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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명신 현담윤의 후예, 연주 현씨(延州 玄氏) 가문 탐구

aulir 2024. 11. 22.

연주 현씨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온 명문가문으로, 시조 현담윤(玄覃胤)을 중심으로 정치,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본 글에서는 연주 현씨의 역사적 기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주 玄氏의 기원과 특징

연주 현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평안북도 녕변군(현재의 영변)을 관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주 현씨 관련 이미지
연주 현씨 관련 이미지

시조와 역사적 배경

연주 현씨의 시조는 현담윤(玄覃胤)으로, 고려 의종 때 도령중랑장을 지냈습니다. 특히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연산군에 봉해졌습니다.

가문의 성장

연주 현씨가 중앙 정계에서 크게 성장하게 된 계기는 시조 현담윤과 그의 세 아들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장남 현덕수는 병부상서에 올랐고, 차남 현이후는 경상도안렴사를 지내며 광성군에 봉해졌습니다.

본관의 통합

현씨의 본관은 원래 연주, 성주, 창원, 순천 등 106개나 있었으나, 1747년(영조 23년) 정묘보를 편찬할 때 연주 현씨로 단일화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현씨가 시조 현담윤의 후손이라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적 분포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연주 현씨는 56,047명으로 현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체 현씨 인구는 약 88,824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930년 기준으로 연주 현씨는 북한 지역에 70%, 남한 지역에 30% 정도가 분포했으며, 특히 본향인 평안도 지방에 많이 거주했습니다.

연주 玄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연주 현씨의 시대별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려시대

시조와 초기 인물

  • 현담윤 : 고려 의종 때 도령중랑장을 지냈으며,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연산군에 봉해졌습니다.
  • 현덕수 : 시조의 장남으로 병부상서를 지냈으며,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조선시대

조선 전기

  • 현득리 :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냈고, 세조 8년에 원종공신으로 추록되었습니다.
  • 현일 : 자는 만여, 호는 교정으로 연천군수를 거쳐 중추원지사에 올랐습니다.

조선 후기

  • 현석문(1799-1846) : 기해박해 때 천주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 현진건 :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활동했습니다.

근현대

독립운동가

  • 현정경(1886-1941) : 대한통의부 법무위원장, 민족해방동맹 주석을 지냈습니다.
  • 현병근 : 호는 하죽,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항일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학계/예술계

  • 현제명 : 작곡가
  • 현상윤 : 고려대 총장
  • 현승종 : 성균관대 총장

이처럼 연주 현씨는 각 시대별로 관료, 독립운동가, 교육자, 예술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연주 玄氏의 주요 과거 급제자

연주 현씨의 과거 급제자들을 과목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문과 급제자

주요 급제자

  • 현필제 : 1844년(헌종 10년) 증광시 병과
  • 현재진 : 1874년(고종 11년) 증광시 병과
  • 현석태 : 1892년(고종 29년) 별시 병과
  • 현동건 : 1892년(고종 29년) 별시 병과
  • 현규근, 현기, 현기준

무과 급제자

  • 현광우
  • 현봉철
  • 현상우
  • 현상은
  • 현심우
  • 현일준

생원시 합격자

  • 현성학
  • 현홍렬

진사시 합격자

  • 현명리
  • 현병호
  • 현비승
  • 현석구
  • 현재복

음관 진출자

  • 현기준
  • 현재진
  • 현필제
  • 현진수

연주 현씨는 조선시대에 총 1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이 중 문과 5명, 사마시 7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주 玄氏 주요 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대표적인 분파

  • 삼남관북파
  • 박천파
  • 개천박천파
  • 하양평양파
  • 황해파
  • 천녕파
  • 평양파
  • 경성삭녕파
  • 평양외성파
  • 제주파[3]

제주도 분파

  • 거로파 : 현수인(맏아들) 계열로 제주시 거로 지역 정착
  • 신산파 : 현부인(둘째) 계열로 남원 지역 정착
  • 양의막파 : 현귀인(셋째) 계열로 성산 지역 정착
  • 함덕파 : 현우성의 후손들로 함덕 지역 정착[4]

