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후예, 왕이 하사한 본관을 가진 곡부 공씨 이야기
곡부 공씨(孔氏)는 세계적 성인 공자의 53세손 공소가 고려에 귀화하면서 시작된 성씨로, 1794년 정조대왕이 특별히 본관을 하사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유교 문화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한국 사회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켜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孔氏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공씨는 孔, 公, 貢 세 가지 한자로 표기되는 성씨가 있습니다.
공(孔)씨
2015년 기준 91,869명이 있으며 한국의 성씨 순위 5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53세손인 공소(孔紹)가 1351년 원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창원 공씨로 불렸으나, 1794년 정조대왕의 명에 따라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공(公)씨
김포 공씨가 대표적이며, 2000년 기준 741가구, 2,442명으로 우리나라 성씨 순위 150위입니다. 시조 공윤보는 당나라 시대인 755년(신라 경덕왕 14년)에 안녹산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했습니다. 김포 공씨는 벽동파와 문천파로 나뉘어 발전했습니다.
공(貢)씨
고려와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성씨로, 수원과 인천이 본관입니다. 수원 공씨의 시조 공천원은 고려 고종 14년(1227년)에 지문하성사 이부상서를 지냈으며, 인천 공씨에서는 조선시대에 여러 과거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곡부 공씨 기원과 특징
곡부 공씨는 세계적 성인인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479년)를 시조로 하는 성씨입니다.
우리나라 곡부 공씨의 시작
공자의 53세손인 공소(孔紹)가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공민왕의 비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소는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회원군에 봉해졌고, 창원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본관의 변천
처음에는 창원을 본관으로 사용했으나, 1794년 정조대왕이 "시조의 본관을 달리할 수 없다"며 공자의 고향인 곡부(중국 산동성 곡부현)로 본관을 하사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왕이 본관을 하사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주요 인물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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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孔紹) : 한국 곡부 공씨의 시조로,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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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 조선 초기의 명필로, 한성판윤과 보문각대제학을 지냈으며, 조선 최초의 순직 외교사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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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린 : 중종 때의 문신으로, 기묘사화 때 투옥되었다가 후에 경기도 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대의 규모
2000년 통계 기준으로 전국에 22,758가구, 73,093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성씨 중 5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과 경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곡부 孔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곡부 공씨의 주요 인물들을 시대 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인물
공소(孔紹, 1304~1381)
호는 창암으로, 원나라 한림원학사를 지내다가 1351년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며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랐고 회원군에 봉해졌으며, 목은 이색과 교유했습니다.
공여(1329~1413)
공소의 아들로, 집현전 태학사, 평장사, 지응양군천우위대장을 역임했습니다.
고려 말 조선 초 인물
공부(어촌공)
시문과 서예에 뛰어난 명필이었으며, 성균제주, 제학, 한성판윤,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좌명공신에 올랐고, 명나라 사신으로 6차례나 다녀왔으며, 1416년 천추사로 가던 중 순국했습니다.
조선 중기 인물
공서린(1483~1541)
호는 휴암으로, 1507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습니다.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조광조와 교류했습니다.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으나 후에 경기도 관찰사와 대사헌을 지냈습니다.
근대 인물
공성학(1879~1957)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부제학을 역임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기업가로 활동하며 인삼 경작 혁신을 주도하고, 고려삼업주식회사와 개성전기주식회사 등을 설립했습니다.
과거 급제자 현황
조선시대 전체적으로 문과 급제자 4명, 율과 급제자 11명 등 총 15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곡부 孔氏 과거급제자 현황
곡부 공씨의 과거 급제자 수에 대해서는 역사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문과 급제자
- 조선 전기 : 공서린이 1507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이는 가문의 대표적인 과거 합격 사례입니다.
- 총 인원 : 문과 급제자는 4명을 배출했습니다.
무과 급제자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는 25명을 배출했습니다.
율과 급제자
율과에서는 11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시대별 주요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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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 공여가 우왕 2년(1376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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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공서린이 1507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총 집계를 보면, 문과 4명, 율과 11명을 포함하여 전체 15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곡부 孔氏의 주요분파
주요 분파
곡부 공씨는 크게 두 개의 주요 분파로 나뉩니다.
어촌공파(漁村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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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공부(호 : 어촌공)를 파조로 하는 분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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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로 이름났으며, 보문각대제학을 지냈습니다.
고산공파(孤山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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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공은(호 : 고산)을 파조로 하는 분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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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절의를 지킨 충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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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동면 천동마을에 600년간 세거해왔습니다.
곡부 孔氏의 집성촌과 종친회 활동
주요 집성촌
전라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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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 동면 천동마을 : 600년간 세거해온 고산공파의 주요 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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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금과면 방성리 : 전체 40가구 중 30여 가구가 곡부 공씨이며, 공자의 64세손 공동이 임진왜란 때 입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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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풍양면 상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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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삼일포 일대
경상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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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 밀양 일대에 많이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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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이방면 상리
경기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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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궐동 : 1950년 이전에는 53가구 중 50가구가 곡부 공씨였으나, 현재는 10가구 정도만 거주하고 있습니다.
종친회 활동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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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제일에 고산서원과 영모재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가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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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추원재 앞에서 곡부 공씨 유래비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서울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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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송년회 등 종친 모임을 개최하여 종친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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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회와 연계하여 고향과 일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곡부 孔氏 문화재 및 유적지
중국 곡부의 3대 유적지
공묘(孔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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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평 규모의 대규모 사당으로, 중국 3대 고건축군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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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은 31.89m 높이로, 곡부시의 모든 건물은 이 높이를 넘지 못하도록 법제화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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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각은 중국 10대 누각 중 하나이며, 과거 공자와 맹자의 서적을 보관했던 곳입니다.
공부(孔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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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평 규모의 공자 후손들의 저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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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대에 걸쳐 장손들이 영성공 관직을 세습하며 거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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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0여 차례의 작은 제사와 4번의 큰 제사를 관장했던 곳입니다.
공림(孔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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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평 규모의 공씨 가족 묘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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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그루 이상의 나무와 2천여 개의 한나라 이후 비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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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무덤이 위치해 있습니다.
한국의 주요 유적지
고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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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 공씨 고산공파의 정신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영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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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제를 지내는 제실입니다.
추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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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곡부 공씨 유래비가 제막되었습니다.
곡부 孔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종중 활동과 사업
숭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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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제일에 고산서원과 영모재에서 추모제를 지내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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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일재서원(고산서원)에서 매년 한식날 전국의 후손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재산 관리 및 복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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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재산의 권리 취득, 보존, 처분 및 수익 사업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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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종원의 복지사업과 종원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실시합니다.
문화 계승 활동
역사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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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추원재 앞 곡부 공씨 유래비 제막을 통해 가문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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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례마을의 여일재서원을 통해 공은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교육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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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교육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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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를 통해 가문의 정신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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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종친회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종친 모임을 개최하여 종친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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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회와 연계하여 고향과 일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결론
곡부 공씨는 한국 성씨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세계적 성인 공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문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조선 정조대왕이 직접 본관을 하사한 유일한 성씨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인재를 배출하며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현재 곡부 공씨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발전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종친회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문화 계승 활동,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 사업, 종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곡부의 3대 유적지와 한국의 고산서원, 영모재 등을 통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시제와 제향을 통해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곡부 공씨는 단순한 혈연공동체를 넘어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발전하는 미래지향적인 종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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