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니 독송으로 득도한 수월 스님 이야기

지난 글에서 폐병을 다라니 독송으로 이겨내고 출가의 길로 들어선 범행 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근현대 한국 불교사를 살펴보면, 다라니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스님들의 이야기가 범행 스님 한 분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자료로도 잘 남아있는 한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라니 수행이 근현대 한국 불교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림자 없는 성자, 수월 스님

머슴살이에서 출가로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은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매우 독특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자랐는데, 성품이 단순하고 맑아 모기나 빈대 같은 미물조차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중 어느 탁발승에게서 전해 들은 수행 이야기에 깊이 감명받아, 서른 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 1883년 늦가을 출가를 결심합니다. 그가 은사로 모신 분은 근대 선불교의 큰 스승인 경허(鏡虛) 선사의 친형, 태허성원(太虛性圓) 스님이었습니다.

수월 스님 가상 이미지

배우지 못한 채 시작한 수행

수월 스님은 어려서부터 배움의 기회가 없어 문맹이었고, 게다가 머리도 그리 총명한 편이 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절에 들어온 뒤에도 경전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3년 동안 땔나무를 해오고 밥을 짓는 부목(負木)과 공양주 소임만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시절 인연이 무르익었던 것일까요. 수월 스님은 나무를 하고 밥을 짓는 틈틈이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 즉 이 사이트에서 소개해드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밤낮으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몸으로 일하면서도 입으로는 쉼 없이 다라니를 놓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이레 밤낮의 정진, 그리고 큰 빛

수행이 깊어지던 어느 시점, 수월 스님은 밤낮으로 대비주 삼매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레(7일)째 되는 밤, 마침내 그의 몸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며 크고 광대한 빛을 놓는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계기로 수월 스님은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증득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깨달음 이후 수월 스님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妄念智)를 얻었고, 잠이 없어졌으며, 아픈 사람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힘까지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문맹이었던 그가 이후로는 어떤 경전이든 한번 들으면 그대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행을 감추고 살아간 나날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수월 스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보임(保任) 공부를 위해 태허성원 스님이 계시던 절을 떠나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가서도, 신분을 숨긴 채 여전히 땔나무를 하며 수행에만 전념했습니다.

1892년 무렵 금강산 마하연사를 찾았을 때, 그의 얼굴을 알아본 스님들이 그를 선방의 조실(祖室)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수월 스님은 그 지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낮에는 여전히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고, 밤에는 절구통처럼 꼿꼿이 앉아 밤을 지새우며 정진했습니다. 말을 앞세우기보다, 몸소 실천하는 모습 자체로 가르침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 때문에 수월 스님은 후대에 “까막눈 선사”, “불목하니 선사”, “그림자 없는 선사”, “숨은 도인”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선지식 중 한 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참고로 알아두시면 좋은 부분

한 가지 짚어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대중에게는 흔히 수월 스님이 경허 선사의 직계 법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근래의 학술 연구에 따르면 수월 스님은 경허 선사가 아니라 그의 친형인 태허성원 스님의 법을 이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라니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라는 그의 수행 이력 자체는 여러 자료를 통해 폭넓게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2. 수월 스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건네는 것

학식이 아니라 정성이 먼저입니다

수월 스님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그가 글도 모르고 머리도 둔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경전의 깊은 뜻을 알아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수월 스님의 삶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줍니다.

뜻을 몰라도, 학식이 없어도, 오직 정성을 다해 소리를 지니는 것만으로도 깊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다라니는 뜻으로 풀이하기보다 소리 그 자체에 이미 공덕이 담겨 있다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수월 스님의 이야기는 바로 이 가르침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열매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었습니다

수월 스님은 나무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도 다라니 독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즉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선불교의 오랜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별히 조용한 법당에 앉아야만 수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노동 속에서도 마음을 다라니에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지난 “나의 수행일기” 글에서 아침 달리기를 하면서 다라니를 함께 독송하신다고 말씀드렸던 것과도 통하는 지점입니다. 다라니 수행은 결코 특별한 시간과 장소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3. 그 밖의 근현대 선지식들과 다라니

수월 스님 외에도, 근현대 한국 불교사에는 다라니 수행과 깊은 인연을 맺은 선지식들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집니다. 근대 불교 개혁을 이끌었던 용성(龍城) 스님은 대중이 한문 경전을 어려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경전을 한글로 옮겨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된 다라니와 경전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불교계에서 전해지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효성·용성·상월·광덕·숭산·통광 스님 등 여러 근현대 선지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비롯한 다라니 수행을 병행하며 후학들을 이끌었다고 전해집니다.

각 스님마다 수행의 계기와 구체적인 일화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다라니 독송이 참선이나 경전 공부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탕을 든든히 받쳐주는 수행법으로 함께해왔다는 사실입니다.

4.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것

수월 스님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 삶에 비추어보면, 몇 가지 실천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정성이 학식보다 앞선다는 것: 다라니의 깊은 뜻을 다 몰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반복하는 것 자체가 이미 수행입니다.
  • 일상 속에서도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도 다라니를 함께 지닐 수 있습니다.
  • 꾸준함이 결국 열매를 맺는다는 것: 수월 스님의 깨달음도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라, 나무를 하며 다라니를 놓지 않았던 오랜 나날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꾸준히 독송해오고 계신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역시, 화려한 법당이나 특별한 격식이 없어도 매일의 정성 속에서 그 힘을 키워가는 수행입니다. 수월 스님이 나무를 하며 다라니를 놓지 않았듯,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도 짧게나마 다라니 한 소절을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