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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광태 &#8211; 작가 신광태의 이야기가 있는 곳</title>
		<link>https://aulir.com</link>
		<description>신광태가 기록하는 삶의 조각들</description>
		
				<item>
			<title><![CDATA[올해 김장배추, 얼마나 심어야 할까 — 텃밭 5년차의 결론]]></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9]]></link>
			<description><![CDATA[<p>요즘 마트에 가면 다들 김장배추값 얘기를 합니다. "이번 겨울 김장배추 값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최근 중국산 배추에서 기준치를 넘는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수입 채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탓입니다.</p>
<p>사실 제 예측이라는 게 지금까지 딱히 맞아떨어진 적이 없습니다만, 이번만큼은 주변 반응을 봐도 그럴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p>
<p>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입니다. 믿을 수 있는 농가에서 배추를 직접 사 오거나, 절임배추를 주문하는 것.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텃밭 농사를 5년 넘게 지으며 몸으로 배운 사실을 나누고 싶습니다.</p>
<h2>김장배추 농사,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갑니다</h2>
<p>배추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물입니다. 진딧물과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방제를 소홀히 하면 잎을 순식간에 갉아먹어, 방치하면 한 포기도 제대로 건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자급을 위해 텃밭을 가꾸는 저 같은 사람도 결구가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는 최소한의 방제를 합니다.</p>
<h2>오해 없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h2>
<p>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배추 역시 재배 과정에서 병해충 방제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p>
<p>다만 우리나라는 작물별로 사용 가능한 농약 종류와 잔류허용기준을 법으로 엄격히 정해 놓고, 수확 전 안전사용기준(살포 후 며칠이 지나야 수확 가능한지)까지 관리합니다.</p>
<p>즉, 방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기준에 맞게 썼는가'가 핵심입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중국산 배추 사례는 애초에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성분이 검출됐다는 점에서 결이 다른 문제였습니다.</p>
<p>우리 농민들이 정성껏 기른 배추를 막연히 의심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배추 농사가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p>
<h2>그래서 내린 결론 김장배추 120포기</h2>
<p>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내가 좀 더 심자."</p>
<p>원래 매년 김장용으로 30포기 안팎을 심어왔는데, 올해는 과감히 120포기를 심었습니다. 저희 집 김장에 필요한 양은 여전히 30포기 정도면 충분하니, 나머지 90포기는 그동안 크고 작은 신세를 진 지인들에게 나눠드릴 생각입니다. 배추값 걱정에 마음 쓰실 분들께 작은 선물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p>
<p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4/202609/6a9772123f24a6235033.jpg" alt="올해 심은 김장배추" width="1200" height="630" /> 올해 심은 김장배추</p>
<h2>값을 매길 수 없는 안심</h2>
<p>텃밭 농사를 짓다 보면 늘 느끼는 게 있습니다. 내 손으로 기른 작물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안심을 줍니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보다 품은 훨씬 많이 들지만, 벌레와 씨름하며 키운 배추 한 포기 한 포기에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p>
<p>올겨울, 텃밭에서 자란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가 여러 집 밥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올해 김장,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p>]]></description>
			<author><![CDATA[신광태]]></author>
			<pubDate>Wed, 02 Sep 2026 09:49: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4"><![CDATA[그날의 생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를 브랜드로 만드는 방법]]></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8]]></link>
			<description><![CDATA[<p>오랜만에 홈페이지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었습니다. '나를 브랜드로 만드는 방법'으로 전면 개편한 것입니다.</p>
<p>이렇게 결심하게 된 계기는 최근 제가 펴낸 책, 「나를 브랜드로 만드는 법」 때문입니다. 책을 쓰면서, 그리고 책이 나온 이후 여러 독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신이 하나 생겼습니다.</p>
<p>'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이 이제는 연예인이나 유명 작가, 정치인, 기업 대표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p>
<h2>왜 지금, 개인 브랜드인가!</h2>
<p>자영업을 하시는 분이든, 학생이든, 농사를 짓는 분이든 상관없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신뢰할 수 있는 상표처럼 만들어 가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에 가까워졌습니다. <br />예전에는 실력만 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그 실력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기회로 이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p>
<p>책에서 저는 그 실천 방법 중 하나로 '네이버 인물등록 검색'을 예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물검색이라고 하면 유명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작가 같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p>
<p>그렇다면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우리도 그 특별한 직업을 하나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서 유명 가수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p>
<p>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되는 길도 매우 험난합니다. 그런데 '작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길만큼은 왠지 우리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p>
<p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4/202608/6a955d0fecbc96044850.webp" alt="개인 브랜드, 네이버 인물등록 검색 화면" width="763" height="844" /> 네이버에 필자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p>
<h2>책 한 권이 만드는 변화</h2>
<p>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도서를 한 권 발간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이버에 당당히 '작가'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네이버 인물등록 검색의 대상이 됩니다.</p>
<p>이렇게 작가가 되어 인물등록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을 저는 책 속에 하나하나 담았습니다. 누구든 순서대로 따라 하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p>
<p>물론 변수는 있습니다. 나와 이름이 같은 유명인이 이미 존재하는 경우, 검색 결과에서 경쟁을 뚫고 상위에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p>
<p>그러나 불가능한 영역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셀프 브랜딩'이 시작됩니다.</p>
<p> </p>
<h2>도메인과 홈페이지, 그리고 본명의 힘</h2>
<p>셀프 브랜딩의 핵심 중 하나는 자신만의 고유한 도메인을 등록하고, 그 위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때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p>
<p>이 공간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명으로 남기는 글, 본명으로 쌓아가는 정보들이야말로 여러분의 가치를 서서히 끌어올리고, 검색 결과의 순위 변화를 만들어내는 진짜 힘이 됩니다.</p>
<p>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인물검색이 된다고 해서 대체 뭐가 달라지는데?"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조금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판도 자체가 완전히 바뀝니다.</p>
<h2>명함 한 장의 순간</h2>
<p>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업체나 공공기관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명함을 건네거나, 이메일로 제안서를 보내는 일이 잦을 것입니다.</p>
<p>그런데 명함을 받아 든 담당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신이라는 사람을 확인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결국 가장 먼저 하게 되는 행동은 검색엔진에 당신의 이름을 입력해 보는 것입니다.</p>
<p>바로 그 순간, 네이버 인물검색에 당신이 등장하고, 정돈된 홈페이지까지 함께 노출된다면 어떨까요. 신뢰도는 순식간에 달라지고, 계약이나 협업이 성사될 가능성 또한 눈에 띄게 높아집니다.</p>
<p>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개인 브랜딩'의 실질적인 힘입니다.</p>
<h2>새로운 시작, 함께 걸어가겠습니다</h2>
<p>이번 홈페이지 개편은 이러한 고민과 실천의 결과물입니다. 관세음보살 이야기로 쌓아왔던 마음의 이야기들은 소중히 이어가되, 이제는 이 공간을 통해 저 신광태라는 이름 석 자를 하나의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기록하려 합니다.</p>
<p>퇴직 후 30여 년의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화천군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역사해설을 하고, KBS 라디오 통신원과 시민기자, 지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이야기들, 그리고 화천인사이트를 통해 만나 온 지역의 이야기들을 앞으로 이 홈페이지에 차곡차곡 담아가겠습니다.</p>
<p>무엇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도 이 방법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일을 하고 계시든 상관없습니다.</p>
<p>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 하나씩 준비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p>
<p>새롭게 단장한 이 공간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유용하고 진솔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신광태]]></author>
			<pubDate>Mon, 31 Aug 2026 19:54: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4"><![CDATA[그날의 생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백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관세음보살과의 관계]]></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7]]></link>
			<description><![CDATA[<h2>어제는 백중이었습니다</h2>
