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부터 현대까지의 종합적 고찰
강릉 김씨는 신라 왕실의 후예로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시조 김주원으로 시작된 강릉 김씨의 역사는, 문과 97명, 무과 19명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정치, 문화,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
강릉 김씨의 유래와 특징
강릉 김씨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입니다.
시조와 유래
시조 김주원은 김알지의 21세손으로 시중 겸 병부령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각간을 지낸 김유정이었습니다.
785년 선덕여왕 6년,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군신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우로 알천을 건널 수 없어 입궐하지 못했고, 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즉위를 포기했습니다. 이후 원성왕은 그의 겸손함에 감복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했고, 이로 인해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주요 특징
족보의 특징
- 을축보라 불리는 강릉김씨 족보는 현존하는 족보 중 세 번째로 오래되었습니다.
- 본종만 기록하고 외파는 기록하지 않았으며, 자녀 기록도 출생순이 아닌 선남후녀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인구와 분포
- 2015년 기준 179,593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주요 세거지는 강원도 강릉시, 삼척시를 비롯해 경기도 양주시, 김포시, 충청남도 당진시 등입니다.
분파
강릉 김씨는 청풍파, 안동파, 습독공파, 임경공파 등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파는 독자적인 계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강릉 金氏의 시대별 주요인물
시대별로 강릉 김씨의 주요 인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시대
- 김주원(시조) : 시중(侍中) 겸 병부령을 지냈으며, 명주군왕에 봉해짐
- 김헌창 : 김주원의 아들로, 웅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이라 하였으나 실패
고려시대
- 김순식 : 고려 건국 초 명주장군으로 후백제 정벌에 공을 세움
- 김인존 :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직에 종사, 후에 수사도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음
- 김영석 : 김인존의 아들로 중서시랑평장사를 역임
조선시대
- 김시습(1435-1493) :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청간(淸簡)이라는 시호를 받음
- 김첨경(1525-1583) :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숙간(肅簡)이라는 시호를 받음
- 김상철(1712-1791) : 정조 때 영의정에 올랐으며, 충익(忠翼)이라는 시호를 받음
근현대
- 김주남(1931-2009) : 제15대 건설부 장관 역임
- 김진선(1946-) : 제32-34대 강원도지사 역임
- 김금래(1952-) : 제2대 여성가족부 장관 역임
- 김준기(1944-) : 동부그룹 회장 역임
이처럼 강릉 김씨는 각 시대별로 정치,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강릉 金氏 과거급제자 현황
강릉 김씨의 과거 급제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 급제자 현황
총 32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문과 | 97명 |
무과 | 19명 |
사마시 | 205명 |
역과 | 1명 |
의과 | 1명 |
음양과 | 2명 |
율과 | 1명 |
주요 특징
문과 급제자
-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만 114명을 배출했으며, 이는 당시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 특히 명종-숙종 대에 8명의 판서(선팔판), 영조-정조 대에 8명의 판서(후팔판)를 배출했습니다.
무과 급제자
-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순위에서 강릉 김씨는 76위를 기록했으며, 총 70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사마시 급제자
- 생원시와 진사시를 포함한 사마시에서 가장 많은 205명의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과거 급제 실적으로 인해 강릉 김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문가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강릉 金氏의 주요 분파 및 항렬표
주요 분파
강릉 김씨의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1계열
- 청풍파(16세손)
- 안동파(17세손)
- 부정공파(19세손)
- 옥가파(19세손)
- 습독공파
- 임경공파
2계열
- 강릉노암공파
- 강릉모안파
- 강릉옥가파
- 강릉옥계파
- 강릉송림파
- 강릉호명파
3계열
- 초당파
- 학포파
- 강릉가평파
- 조항파
- 신당파
- 모전파
- 금강덕원파
- 원산파
항렬표
강릉 김씨의 대동항렬은 다음과 같이 사용됩니다.