항렬표

25세부터 40세까지의 항렬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25세 기(基) 33세 식(植)
26세 종(鍾) 34세 희(熙)
27세 섭(涉) 35세 배(培)
28세 병(柄) 36세 석(錫)
29세 환(煥) 37세 구(求)
30세 재(在) 38세 영(榮)
31세 용(鎔) 39세 휘(輝)
32세 영(泳) 40세 규(奎)

연주 玄氏 집성촌 및 종친회 현황

주요 집성촌

제주도 지역

  • 제주시 노형동
  • 서귀포시 호근동, 서호동, 법환동, 서홍동
  • 남제주군 성산면 온평리, 시흥리
  • 남원읍 남원리

내륙 지역

  •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장포리, 대전리[9]
  •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용정리
  • 대구 현풍읍 오산리 홀개마을

종친회 조직

중앙조직

  • 연주현씨 대종회
  • 연주현씨제주도친족회

지역별 종친회

  • 서울지역 종친회
  • 부산·경남지역 종친회
  • 대구·경북지역 종친회
  • 인천·경기지역 종친회
  • 광주·전남북 지역 종친회
  • 대전·충남부지역 종친회
  • 강원지역 종친회
  • 제주지역 종친회

직능별 모임

  • 현경회
  • 현산회
  • 연주회
  • 현법회

주요 활동

  • 시조 및 입도조 시제 봉행
  • 족보 발간
  • 종보 『연주』지 발행
  • 종친 간 친목 도모

연주 玄氏 관련 문화재 및 유적지

주요 사당과 재실

경헌사(景憲祠)

  •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용정리에 위치
  • 매년 3월 1일과 10월 1일 두 차례 향사를 지냄
  • 시조 현담윤을 모신 사당

낙은재

  • 대구 현풍읍 오산리 홀개마을에 위치
  • 입향조 현만극과 그의 아버지 현경준의 묘가 있음
  • 성국 현기택 행적비도 함께 보존

역사적 유적지

죽림정

  • 현담윤의 후손 현징이 건립한 정자

오리정 유적

  • 시조 현담윤의 장례 당시 상여가 멈추었던 역사적 장소
  • 현재 시조 현담윤의 묘소가 위치한 곳

집성촌 문화유산

홀개마을

  • 대구 현풍읍 오산리에 위치한 320년 전통의 집성촌
  • 외동(바깥마)과 내동(안마)으로 구성
  • 마을 입구에 현씨 선조들의 묘역과 비석이 보존됨

당산나무

  • 홀개마을의 상징적 문화유산
  •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짐

연주 현씨의 가문계승을 위한 노력

족보 편찬 활동

주요 족보 발간

  • 1844년 갑진보(甲辰譜) : 헌종 10년에 발간된 삼수보
  • 1901년 신축보(辛丑譜) : 최익현이 서문을 쓴 사수보
  • 1957년 정유보(丁酉譜) : 현응주가 서문을 쓴 육수보
  • 1982년 임술대동보(壬戌大同譜) : 현승종이 서문을 쓴 칠수보

문화 계승 활동

종친회 활동

  • 연주현씨대종회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종친회 조직 운영
  • 지역별 종친회와 직능별 모임(현경회, 현산회, 연주회, 현법회) 운영

제례 활동

  • 경헌사에서 매년 3월 1일과 10월 1일 두 차례 향사 봉행
  • 시조 현담윤과 선조들에 대한 제례 전통 계승

문화유산 보존

사당 관리

  •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용정리의 경헌사 관리
  • 선조들의 묘역과 비석 보존

가문 정신 계승

  • 연주현씨찬가 제작 및 전승
  • 종친회보 발간을 통한 가문 소식 공유
  • 화수회 등을 통한 친족 간 화목과 친목 도모

결론

연주 현씨는 고려시대 이래로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대표적인 성씨로서, 시대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며 가문의 명예를 이어왔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친회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가문 관리와 문화 계승 활동을 통해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연주 현씨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전통 가문이 나아가야 할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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