<p>어제(음력 7월 15일)는 불교의 큰 명절 중 하나인 <strong>백중(百中)</strong>이었습니다. 이 사이트를 찾아주시는 분들 중에도 절에서 백중기도 안내 문자를 받아보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오늘은 백중이 정확히 무엇을 기리는 날인지, 그리고 이 사이트의 중심 주제인 관세음보살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리해보려 합니다.</p>
<h2>백중이라는 이름의 유래</h2>
<p>백중은 불교 용어로는 <strong>우란분절(盂蘭盆節)</strong> 또는 <strong>우란분재(盂蘭盆齋)</strong>라 부릅니다. "우란분"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ullambana)"를 음역한 것으로,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의 <strong>도현(倒懸</strong>)으로 번역됩니다. 지옥과 같은 악도에 떨어진 이들이 마치 거꾸로 매달린 듯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p>
<p>한편 민간에서는 이날을 <strong>백종(百種)</strong>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여름 농한기에 접어들어 지주가 머슴들에게 하루 쉬게 해주던 <strong>머슴날</strong>의 풍속과도 결합되어, 오늘날 백중은 불교 신앙과 우리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이 함께 어우러진 명절로 자리 잡았습니다.</p>
<p><img class="aligncenter"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90dc9548e176049075.webp" alt="백중 이미지" width="1200" height="634" /></p>
<h2>목련존자의 효심에서 비롯된 명절</h2>
<p>백중이 불교의 명절이 된 데에는 <strong>목련존자(目連尊者)</strong>의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신통제일로 꼽히던 목련존자는, 출가 후 신통력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생전의 업보로 아귀도와 지옥에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p>
<p>아들의 힘만으로는 어머니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달은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고, 부처님께서는 하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수행을 마친 여러 스님들께 정성껏 공양을 올리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 공덕으로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마침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p>
<p>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오늘날에도 전국의 사찰에서는 백중이 되면 세상을 떠난 조상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strong>합동천도재</strong>를 봉행합니다.</p>
<p>부처님오신날과 더불어 한 해 중 가장 많은 불자들이 참여하는 불교 의식으로 꼽힐 만큼, 백중은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옅어져 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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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그렇다면 관세음보살과는 어떤 관계일까</h2>
<p>여기서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백중, 즉 우란분재는 교리적으로 <strong>관세음보살보다는 지장보살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명절</strong>입니다.</p>
<p>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스스로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분이고, 실제로 오늘날 사찰의 백중 천도재는 대부분 49일간 지장보살을 향한 기도를 함께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천도를 비는 자리에서 지장보살께 의지하는 것은, 이러한 본원(本願)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p>
<p>그렇다고 이 자리에 관세음보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천수경 편에서 소개해드린 신묘장구대다라니, 즉 관세음보살의 대비주(大悲呪)는 천도재를 비롯한 여러 불교 의식에서 폭넓게 함께 독송됩니다.</p>
<p>관세음보살의 자비는 살아있는 이의 현세 고통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이의 영가를 향해서도 두루 미친다고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즉 백중 천도재에서는 지장보살의 본원이 중심에 서고,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그 곁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p>
<h2>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h2>
<p>백중이 이미 지나갔더라도, 오늘 이 글을 읽으신 김에 세상을 떠난 인연 있는 이들을 잠시 떠올려보시고, 다라니 한 소절을 그분들을 위해 회향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조상을 향한 마음이 살아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오늘도 조용히 일러주고 있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Fri, 28 Aug 2026 09:57: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애드센스 승인, 단 한 번 만에 통과했습니다]]></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6]]></link>
			<description><![CDATA[<p>블로그를 운영해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구글 애드센스 광고입니다. 잘만 배치하면 사이트 디자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지만, 잘못 운영하면 방문자들에게 불만과 짜증을 안겨주는 애물단지가 되기도 합니다.</p>
<h2>애드고시라 불리던 시절</h2>
<p>한때 구글 애드센스는 블로거들에게 수익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파이프라인이었습니다. 승인을 받기가 워낙 까다로워서 "애드고시"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몇 번이고 반려당하며 마음을 졸이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도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p>
<p>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AI가 검색의 자리를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되면서, 예전만큼 검색엔진을 통해 사이트로 유입되는 사용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드센스를 통한 광고 수익도 예전만큼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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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그래도 시도해본 이유</h2>
<p style="text-align:center;">사정이 이렇다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승인 신청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청한 지 딱 일주일 만에 승인 소식을 받았습니다.<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824e5917cd34567334.webp" alt="애드센스 승인 통보 메시지" width="732" height="658" /> 애드센스 승인 통보 메시지</p>
<p>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여러 사이트로 애드센스 승인을 받아본 경험이 대략 20여 회쯤 됩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한 번에 쉽게 승인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p>
<p>많게는 열 번 넘게, 적어도 서너 번은 불승인을 받은 뒤에야 겨우 통과되곤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있다 보니, 이번에도 큰 기대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단 한 번의 시도로 결과가 나왔습니다.</p>
<h2>지금은 자동광고 상태입니다</h2>
<p>현재는 우선 자동광고 방식으로 운영 중이라, 광고 배치가 다소 산만하고 어수선한 느낌이 있습니다. 방문자 입장에서 보시기에도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모습일 것 같습니다.</p>
<p>앞으로는 이 부분을 체계적으로 다듬어나갈 계획입니다. 사이트 전체의 디자인과 콘텐츠 배치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어느 위치에 광고를 두어야 방문자분들의 독서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해서, 수동 광고 방식으로 차근차근 정리해나가겠습니다.</p>
<h2>마무리하며</h2>
<p>이 사이트를 정성껏 채워온 시간들이 이런 작은 결실로 하나씩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광고 배치를 정리해나가는 과정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소소한 시행착오들도 이 게시판을 통해 차근차근 나누어보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Mon, 17 Aug 2026 08:58: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 워드프레스 기초 안내서]]></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5]]></link>
			<description><![CDATA[<p>이 사이트를 함께 지어오면서, 그동안 쌓인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제 실제 책으로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p>
<h2><strong>어떤 책인가</strong></h2>
<p>주제는 '<strong>워드프레스 기초</strong>'입니다. 처음에는 전자책으로만 출간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 귀농·귀촌을 하신 60대 이후 어르신들 중에도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갖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
<p>이런 분들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편안하게 여기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 <strong>종이책과 전자책 두 가지 형태로 함께 출간</strong>할 계획을 세웠습니다.</p>
<p><img class="aligncenter"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f9d0b427795953863.webp" alt="" /></p>
<h2><strong>이 사이트가 곧 교재입니다</strong></h2>
<p>책의 구성은 특별한 이론서가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홈페이지 자체를 예시로 삼아 <strong>누구나 쉽게, 아주 적은 비용으로 자신만의 웹 하우스를 지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하기 형식</strong>으로 풀어내는 방식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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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실제로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드는 웹호스팅 비용이 한 달에 3,500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큰 부담 없이 누구나 시작해볼 수 있는 저예산 프로젝트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이는 셈입니다.도메인을 정하는 방법부터, 워드프레스를 설치하고, Kadence 테마로 기본 틀을 잡고, 필요한 플러그인을 하나씩 설치해 게시판과 검색엔진 등록까지 마무리하는 전 과정을,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도 부담 없이 따라오실 수 있도록 순서대로 풀어낼 예정입니다.</p>
<h2><strong>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strong></h2>
<p>집필을 시작하고 나니, 스스로도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막힘없이 원고가 쌓여가는 요즘의 흐름을 보면, 빠르면 이번 8월 중으로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p>
