3. 구분 시기
정확한 구분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 두 가문이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4. 구분 이유

  • 시조와 계보의 차이
  • 세력 확장 : 특히 신안동김씨가 조선 후기에 세도가문으로 부상하면서 구분이 뚜렷해짐
  • 역사적 업적의 차이
  • 혼란 방지 : 족보와 가문 역사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함

안동 김씨의 항렬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항렬은 22세부터 30세까지 동일하며, 이후 세대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공통 항렬 (22세~30세)>
순(淳) - 근(根) - 병(炳) - 규(圭)/균(均) - 진(鎭) - 한(漢) - 동(東) - 현(顯) - 년(年)/기(基)

<신안동김씨의 31세 이후 항렬>
일(鎰)/종(鍾) - 구(求) - 모(模) - 연(然)

안동 김씨의 주요 인물

구안동김씨 주요 인물

1. 고려 시대

  • 김방경 : 고려 원종 때의 명장,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일본 정벌에 참가

2. 조선 전기

  • 김시민 :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명장
  • 김응하 : 후금 정벌군의 전선 지휘관으로 활약, 명나라로부터 백작 작위 받음

3. 조선 후기

  • 김제갑 : 임진왜란 때 순절한 원주목사

4. 근현대

  • 김구 :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신안동김씨 주요 인물

1. 조선 전기

  • 김계행 : 신안동김씨 최초의 문과 급제자, 가문의 중흥을 이끎

2. 조선 중기

  • 김상헌 :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대표적 인물
  • 김상용 : 김상헌의 형으로,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냄

3. 조선 후기

  • 김조순 : 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인물, 순조의 장인
  • 김홍근, 김흥근 : 세도정치 시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

4. 근현대

  • 김옥균 : 갑신정변의 주역인 개화파 지식인
  • 김좌진 :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 김가진 :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안동 김씨 관련 주요 유적과 문화재

1. 안동김씨태장재사

  •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 문화재 지정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특징
    - 1750년(영조 26)에 건립된 조선 후기 재사 건축물
    - 시조 김선평의 묘단을 지키고 제사를 받들기 위해 건립
    -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인 이상루(履霜樓) 포함

2. 삼태사묘

  • 위치 : 경북 안동시 북문동
  • 특징 
    - 983년(고려 성종 2년)에 건립
    -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 김선평, 장길을 모시는 사당
    -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 실시

3. 시조 김선평 묘단

  • 위치 : 안동김씨태장재사 위쪽
  • 특징 :
    - 시조 묘가 실전되어 『여지승람』의 기록을 근거로 설단
    - 정확한 묘소 위치를 확인할 수 없어 묘단을 세워 제사

4. 신도비각

  • 위치 :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마을 건너편 산기슭

5. 안동김씨 관련 현판 및 기록물

  • 이상루에 걸린 다수의 현판 (「태장주사중건기」, 「시조태사묘이단기」등)
  • 각 방마다 용도를 표시한 나무쪽 ('전임실', '참제원실' 등)

안동 김씨의 집성촌

구안동김씨 집성촌

  1. 경상북도 안동시 일대
  2. 경상북도 예천군 일대
  3. 충청남도 일부 지역
  4. 충청북도 일부 지역
  5. 경기도 일부 지역

신안동김씨 집성촌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소산마을)
  • 15세기 중반부터 형성
  • 삼구정, 청원루, 태고정, 동아고택, 안동 김씨 종택 등 여러 문화재 소재
  1. 경상북도 예천군 일대
  2. 충청남도 일부 지역
  3. 충청북도 일부 지역
  4. 경기도 일부 지역

특이사항으로, 소산마을(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은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가 함께 모여 사는 전통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두 가문의 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어, 안동金氏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안동 김씨의 인구 및 비율

구안동김씨 (舊安東金氏)

  • 2015년 기준 인구 : 789,790명
  • 2020년 추정 인구 : 약 1,000,000명 (호적, 족보, 기타 편입된 후손 포함)

신안동김씨 (新安東金氏)

  • 2020년 기준 인구 : 30,300명

비율 계산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인구 비율은 약 26.07 : 1로, 구안동김씨가 신안동김씨보다 약 26배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안동김씨 중 비율 (2015년 기준)

  • 구안동김씨 : 약 96.3%
  • 신안동김씨 : 약 3.7%

현재 안동 김씨의 관계

1. 구분과 인식

  • 두 가문은 여전히 별개의 가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구안동김씨는 김숙승을 시조로, 신안동김씨는 김선평을 시조로 받들고 있습니다.

2. 공통점

  • 두 가문 모두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 성을 사용합니다.
  • 신라 왕실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종친회 운영

  • 일반적으로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는 별도의 종친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구안동김씨는 '안동김씨대종회(安東金氏大宗會)'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신안동김씨는 '안동김씨대종중(安東金氏大宗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 지역별 특이사항

  • 일부 지역에서는 두 가문이 통합하여 종친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울진 지역에서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가 통합 종친회를 결성하여 약 35년간 함께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5. 상호 관계

  • 두 가문은 별개의 가문으로 인식되지만, 같은 본관을 사용하고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일부 지역에서는 통합 종친회 운영 등을 통해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안동 金氏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씨로,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뉘어 각각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두 가문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정치,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두 가문이 별개로 인식되고 있지만, 공통된 뿌리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서로 존중하며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동 金氏의 역사와 문화는 대한민국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가치와 의미가 계승될 것으로 보입니다.

안동 김씨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안동 김씨 가문은 정치,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는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습니다. 구안동김씨는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주로 무반 계열에서 활약했습니다. 반면 신안동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문반 계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특히 조선 후기 세도정치 시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안동 金氏의 집성촌과 문화유산은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안동김씨태장재사, 삼태사묘, 소산마을 등의 유적지는 안동 김씨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건축과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현재 안동 金氏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로 나뉘어 각각의 종친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통합 종친회를 운영하는 등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통된 역사적 뿌리와 문화적 유산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동 김씨의 항렬 체계는 두 가문이 22세부터 30세까지 동일한 항렬을 사용하다가 이후 세대부터 차이가 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두 가문이 오랜 기간 동안 같은 계보를 공유하다가 후대에 이르러 분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구 측면에서 볼 때, 구안동김씨가 신안동김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수가 적다고 해서 신안동김씨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이 덜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안동김씨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 시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한국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안동 金氏 가문은 그들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한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안동 金氏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가문 문화와 족보 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됩니다.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분화 과정, 항렬 체계, 종친회 운영 등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문 문화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동 金氏의 역사는 우리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합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안동 김씨 가문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따라서 안동 김씨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천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안동 김씨 가문은 그들의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며, 우리 문화의 발전과 계승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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