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방이 쓰레기봉지로, 주경 스님의 관세음보살 가피 이야기

지난 글에서 범행 스님의 폐병 치유 이야기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또 한 분의 근현대 선지식, 강릉 성원사를 일으킨 주경(周鏡) 스님의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스님이 대작 불사를 앞두고 겪었던 아찔한 사건과, 그 순간 관세음보살께 의지했던 간절한 마음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여강당 주경 스님, 그는 누구인가

주경 스님은 법호를 여강당(如江堂)이라 하며, 생전 큰스승으로 존경받았던 청화(淸華) 큰스님의 염불선(念佛禪) 수행을 이어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은 강릉 성원사의 회주로서 후학들을 이끌었으며, 계행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고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널리 전해집니다.

특히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오신채를 일절 들지 않으며 철저한 채식을 실천했고, 이러한 스님의 삶에 감화되어 그 가르침을 따르려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스님은 2010년 봄, 고향의 불자들에게 봉축 법문을 전하러 가던 길에 갑작스레 입적하여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런 스님이 아직 성원사를 일구기 전, 그러니까 강원도 양양의 홍련암에서 기도 정진에 몰두하던 시절부터 이미 남다른 기도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홍련암은 파도 소리가 법당 바닥의 구멍을 통해 울려 퍼지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유독 깊이 서려 있다고 전해지는 그 암자입니다. 그곳에서의 정진이 훗날 스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신심의 뿌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경 스님 이미지

2. 새로운 도량을 향한 원력

세월이 흐른 뒤, 주경 스님은 백두대간을 따라 새로운 수행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성원사 터를 발견하고, 이곳에 대작 불사를 세우겠다는 큰 원력을 세웠습니다.

스님의 이러한 원력과 그간의 정진을 지켜봐 온 여러 인연 있는 이들이 힘을 보태주었고, 마침내 불사를 시작할 수 있는 소중한 종잣돈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3. 손가방을 두고 온 그 순간

경상도의 한 지역에서 큰 시주금을 받은 주경 스님은, 그 돈을 손가방에 담아 직접 운전하며 강릉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불사의 씨앗이 될 소중한 돈이었기에, 스님은 그 가방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들른 어느 휴게소 화장실에서, 스님은 그만 손가방을 화장실 옷걸이에 걸어둔 채 깜빡 잊고 나와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차에 올라 한두 시간을 달린 주경 스님은, 강릉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야 요기를 하러 들른 휴게소에서 계산을 하려다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손가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스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가슴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4. 되돌아가는 길, 간절한 정근

스님은 지체 없이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갔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며 정신없이 달려가는 그 순간, 스님의 입에서는 저절로 관세음보살 정근이 터져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평소에도 늘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살아온 스님이었지만, 그날처럼 절박하고 간절하게 그 명호를 불러본 기억은 드물었다고 훗날 회고했습니다.

5. 화장실에 다시 도착하여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화장실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화장실을 청소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스님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혹시 화장실 옷걸이에 걸린 손가방을 보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청소부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손가방은 보지 못했고, 누군가 걸어놓은 비닐 쓰레기봉지가 하나 있어서 마침 치우려던 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황급히 되물었습니다. 비닐봉지가 아니라 손가방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재차 비닐봉지였다고 답했습니다.

6.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 가방

스님은 서둘러 화장실 문을 열고 옷걸이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가방은 걸어두었던 그 모습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스님은 급히 가방을 열어보았고, 그 안의 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순간 스님은 땅이 꺼질 듯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스님은 감사한 마음에 청소부 아저씨에게 사례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돈을 받아 든 아저씨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방금 봤을 때는 분명 비닐봉지였는데, 이게 손가방이었냐고 말입니다. 자신이 잘못 본 것 같지는 않은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며 의아해했습니다.

7. 스님이 내린 해석

작별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른 스님은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니, 스님으로서는 이 모든 상황을 관세음보살의 가피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화장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곳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그 가방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그곳을 스쳐 간 모든 이들의 눈에도 그 가방이 그저 버려진 쓰레기봉지로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스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눈에 그것이 값진 손가방으로 보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도 남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 모든 정황이, 관세음보살께서 위신력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려 그 가방을 지켜주신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8. 그 후, 맨손으로 이루어낸 큰 도량

이 일을 겪은 뒤, 주경 스님은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대작 불사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늘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맨손이나 다름없이 시작해, 강원도 산골 산꼭대기에 오늘날의 큰 도량을 완성해낸 것은 스님의 깊은 신심과 초인적인 기도 정진, 그리고 그 곁을 지켜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님은 생전 도량을 돌아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늘 불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라고.

마치며

주경 스님의 이야기는, 절박한 순간일수록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놓지 않았던 한 수행자의 간절함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삶 속에는 종종 찾아옵니다.

게시판 글에서 나눈 “보이지 않는 가피”에 대한 이야기처럼, 어쩌면 우리 곁에도 이미 이런 자비로운 손길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을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도, 주경 스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한 번 불러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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