<p>이렇게 술술 풀려나가는 요즘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그동안 꾸준히 이어온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 기도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p>
<p>지난번 소개해드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이야기처럼, 이번에도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가피가 함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원고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p>
<h2><strong>책이 완성되면</strong></h2>
<p>책이 완성되는 대로, 이 사이트를 통해 가장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이 사이트를 지켜봐 주시고 함께 다라니 수행의 여정을 나눠주신 여러분께,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로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책의 진행 상황도 이 게시판을 통해 틈틈이 전해드리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Sat, 15 Aug 2026 07:56: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길고양이, 그리고 참새들과의 5년]]></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4]]></link>
			<description><![CDATA[<p>집 주변을 오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준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갑니다. 그 시간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오늘 이 자리에 정리해봅니다.</p>
<h2><strong>처음의 조심스러움</strong></h2>
<p>처음에는 사람을 몹시 경계하는 녀석들이라,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밥을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그릇을 놓다 보니 뜻밖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개미들이 새까맣게 꼬여들어, 정작 고양이보다 개미들이 먹어치우는 양이 더 많은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p>
<h2><strong>세월과 함께 바뀐 얼굴들</strong></h2>
<p>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낯익었던 길고양이 몇몇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자리를 새로운 녀석들이 채워갔습니다. 오가는 얼굴은 바뀌어도, 밥을 챙기는 마음만은 한결같이 이어져 온 셈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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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시간이 지나면서 녀석들은 점점 집 가까이, 울타리까지 넘어오게 되었고, 그래서 저도 방식을 바꾸어 데크 탁자 위에 밥을 놓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두면 예전처럼 개미들이 다시 꼬일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p>
<p><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d27c6a1c434828904.webp" alt="" /></p>
<h2><strong>이번엔 새들이 찾아왔습니다</strong></h2>
<p>그런데 데크에 밥을 놓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늘어났습니다. 물까치와 까치, 그리고 참새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골칫거리는 참새였습니다.</p>
<p>처음에는 겨우 두 마리 정도가 찾아오나 싶더니, 어디서 소문이라도 낸 것인지 어느새 주변의 참새들이 죄다 몰려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밥만 먹고 얌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녀간 자리마다 사방에 배설물을 남겨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p>
<p><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d27dca31f85283666.webp" alt="" /></p>
<h2><strong>예전의 나였다면</strong></h2>
<p>돌이켜보면, 예전의 저였다면 이 참새들을 성가신 존재로만 여기고 어떻게든 쫓아내거나 잡을 궁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p>
<p>여름철이면 이 참새들이 정원을 어지럽히는 온갖 해충들을 잡아먹어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이것이야말로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관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p>
<p><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d27fc2e8531248727.webp" alt="" /></p>
<h2><strong>배설물이야 닦으면 그만입니다</strong></h2>
<p>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배설물이야 매일 물걸레로 한 번씩 닦아내면 그만인 일입니다. 그 정도의 수고로움으로 작은 생명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p>
<p>지난 글에서 나누었던 개미 이야기처럼, 이 길고양이와 참새들과의 5년 역시 저에게는 작은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져 온 시간이었습니다. 귀찮음보다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앞서게 된 것, 이 또한 그동안 이어온 다라니 독송이 제 마음에 남긴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Thu, 13 Aug 2026 11:12: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미움은 미움으로 풀리지 않는다 — 법구경을 읽으며 떠올린 일]]></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3]]></link>
			<description><![CDATA[<p>"미움은 미움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다. 미움은 미움이 없을 때에만 풀어진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법구경의 이 구절을 다시 마주하며, 얼마 전 있었던 작은 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p>
<h2><strong>이웃과의 작은 다툼</strong></h2>
<p>며칠 전, 이웃과 사소한 일로 언짢은 감정이 오갔습니다. 텃밭 경계에 걸쳐 자란 나뭇가지 하나를 두고 서로 언성이 조금 높아졌던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저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가" 하는 불쾌함이 앞섰습니다.</p>
<p>그리고 하루 이틀은 그 마음이 가시지 않아, 그 이웃과 마주치면 괜히 눈을 피하고 인사도 생략하고 지나갔습니다.</p>
<p>돌이켜보면 그때 제 마음은 미움에 미움으로 답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날 선 말투에 저 역시 날을 세운 침묵으로 맞섰고, 그 결과 며칠 동안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습니다.</p>
<p>법구경의 구절이 말하는 것처럼,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려 하니 그 미움은 사라지기는커녕 제 안에서 오히려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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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독송하며 든 생각</strong></h2>
<p>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독송하던 중이었습니다. 다라니를 외우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그 이웃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p>
<p>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화가 나는 대신 "저분도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p>
<p>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그 순간 미워했던 것은 상대방이라기보다 제 마음속에서 부풀려진 어떤 것 그 자체였습니다. 상대는 그저 자신의 정원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을 텐데, 저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저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미움을 키워왔던 것입니다.</p>
<h2><strong>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서</strong></h2>
<p>다음 날 아침, 저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상대도 조금은 머쓱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p>
<p>특별히 사과의 말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짧은 인사 한마디로 며칠간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던 감정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습니다.</p>
<h2><strong>법구경의 구절을 다시 새기며</strong></h2>
<p>이 일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 구절의 의미가 온몸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움에 미움으로 맞서는 동안에는 결코 그 미움이 풀리지 않았습니다.</p>
<p>오히려 제가 그 미움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와 상관없이 제 안의 불편함이 먼저 걷혔습니다.</p>
<p>지난 글에서 나눈 법구경의 다른 구절처럼,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앞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미움을 내려놓는 일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p>
<p>오늘도 혹시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이나 미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그 마음을 붙들고 있기보다 먼저 내려놓아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평온이 시작될 것입니다.</p>
<p><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afa82d3bbb7914909.webp" alt="" /></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Tue, 11 Aug 2026 19:34: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왜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까 — 보이지 않는 가피에 대하여]]></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2]]></link>
			<description><![CDATA[<p>수행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참선에 몰두하는 분이 있고, 염불로 하루를 여는 분이 있으며, 저처럼 다라니 독송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 걷는 길이 다른 만큼, 그 길을 걷는 이유와 바라는 바 역시 제각각일 것입니다.</p>
<h2><strong>많은 이들이 품는 의문</strong></h2>
<p>그런데 이 길을 걷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의문이 있습니다. "<strong>이렇게 열심히 다라니를 지송하는데, 왜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strong>" 하는 의문입니다. 저 역시 이 물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p>
<p>불교에서는 흔히 이를 업장(業障)으로 설명합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업이 두터운 탓에, 그 결과가 드러나기까지는 아직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이 물음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p>