세대33-36세37-40세41-44세45-48세49-52세
세대 | 33-36세 | 37-40세 | 41-44세 | 45-48세 | 49-52세 |
항렬자 | 학병연경 | 진기남래 | 동유성현 | 만구명녕 | 무기유재 |
추가 항렬 특징
- 53-56세 : 성규종수
- 57-60세 : 상용재호
- 61-64세 : 순식환희
각 항렬자는 한자로도 표기되며, 십이지와 오행을 기준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강릉 金氏 집성촌 및 족보 관리 현황
집성촌 현황
주요 집성촌
- 강원도 :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강동면 상시동리와 하시동리, 사천면 판교리
- 경기도 : 양주시, 김포시, 용인시
- 충청남도 : 당진시,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 세종특별자치시 : 연서면, 전의면 관정리
- 전라북도 : 익산시 낭산면
- 경상북도 : 의성군 안계면
족보 관리
을축보(乙丑譜)
- 1565년 김첨경이 간행한 초간본으로, 현존하는 족보 중 세 번째로 오래된 족보임
- 전주 풍월당에서 간행된 목판본으로 99장 분량
- 현재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의 강릉김씨 후손가에 소장
족보의 특징
- 본종만 기록하고 외파는 기록하지 않음
- 자녀 기록은 출생순이 아닌 선남후녀 방식으로 수록
- 1714년 갑오보, 1743년 계해보, 1797년 정사보 등 13종의 후간 족보 편찬의 전형이 됨
종중 관리
강릉김씨대종회
- 위치 : 강릉시 임당동 88-11
- 1955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 중
- 주요 사업 : 재실 관리, 유물 보존, 대동보 발간, 문헌록 편집, 능림 보호
- 산하에 태명회, 강격회, 명원회 등 12개 회가 있음[12]
강릉 金氏 문화재 및 유적지
강릉 김씨와 관련된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주군왕릉
-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시조 김주원의 능묘
- 위치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
- 묘소 앞에는 숭렬전(崇烈殿)과 숭의재(崇義齋) 건립
- 묘 입구에 김주원 신도비 위치
사당 및 재실
숭렬전
- 무열왕 김춘추의 위패를 모신 사당
- 명주군왕릉 앞에 위치
숭의재
- 시조 김주원의 위패를 모신 재실
- 명주군왕릉 앞에 위치
창덕사
- 위치 : 강릉시 운정길 107-11
- 1965년 창건, 1994년 현 위치로 이건
- 한림공파 9위 선조의 위패 봉안
정려각
삼세사효자 정려각
- 김담, 김경황, 김경시, 김한 등 3대에 걸친 4명의 효자를 기리는 정려각
- 우암 송시열이 기문을 작성
전통가옥
찰방집
- 위치 : 강릉시 모산로 170-52
- 조선시대 전통 한옥으로 원래 강릉김씨가 대대로 거주
강릉 金氏의 미래 지향적 활동
강릉 김씨의 현대적 활동과 미래 지향적 노력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종중 조직의 현대화
대종회 운영
- 강릉시 임당동에 위치한 3층 규모의 독립 회관 운영
- 12개의 산하 조직(태명회, 강격회, 명원회 등) 운영을 통한 체계적인 종친 관리
- 27대 회장단 체제로 현대적 조직 구조 확립
주요 사업 활동
문화 보존 사업
- 재실 신축 및 중건 사업 추진
- 종중 유물의 체계적 보존 관리
- 문헌록 편집 및 대동보 발간
미래 지향적 활동
- 문화 및 청년지도 등 선양 사업 추진
- 종보 발행을 통한 종친 간 소통 강화
- 능림 보호 및 조림 사업을 통한 환경 보존
인재 양성
현대 사회 각 분야 진출
-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재 배출
- 기업인, 정치인, 학자 등 각계각층에서 리더십 발휘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종중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결론
강릉 김씨는 1,2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을축보로 대표되는 체계적인 가문 기록의 전통, 전국에 분포한 집성촌, 다양한 문화유산의 보존, 그리고 현대적 종중 운영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종중의 미래 지향적 활동과 인재 양성을 통해 전통 가문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전통 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강릉 김씨의 역사와 전통은 단순한 가문의 역사를 넘어 한국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대적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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