<h2><strong>보이지 않았기에 몰랐을 뿐</strong></h2>
<p>당신도 모르는 사이, 몸속 어딘가에서 커다란 종양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꾸준히 이어온 다라니 수행의 힘으로 그것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면, 그 사실을 당사자조차 끝내 알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됩니다.</p>
<p>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가장 큰 가피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p>
<h2><strong>"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물음도 마찬가지입니다</strong></h2>
<p>또 하나,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strong>나는 매일 기도하는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걸까?</strong>" 하는 원망 섞인 질문입니다.</p>
<p>저는 이 물음에도 같은 이치를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지금 겪고 있는 일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시련이 예정되어 있었을지 모릅니다.</p>
<p>다만 그동안 쌓아온 기도의 힘 덕분에, 그 무게가 지금 이 정도로 가벼워진 채 찾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 겪지 않은 더 큰 불행을 결코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이런 가능성을 좀처럼 헤아리지 못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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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strong></h2>
<p>수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눈에 보이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종양이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듯, 더 큰 불행이 비껴간 것을 알지 못했듯, 우리가 쌓아가는 정성의 상당 부분은 애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자리에서 조용히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p>
<p>그러니 오늘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는 분명 달라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믿음 하나를 붙들고, 오늘도 다라니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을 이어갑니다.</p>
<p><img class="aligncenter"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9a00842b1e5232460.webp" alt="" /></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Mon, 10 Aug 2026 18:55: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음이 앞선다 — 법구경 한 구절을 읽으며]]></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1]]></link>
			<description><![CDATA[<p>법구경의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strong>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이 모든 것에 앞선다</strong>."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지금까지 제가 다라니를 독송해온 이유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짚어주는 것 같았습니다.</p>
<p><img class="alignnone"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824a6d40ce6457016.webp" alt="" /></p>
<h2><strong>마음이 먼저라는 것</strong></h2>
<p>우리는 흔히 어떤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상황이나 상대방 탓을 먼저 합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해서", "그 상황이 그래서"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정반대로 이야기합니다. 결과에 앞서 먼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strong>나의 마음</strong>이었다는 것입니다.</p>
<p>수레바퀴가 마부를 따라가듯, 우리가 겪는 슬픔이나 괴로움도 결국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쁜 마음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요지입니다.</p>
<h2><strong>제 삶 속의 사례 하나</strong></h2>
<p>오늘 아침 이 게시판에 올렸던 개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집 안에 들어온 개미를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의 "귀찮다", "없애야 한다"는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은 결국 하나의 생명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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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반대로 오늘은 "이 녀석도 살려고 나온 존재"라는 마음이 먼저 있었기에, 화장지로 가볍게 옮겨 정원에 놓아주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개미였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strong>먼저 일어난 마음</strong>이었습니다.</p>
<h2><strong>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strong></h2>
<p>운전 중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셔도 좋습니다. "저 사람이 위험하게 운전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이 먼저 서면 그저 속도를 줄이고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감히 나를 무시하나"라는 마음이 먼저 서면 경적을 울리고 화를 내는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 뒤에는 어김없이 하루 종일 남는 불쾌한 감정, 즉 슬픔과 닮은 무언가가 뒤따라옵니다.</p>
<p>상황은 같았지만, 먼저 일어난 마음에 따라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p>
<h2><strong>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과 연결지어 보면</strong></h2>
<p>이 사이트에서 꾸준히 이야기해온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도, 결국은 이 구절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
<p>매일 정성껏 다라니를 지니는 것은, 화려한 결과를 바로 얻기 위함이 아니라 <strong>먼저 일어나는 그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strong>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쁜 마음이 일어나기 전에 자비로운 마음이 먼저 자리 잡도록, 그 자리를 매일 조금씩 넓혀가는 것. 이것이 제가 이해하는 다라니 수행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p>
<p>수레바퀴가 마부를 따르듯, 오늘 제가 낸 마음이 내일의 저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 마음자리를 살피는 일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해보려 합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5:57:0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10만 독 믿는 것]]></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20]]></link>
			<description><![CDATA[<p>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경을 다시 찾아 읽어보다가,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지니고 독송하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아래 여러 신장들이 밤낮으로 곁을 지켜준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p>
<h2><strong>제가 걸어온 길</strong></h2>
<p>7월 1일부터 시작한 이 독송이,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져 어느덧 상당한 횟수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숫자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p>
<p><img class="aligncenter"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7ddbbc987c5552330.webp" alt="" /></p>
<p>저는 지금 <strong>10만 독</strong>을 1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경전 속 그 구절을 읽고 나니, 이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에 더욱 확신이 실립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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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제가 믿는 것</strong></h2>
<p>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 10만 독을 채우는 그날, 경전이 전하는 것처럼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위신력과 그를 보좌하는 신장들의 가호가 반드시 제 곁에 함께할 것이라고 말입니다.</p>
<p>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일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제가 겪어온 크고 작은 변화들, 이 게시판에 하나씩 기록해온 그 순간들이 이미 그 믿음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p>
<p>누군가는 이런 믿음을 미신이라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믿음이 저를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다라니 앞에 앉게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제 마음을 조금씩 자비롭고 평온하게 바꾸어왔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믿음은 저에게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p>
<h2><strong>남은 길</strong></h2>
<p>10만 독까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경전이 전하는 그 가피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기보다, 지금처럼 하루하루 정성을 쌓아가는 이 과정 자체에 이미 깃들어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p>
<p>앞으로도 이 믿음을 붙들고, 남은 독송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계속해서 이곳에 기록해나가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0:54: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개미 한 마리, 그리고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26,000독]]></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9]]></link>
			<description><![CDATA[<p>오늘 집 안을 돌아다니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이어지는 무더위를 피해 들어온 것인지, 더위를 식히려 열어둔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온 냄새에 이끌려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8/6a77b37c1c3a13295740.webp" alt="거실에 들어 온 개미 이미지" width="1200" height="631" /> [거실에 들어 온 개미 이미지]</p>
<h2><strong>화장지로 가볍게 체포하며</strong></h2>
<p>저는 화장지로 그 개미를 살며시 감싸 정원에 내려놓았습니다. 개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디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예전의 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p>
<h2><strong>과거의 저였다면</strong></h2>
<p>과거의 저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개미를 죽였을 것입니다. 한 마리를 그냥 두면 번식할지도 모르고, 머지않아 수많은 동료 개미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실용적이라면 실용적인 판단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안에는 생명에 대한 별다른 고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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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문득 스친 생각</strong></h2>
<p>그런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strong>이 녀석도 살려고 이 세상에 나온 존재인데, 내가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strong>"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개미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명이 있는 것들 중에 정말로 하찮은 것이란 없습니다.</p>
<p>물론 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모기나 진드기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목숨을 해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
<h2><strong>26,000독을 넘기며</strong></h2>
<p>오늘로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독송이 26,000회를 넘겼습니다. 개미 한 마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느끼며, 이것이 그동안 쌓아온 독송의 힘으로 인한 심경의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p>
<p>거창한 깨달음이라기보다, 아주 작은 생명 하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자비심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작은 변화들을 하나씩 이곳에 기록해나가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07:55: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 다라니 가피에 대한 단상]]></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8]]></link>
			<description><![CDATA[<p>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과학적으로 따져보려 해도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 제가 가장 대표적으로 꼽고 싶은 것이 바로 다라니 독송으로 인한 가피입니다.</p>
<h2><strong>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strong></h2>
<p>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은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다", 혹은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일종의 자기암시 효과로 결과가 좋게 나올 수 있다"는 식입니다.</p>
<p>조금 더 나아가면 아예 미신으로 치부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 역시 이런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입니다.</p>
<h2><strong>그러나 경험자들의 이야기는 다릅니다</strong></h2>
<p>그런데 실제로 다라니를 독송하며 가피를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다릅니다.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strong>당시에는 전혀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바라던 결과가 이미 이루어져 있더라</strong>"는 것입니다.</p>
<p>가피는 그 순간에 요란하게 드러나기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여러 체험담을 통해 확인되는 지점입니다.</p>
<h2><strong>저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strong></h2>
<p>제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렸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취득이 바로 그 사례입니다. 당시 며칠간 습관적으로 독송해오던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수험장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되뇌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84점이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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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돌이켜보면 이 결과는 상식적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 달간 유튜브 강의 영상을 본 것이 공부의 전부였고, 시험 전 풀어본 기출문제에서도 60점을 넘긴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p>
<p>그런 제가 실전에서 84점이라는 점수를 받아 들었을 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다라니의 가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p>
<h2><strong>다시 시작한 정진, 25,600독</strong></h2>
<p>이후 한동안 다라니 독송에서 손을 놓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7월 1일부터 "이번에는 제대로 10만 독을 목표로 해보자"는 각오로 다시 시작했고, 오늘로 38일째, 25,600독에 도달했습니다.</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37"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25600%EB%8F%85-159x300.webp" alt="25600독" width="159" height="300" /></p>
<h2><strong>몰두를 위한 새로운 동행</strong></h2>
<p>이 정진에 조금 더 몰두하고자, 최근 김호성 님께서 쓰신 《관세음보살이여, 관세음보살이여》라는 책도 구입했습니다. 부제가 인상 깊었습니다. "<strong>당신은 누구시길래 늘 내 편이 되어 나를 도와주시나요.</strong>"</p>
<p>이 짧은 부제 하나가,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온 가피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38"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A%B4%80%EC%84%B8%EC%9D%8C%EB%B3%B4%EC%82%B4%EC%9D%B4%EC%97%AC-185x300.webp" alt="관세음보살이여" width="185" height="300" /></p>
<h2><strong>마치며</strong></h2>
<p>다라니 독송과 염불은 과학이나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가피를 동반한다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p>
<p>그리고 그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까지 쌓아온 25,600독이라는 걸음걸음 속에서 조금씩 확인해가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Fri, 07 Aug 2026 16:52: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다라니를 거부하는 사람들 — 어느 스님의 말씀]]></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7]]></link>
			<description><![CDATA[<p>오늘은 얼마 전 뵌 스님께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다라니 독송과 관련해 흥미로우면서도 곱씹어볼 만한 말씀이었습니다.</p>
<h2><strong>스님께서 하신 말씀</strong></h2>
<p>스님께서는 다라니 독송을 유독 거부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로 <strong>빙의(憑依)된 사람</strong>을 꼽으셨습니다.</p>
<p>말씀하신 이유는 이렇습니다. 몸에 붙은 영가(靈駕)들이 대부분의 다라니를 싫어하기 때문에, 정작 그 다라니를 지녀야 할 당사자가 오히려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p>
<p>이어서 예를 하나 들어주셨습니다. 점집에는 흔히 관세음보살처럼 보이는 불상이나 여러 신령의 형상을 모셔두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그곳의 무당들이 손님에게 다라니 독송을 권하거나 스스로 다라니를 지송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p>
<p>형상은 갖추어두되, 정작 그 형상이 상징하는 다라니 수행 자체는 멀리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p>
<h2><strong>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strong></h2>
<p>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불교와 무속 신앙 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하나의 전통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p>
<p>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점집에 모셔진 형상이 겉으로는 불교의 도상을 빌려 쓰고 있지만 그 신앙적 맥락은 불교와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오늘 스님의 말씀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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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누군가 다라니나 특정 수행을 힘들어하거나 거부하는 데는, 이런 신앙적 해석 말고도 훨씬 다양하고 평범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p>
<p>낯선 발음이 어색해서일 수도 있고, 종교적 배경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그저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p>
<p>만약 주변에 유독 힘겨워하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분이 계시다면, 이를 성급하게 영적인 문제로만 단정 짓기보다, 먼저 그분의 건강과 마음 상태를 세심히 살피고 필요하다면 병원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구하시는 것이 우선입니다.</p>
<h2><strong>마치며</strong></h2>
<p>오늘 나눈 이야기는 오랜 신앙 전통 속에서 전해 내려온 말씀으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 담긴 본래의 뜻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strong>다라니는 자비와 정성으로 마음을 지키는 수행이며, 그 마음을 향해 열려 있는 이에게는 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준다는 것</strong>입니다. 오늘도 정성껏 다라니 한 소절을 이어가 보시길 바랍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26"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B%8B%A4%EB%9D%BC%EB%8B%88-%EB%8F%85%EC%86%A1-%EA%B1%B0%EB%B6%80-%EC%9D%B4%EB%AF%B8%EC%A7%80-300x164.webp" alt="다라니 독송 거부 이미지" width="300" height="164"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Fri, 07 Aug 2026 12:59: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관세음보살은 여성일까, 남성일까?]]></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6]]></link>
			<description><![CDATA[<p>관세음보살상을 떠올려보시면, 대부분 자비롭고 온화한 여성의 모습이 먼저 그려지실 겁니다. 그런데 정작 오래된 불상이나 불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콧수염이 그려진 관세음보살상도 있고, 인도나 티베트 쪽 도상에서는 분명 남성적인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실제로 여성일까요, 남성일까요? 오늘은 이 흥미로운 질문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p>
<h2><strong>원래는 남성의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strong></h2>
<p>관세음보살 신앙이 처음 자리 잡은 인도에서, 관세음보살은 대체로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초기 불교미술 속 관세음보살상은 왕자나 귀족 남성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콧수염이 표현된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p>
<p>이는 관세음보살이 본래 남성적 보살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티베트 불교권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데, 이 역시 관세음보살을 남성적 존재로 이해해온 전통과 맞닿아 있습니다.</p>
<h2><strong>중국을 거치며 점차 여성의 모습으로</strong></h2>
<p>그런데 이 사이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해드린 것처럼, 관세음보살 신앙이 중국으로 전해지고 다시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그 모습은 서서히 변화합니다.</p>
<p>특히 중국에서는 당·송대를 지나면서 관세음보살이 점차 여성적인 자태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명·청대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백의(白衣)를 입은 자애로운 여성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p>
<p>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이야기가 함께 전해집니다.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중국 민간에 퍼진 <strong>묘선(妙善) 공주 설화 </strong>입니다. 부왕의 뜻을 거스르고 출가하여 온갖 시련 속에서도 자비를 실천한 공주의 이야기가 관세음보살 신앙과 결합되며, 여성의 모습으로 관세음보살을 그리는 전통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p>
<p>여기에 더해, 중국 문화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특히 자녀를 점지해주고 여성과 아이를 보살피는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적 이미지와 결합되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p>
<h2><strong>경전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strong></h2>
<p>그렇다면 정작 경전은 관세음보살의 성별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린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가르침을 떠올려보시면 답이 분명해집니다.</p>
<p>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모습으로도, 재상의 모습으로도, 평범한 여인이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도 나투신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strong>33가지, 혹은 32가지 응신(應身)</strong>으로 나타나신다는 이 가르침 안에는 이미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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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즉 경전의 근본 가르침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애초에 <strong>특정한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strong>입니다.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맞추어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취하실 뿐,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인간적 구분 자체가 관세음보살의 본질을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p>
<h2><strong>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strong></h2>
<p>결국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습니다. <strong>관세음보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며, 동시에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합니다.</strong>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온 모습들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 시대와 문화가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싶어 했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p>
<p>중요한 것은 관세음보살이 어떤 성별로 그려지느냐가 아니라, <strong>그 형상 너머에 담긴 한없는 자비심</strong>입니다. 오늘 다라니를 독송하실 때, 이 사이트에서 늘 강조해온 대로 형상에 얽매이기보다 그 자비로운 마음 자체에 온전히 마음을 실어보시길 바랍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24"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A%B4%80%EC%84%B8%EC%9D%8C%EB%B3%B4%EC%82%B4%EC%9D%98-%EB%91%90-%EA%B0%80%EC%A7%80-%ED%99%94%EC%8B%A0-300x164.webp" alt="관세음보살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width="300" height="164"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Fri, 07 Aug 2026 10:44: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점집에서 본 그 불상, 정말 관세음보살일까]]></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5]]></link>
			<description><![CDATA[<p>혹시 점집이나 무속 기도터를 지나다가, 절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생긴 불상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자비로운 미소를 띤 여성적인 형상, 흰옷을 입고 정병을 든 모습이 흡사 관세음보살처럼 보여서 "저곳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시나?" 하는 의문이 드셨을 수 있습니다.</p>
<p>불교 신앙이 없으신 분들도 한 번쯤 궁금해하실 만한 주제입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보려 합니다.</p>
<h2><strong>왜 점집에도 불교 형상의 상이 있을까</strong></h2>
<p>먼저 이런 현상 자체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무속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아주 오랜 세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습니다.</p>
<p>무속에서는 불교의 개념과 존재들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왔는데, 실제로 관세음보살이나 약사여래처럼 본래 불교에서 유래한 존재가 무속 신앙의 대상으로 함께 모셔지는 경우가 확인됩니다.</p>
<p>반대의 흐름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산신각, 칠성각, 용왕각, 독성각 같은 전각들은 원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토착 민간신앙에서 섬기던 산신·칠성신·용왕신을 불교가 받아들여 절 안에 함께 모시게 된 결과입니다.</p>
<p>즉 두 신앙 전통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서로 스며들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p>
<h2><strong>그렇다면 겉모습이 같으면 같은 존재일까</strong></h2>
<p>여기서 핵심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strong>겉으로 보이는 형상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을 곧 관세음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strong></p>
<p>결론부터 말씀드리면, <strong>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strong>.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p>
<p>첫째, 불상이 갖추어야 할 형상 자체가 원래 불교 경전이 정한 엄격한 규범(의궤, 儀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32가지 큰 특징과 80가지 세부 특징(32상 80종호), 손 모양(수인), 손에 쥔 지물, 옷을 걸친 방식 등은 모두 경전에 근거를 둔 정통 도상입니다.</p>
<p>무속에서 이런 형상을 참고해 신상(神像)을 만들 때도 이 불교 도상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겉모습만으로는 자연히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p>
<p>실제로 무속에서 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무신도)을 그리는 화가가 사찰 탱화를 그리던 화공(금어)과 겹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즉 <strong>형상의 유사성은 애초에 무속이 불교 쪽에서 빌려온 결과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strong></p>
<p>둘째, 더 중요한 것은 <strong>그 형상이 어떤 신앙 체계와 서원 속에 놓여 있는가</strong>입니다. 절에서 관세음보살상을 참배할 때, 그 대상은 이 사이트에서 계속 소개해드린 것처럼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서원하신 분, 오랜 경전과 신앙 전통 속에서 이해되어 온 특정한 존재입니다.</p>
<p>반면 무속의 신당에서 비슷한 형상을 모신다면, 그 대상은 재물운이나 점복(占卜)의 영험을 담당하는 무속 고유의 신령 체계 안에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모습은 같아 보여도, 그 존재를 향해 사람들이 무엇을 발원하고 어떤 맥락에서 예경하는지는 전혀 다른 신앙의 틀 안에 있는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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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쉬운 비유로 이해해보면</strong></h2>
<p>불교 신앙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백화점 이벤트에서도,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전통 속에서도 똑같이 붉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로 그려집니다.</p>
<p>겉모습은 동일하지만, 백화점 이벤트의 산타와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전통 속 산타는 그 존재가 놓인 맥락과 의미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형상이 닮았다고 해서 그 대상이 같은 신앙적 의미를 지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p>
<h2><strong>그래서 어떻게 구별하면 좋을까</strong></h2>
<p>실용적으로 몇 가지 기준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p>
<p>- <strong>모셔진 장소의 성격</strong>: 사찰의 대웅전이나 관음전처럼 정식 불교 사찰 안에 있다면 정통 불교 신앙의 대상으로 보시면 됩니다.<br />- <strong>함께 놓인 다른 상징물</strong>: 무속 기도터에는 흔히 오방기, 부적, 촛불, 쌀 등 무속 특유의 제구가 함께 놓여 있어 구분이 됩니다.<br />- <strong>예경의 목적</strong>: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기도가 자비와 구제, 참회와 발원을 중심으로 한다면 불교적 신앙에 가깝고, 재물운이나 특정 길흉을 점치는 목적이 강하다면 무속적 맥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p>
<h2>마치며</h2>
<p>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 문화 속에서 종교와 신앙이 서로 얼마나 깊이 뒤섞여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창이기도 합니다. 형상이 같다고 본질이 같은 것은 아니며, 반대로 형상이 다르다고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다른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strong>어떤 마음으로, 무엇에 귀의하며 정성을 다하는가</strong>일 것입니다.</p>
<p>이 사이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서 앞으로 어디선가 관세음보살처럼 보이는 형상을 마주하시게 된다면, 오늘 이 글을 떠올리시며 그 형상이 놓인 맥락을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되실 것입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22"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C%A0%90%EC%A7%91-%EB%B6%88%EC%83%81-%EB%B9%84%EA%B5%90-300x164.webp" alt="점집 불상 비교" width="300" height="164"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Fri, 07 Aug 2026 09:47: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서울에서 온 마른 신사, 그리고 오늘 아침의 상념]]></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4]]></link>
			<description><![CDATA[<p>지난 글에서 제가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수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가벼운 달리기를 하며 다라니를 이어가던 중, 오래전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p>
<h2><strong>어린 시절의 기억</strong></h2>
<p>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 아래쪽에 부잣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에서 왔다는 비썩 마른 신사 한 분이 그 집에 나타났습니다. 잠시 다니러 온 것이 아니라 아예 눌러살려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p>
<p>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머님께서는 그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중병에 걸려 시골로 요양을 온 것이었고, 병명은 폐병이었습니다.</p>
<p>당시 시골에서는 폐병을 전염되는 불치병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역시 그 집을 지나칠 때면, 그 아저씨와 먼발치에서 눈인사나 나누는 정도의 사이로 지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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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소리 없이 사라진 어느 날</strong></h2>
<p>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끊긴 어느 날, 어머님께서 짧게 한마디를 건네셨습니다.</p>
<p>"그 사람 죽었단다…"</p>
<p>그때는 그저 어른들 사이의 이야기로만 흘려들었던 그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아침 달리기 중에 불현듯 되살아났습니다.</p>
<h2><strong>오늘 아침, 그 기억이 떠오른 이유</strong></h2>
<p>왜 하필 오늘, 그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을까 생각해보니 답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p>
<p>이 사이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해드린 범행 스님의 이야기처럼, 만약 그때 그 신사분이 병원 치료와 함께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지속적으로 독송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병을 낫게 해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 낯선 타향에서 홀로 병마와 싸우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그분에게,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곁에 있었다면 적어도 그 마지막 순간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p>
<p>달리기를 하며 숨을 고르듯, 다라니 한 소절 한 소절에 그날의 기억과 아쉬움을 함께 실어 보내봅니다. 지금 이 순간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부디 의료진의 도움과 함께 마음의 의지처도 함께 지니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13"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C%98%A4%EB%8A%98%EC%9D%98-%EC%83%81%EB%85%90-300x158.webp" alt="오늘의 상념" width="300" height="158"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Thu, 06 Aug 2026 17:07: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관세음보살 한 분만 모시기로 했습니다]]></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3]]></link>
			<description><![CDATA[<p>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 방에는 흰색 불상 한 분과 작은 지장보살 한 분이 회색 주불 곁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현암 주지스님과 이 문제를 상의드렸습니다.</p>
<h2><strong>스님과의 대화</strong></h2>
<p>스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스님께서 인연을 주신 작은 불상과, 제가 임의로 모신 소형 지장보살을 다시 대현암에 돌려드리고, 새롭게 관세음보살 한 분만 모시고 싶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말씀을 들으시고는 짧게 답하셨습니다. "<strong>그게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strong>"</p>
<p>이어서 스님께서는 사람의 욕심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여러 불상을 함께 모시다 보면, 자연스레 "이 불보살님이 안 되면 저 불보살님이 도와주시겠지"라는 마음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p>
<p>돌이켜보니 제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님 말씀처럼, 그런 마음은 그저 산만함만 더할 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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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인연 따라 거사님이 결정하는 것입니다"</strong></p>
<p>관세음보살을 새로 모시겠다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strong>관세음보살도 종류가 다양한데, 인연 따라 거사님이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strong>" 그러시면서 불교사에서 판매하는 수많은 관세음보살상 중 어느 것을 고르라고 특별히 짚어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온전히 저의 몫으로 남겨두신 셈입니다.</p>
<p>그렇게 여러 불상을 살펴보던 중 마음이 머문 것이 바로 오늘 함께 올린 사진 속 불상입니다. 연화좌 위에 편안히 걸터앉아, 한쪽 팔을 무릎에 가볍게 얹고 고요히 눈을 내리감은 모습이었습니다.</p>
<p>처음 보는 순간, 왠지 제가 지금 주력 수행 중인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스님께서 말씀하신 "인연"이라는 것일까요.</p>
<h2><strong>앞으로의 절차</strong></h2>
<p>불상이 도착하면, 대현암 주지스님께서 손수 점안식을 진행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예전 글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점안식은 두려움 때문에 치르는 의식이 아니라 정성을 담아 예경의 대상으로 완성하는 절차입니다. 스님께서 직접 이 절차를 이끌어주신다니, 그 자체로 이미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p>
<p>불상이 도착하고 점안식이 마무리되면, 그 과정과 이후의 소감도 이 게시판에 이어서 기록해보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08"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A%B4%80%EC%84%B8%EC%9D%8C%EB%B3%B4%EC%82%B4-203x300.webp" alt="관세음보살" width="203" height="300"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Thu, 06 Aug 2026 15:02: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왜 하필 aulir.com일까 — 어울리지 않는 도메인에 담긴 사연]]></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2]]></link>
			<description><![CDATA[<p>이 사이트의 도메인은 **aulir.com**입니다. 제목은 '관세음보살 이야기'이고 주제는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인데, 정작 도메인 이름은 왠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사연을 정리해보려 합니다.</p>
<h2><strong>처음엔 사이트 성격에 맞는 이름을 고민했습니다</strong></h2>
<p>사이트를 준비하며 처음에는 'buljeongsim(불정심)'이나 'Gwanse-eum(관세음)'처럼, 주제를 그대로 담은 도메인을 새로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미 보유하고 있던 aulir.com을 쓰는 쪽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p>
<h2><strong>신생 도메인 대신 기존 도메인을 택한 이유</strong></h2>
<p>'buljeongsim'이나 'Gwanse-eum'은 사이트 제목과는 잘 어울리지만, 새로 등록하는 신생 도메인이라 SEO(검색엔진 최적화) 측면에서는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aulir.com은 제목과의 연관성은 떨어져도, 이미 쌓여 있는 도메인 점수 덕분에 검색 노출 면에서 조금 더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p>
<p>억지스러운 연결일 수 있지만, 'aulir'라는 이름을 굳이 의미로 풀어보면 모든 사람과 사물을 **'아우르다'**라는 우리말과 연결지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모든 중생을 두루 아우른다는 이 사이트의 성격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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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strong>3년 전, 이유도 모른 채 확보했던 도메인</strong></h2>
<p>aulir.com은 3년 전에 미리 확보해둔 도메인입니다. 당시에는 정확한 용도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도메인 점수(DA 24, PA 26)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선점해두었습니다.</p>
<p>돌이켜보면 이렇게 점수가 괜찮은 도메인을 누군가 포기했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팸 스코어(SS)가 무려 50점을 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 수치라면, 일반적으로는 그 도메인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 선택입니다.</p>
<h2><strong>6개월간의 정상화 과정</strong></h2>
<p>이후 약 6개월 동안 스팸 스코어를 정상화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구글에 문의를 넣은 것만 수십 차례였습니다. 결국에는 정상화에 성공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러니한 사실도 함께 깨달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검색엔진 환경에서는, 도메인 점수 자체가 검색 노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p>
<p>그래도 그 과정에서 도메인의 이력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익히게 되었으니,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p>
<h2><strong>다음 기회에</strong></h2>
<p>도메인을 확보하고 점검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별도로 정리해서 나누어보겠습니다. 지금 이 사이트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196"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B%8F%84%EB%A9%94%EC%9D%B8%EC%A0%90%EC%88%98-300x106.webp" alt="도메인점수 확인" width="300" height="106"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Thu, 06 Aug 2026 10:43: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4,721독 — 달리기와 함께한 다라니]]></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1]]></link>
			<description><![CDATA[<p>지난 7월 1일부터 오늘까지,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strong>24,721독</strong> 마쳤습니다. 목표로 삼은 10만 독의 약 1/5 지점을 지나온 셈입니다.</p>
<h2>왜 10만 독을 목표로 삼았나</h2>
<p>특별한 근거가 있어서 정한 숫자는 아닙니다. 이 다라니의 가피담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10만 독을 하나의 이정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같은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p>
<p>독송에 걸리는 시간도 짧게나마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116자로 이루어진 이 다라니를, 빠르게 독송할 경우 대략 10초 정도가 걸립니다. 반복할수록 점점 리듬이 붙고 속도도 자연스럽게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p>
<h2><strong>독송 방식 — 정해진 시간 없이, 틈날 때마다</strong></h2>
<p>따로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았습니다. 하루 중 틈이 날 때마다 휴대폰 계수기 앱을 켜고 독송을 시작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 내어 크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입술만 달싹이는 정도로 조용히 이어갑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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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온전히 몰두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다라니를 외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잡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수행의 한 과정이라 여기고, 개의치 않고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p>
<h2><strong>달리기와 함께한 뜻밖의 경험</strong></h2>
<p>특히 아침 달리기를 할 때도 다라니를 함께 독송하고 있는데, 이건 횟수를 따로 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참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p>
<p>3km를 조금 넘게 달릴 때면 늘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걷고 싶은 마음이 앞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소리로 다라니를 독송하며 뛰면, 그 힘겨운 느낌이 한결 덜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p>
<p>물론 이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인지, 아니면 호흡을 다라니의 리듬에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이 안정된 결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이 다라니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쩌면 이것이 저와 인연이 닿은 다라니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p>
<p>앞으로도 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며, 10만 독에 다다르는 그날까지의 변화를 이곳에 하나씩 남겨보겠습니다.</p>
<p>나무관세음보살.</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193"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A%B3%84%EC%88%98%EA%B8%B024721-138x300.webp" alt="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24,721독" width="138" height="300"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Wed, 05 Aug 2026 16:57:0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이 사이트에서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이야기하는 이유]]></title>
			<link><![CDATA[https://aulir.com/?kboard_content_redirect=10]]></link>
			<description><![CDATA[<p>이 사이트의 이름은 '관세음보살 이야기'이지만, 정작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입니다. 왜 하필 이 다라니인지, 그 인연을 오늘 정리해보려 합니다.</p>
<h2><strong>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시절</strong></h2>
<p>2019년, 저에게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어려운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마음을 기대게 된 것이 불교였고, 그중에서도 다라니와 진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라니와 진언에는 액운이 물러나고, 상황이 나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조상이 평안해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p>
<p>그렇게 하나둘 다라니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지장경이었습니다. 한글 지장경을 매일 아침 한 번씩, 백일 동안 독송했습니다. 그다음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수구성취다라니였고, 이어서 능엄주,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츰부다라니, 광명진언, 육자대명왕진언까지 차례로 시도해보았습니다.</p>
<p>한 가지에 진득하게 머물지 못하고 여러 다라니를 옮겨 다녔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느 스님께서 "자신에게 맞는 진언 또는 다라니가 따로 있다"고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이 맞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저는 그 인연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p>
<h2><strong>인연을 알아보지 못한 순간</strong></h2>
<p>인연이 닿은 다라니라면, 그것을 독송했을 때 분명한 변화가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변화를 마주하고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아차렸습니다.</p>
<p>2022년 12월, 어느 추운 날 춘천중학교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렀습니다. 40년 넘게 손을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 딱 한 달 준비하고 시험장에 앉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시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p>
<p>교실에 앉자마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추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손과 몸이 심하게 떨려 답안지에 마킹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p>
<p>그 순간 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어떤 다라니를 암송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 상태를 살펴보니, 그 떨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참으로 편안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평안이 다라니 때문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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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후 받아 든 문제지는 놀라울 만큼 쉬웠습니다. 제가 공부한 범위에서 골라 나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3급(60~70점)을 목표로 했는데, 결과는 84점으로 1급이었습니다. 아는 문제에서 덤벙거리지만 않았어도 90점을 넘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술술 풀렸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회차 시험이 전반적으로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는데, 저에게만은 유독 쉬웠습니다. 그때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여겼을 뿐, 다라니의 가피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p>
<h2><strong>1년 만에 되짚어본 그날의 다라니</strong></h2>
<p>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어느 날, 문득 "그날의 평안과 고득점이 다라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날(시험날) 무슨 다라니를 외웠는지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p>
<p>범위를 좁혀보았습니다. 제가 완전히 외우고 있던 다라니는 광명진언, 육자진언, 그리고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세 가지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광명진언이나 육자진언이었을 거라 짐작하고, 실제로 제 다른 블로그에는 각각 그렇게 적어둔 글도 있습니다. 한국사 1급을 땄다는 사람의 기억력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헷갈렸던 셈입니다.</p>
<p>그러다 올해(2026년) 6월 어느 날, 불현듯 "그때 외웠던 다라니가 제법 길었다"는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답은 명확해졌습니다. 짧은 광명진언이나 육자진언이 아니라, <strong>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strong>였던 것입니다.</p>
<h2><strong>이 사이트를 만든 이유</strong></h2>
<p>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 지난 7월 1일부터 10만 독을 목표로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독송해오고 있습니다. 횟수가 쌓일수록 분명한 변화들이 느껴지고 있고, 그 이야기는 앞으로 이 게시판을 통해 하나씩 나누어보려 합니다. "나의 수행일기" 메뉴를 만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p>
<p>사이트 이름은 '관세음보살 이야기'로 넓게 지었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제게 인연이 닿은 이 다라니,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쌓일 기록들이, 저와 같은 인연을 찾고 계신 분들께도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p>
<p><strong>나무관세음보살</strong></p>
<p><br />*참고로 이 글에서는 '진언'과 '다라니'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함께 사용했습니다. 통상 짧은 것을 진언, 긴 것을 다라니라 부릅니다.*</p>
<p><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179" src="https://aulir.com/wp-content/uploads/2026/08/%ED%95%9C%EA%B5%AD%EC%82%AC%EB%8A%A5%EB%A0%A5%EA%B2%80%EC%A0%95%EC%8B%9C%ED%97%98-217x300.webp" alt="한국사능력검정시험" width="217" height="300" /></p>]]></description>
			<author><![CDATA[如如]]></author>
			<pubDate>Wed, 05 Aug 2026 11:44: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ulir.com/?kboard_redirect=2"><![CDATA[나의 수행일기]]></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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